한국여성작곡가회 오명희 회장이 여성작곡가회의 창립멤버인 이영자, 오숙자, 허방자, 홍성희, 서경선, 이찬해 6인의 추억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여성작곡가회 오명희 회장이 여성작곡가회의 창립멤버인 이영자, 오숙자, 허방자, 홍성희, 서경선, 이찬해 6인의 추억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 박순영


'여자 나이 마흔!!'

(사)한국여성작곡가회 창립 40주년을 맞아 11월 두번의 음악회를 열었다.

그 첫번째 음악회는 지난 10일 저녁 7시 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존립, 그리고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협회 회원인 박순영, 강은경, 오명희, 강종희, 진정숙과 홍수진(공모당선) 총 일곱 명 작곡가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두 번째는 지난 18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일신홀에서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역대 여성작곡가회 회장이자 한국 창작음악계를 이끌어온 작곡가들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공연 시작 15분 전이 되자 표는 전석매진이 될 정도로 40주년 역사의 음악작품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보였다.

연주에 앞서 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 오명희가 여성작곡가회 창립멤버인 이영자, 홍성희, 오숙자, 서경선, 허방자, 이찬해를 사진으로 소개해주었다. 이들은 현재 나이 70이 넘는 고령의 작곡가들로 1981년 이영자가 주축으로 모였다. 옛 사진 속 경희대 교정에 선 이들의 모습이 풋풋해보였다. 오명희 회장 또한 작곡가 선배이자 스승을 존경과 감사로 소개하는 이 순간만큼은 풋풋한 소녀로 보였다. 

본격적으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첫 작품 박영란의 'Dual Space'는 두 대의 스네어드럼 곡이었다. 타악기주자 김영윤과 조태희가 가운데 큰 악보를 함께 보면서 연주하는데 드럼비트가 재미있고 추진력이 좋았다. 두 대의 스네어드럼 연주는 타악주자가 연주하다 흥에 겨워 만드는 임프로비제이션 구간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렇지만 연주자가 만드는 임프로비제이션과는 작곡가가 악보로 만들어 연주자에게 준 곡만의 매력이 있었다.

나는 점점 흥겨우며 연주에서 타격소리를 발음으로 느끼기 시작했는데 곧 이 두 연주자가 실제로 '따쿵치'라고 발음하며 노래하는 순간, 작곡가가 어떻게 청자의 마음을 알고 있었나 싶었다. 마지막 구간이 절정으로 치달으며 두 연주자 호흡이 돋보이는 흥겨운 작품이었다. 

두 번째는 조인선의 '지나간 시간의 하얀 그림자 II'였다. 조인선 작곡가하면 단발머리 패션이 딱 떠오르는데, 이날 작품도 점묘적이고 단아한 운치로 시작해 점차로 표현성이 짙어지며 작곡가 이미지와 딱 어울렸다. 연주시작 전, 색소폰 주자에게 왜 주발, 풍경 등 전통 효과악기가 셋팅되나 했더니 색소폰주자가 곡 중간에 너무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곡 시작에 풍경소리가 운치있게 흘러나오는데 아마도 연주자가 악보 보는 아이패드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색소폰을 통한 바람소리로 시작해 점차로 음을 더한다.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의 저음주터 고음까지 절규하는 선율이 제목처럼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환이 느껴졌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하는 동요 선율이 중간에 잠시 변형되며 들리는데, 젊은 시절 한때의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사이 움켜쥐는 풍경의 나무소리가 아삭거리고 사각거린다.

세 번째 박재은의 가곡 네 작품은 한마디로 참 아름다워서 인터미션 때까지 내 귀에 남았다. 첫 곡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작시)부터 네 곡이 이날 작품들 중에 유일한 가곡인데다 조성이 들리는 곡이라 마음이 편해졌다. 소프라노 서활란의 반짝이는 보라색 의상에 힘차고도 서정적인 우리말 발음과 노래가 마지막 '상한 갈대라도..'라는 가사까지 인상을 남겼다. 두 번째 <백목련>(김후란 작시)은 오페라 가수인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의 노래로 더욱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것 같았다. 애뜻함이 표정과 발음에서 뚝뚝 떨어지는 훌륭한 작품과 노래였다.

세 번째 <달맞이꽃>(이해인 작시)은 앞 메조 소프라노에 클라리넷 정성윤이 함께해 더욱 정감있는 선율을 들려주었다. 서주와 간주에서 돋보이고, 노래 때는 중음역으로 길게 흐르며 받쳐주는 클라리넷과의 호흡이 좋았다. 네 번째 곡 <그대 위한 노래>(김명희 작시)는 다시 소프라노 서활란과 전통악기 해금의 조화로 밝은 분위기로 순서를 이끌었다. 첫 해금 전주의 끝음 반복이 네 번이나 된 점이 인상깊었는데, 그것은 이렇게 끝 음을 여러번 다듬고 매만지는 것은 작곡가가 그만큼 정성을 두고 여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으로 작곡가가 인정미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영자 작곡가의 무대인사. 91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하이힐을 신었다. 피아니스트 구자은이 부축중이다.

이영자 작곡가의 무대인사. 91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하이힐을 신었다. 피아니스트 구자은이 부축중이다. ⓒ 박순영

 
인터미션 후 첫곡, 전체 네 번째는 이찬해의 'Furthermore'이었다. 처음엔 느리게 도입해 곧 박진감있는 선율의 역동이 시작되었다. 프로그램지에 제목을 보니 "Furthermore". 더 멀리라는 뜻으로 작곡가의 추구가 어느 곳으로 더 멀리 향한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이것은 작곡가가 10년 넘게 프놈펜에 오케스트라를 설립하고 예술학교를 만들면서 이국 땅의 정취와 사랑, 애환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트릴, 도약음과 글리산도 등 불협화음 속에서 바이올린 박재린, 클라리넷 홍성수, 피아노 김아름 이 세사람 린트리오의 연주와 함께 꽉 잡힌 질서로 매 순간을 추구하는 작품에서 역시 작곡가는 추상적인 곡을 쓰는 것이 아니구나, 삶에서 선율이 나오는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 김혜자의 '어느날 밤 악사에게'였다. 제목과 초록색 한복의 가야금과 장고에서 벌써 전통미와 단아한 선율미가 예상되었다. 노래는 운치있는 단아한 추진력의 가야금이 밤길 바다를 유유히 걷는 것 같고 네 마디 단위로 가는 길가락이 느껴진다. 특히 가야금 두 음을 뜯을 때나 물레 잣는 것 같은 음의 튕김이 좋았다. 프로그램지를 읽어보니, 신라시대 시인 최치원의 한시 '야증약관'의 내용으로 하늘로 올라갈 듯하던 늙은 악사와 시인이 바닷가에서 만나 더불어 눈물만 흘린다는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 시를 표현했다고 한다. 가야금 산조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가락들보다 더욱더 김혜자 작곡가의 곡이 풍류와 멋이 있었다.

여섯 번째 작곡가 서경선의 '수국에서'는 작곡과 출신인 필자에게 15년 전 한양대 백남음악관의 추억을 상기시켜주었다. 서경선 교수님은 당시 한양대 재직중이셨고  필자는 그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날 연주로 비로소 느낌이 팍 왔다. 바로 다섯 악기로 하는 12음렬이라는 느낌인데, 타악기(김영은), 차임벨(임예지), 피아노(조가람)의 힘찬 운동 위에 호른(조태준)의 순수한 선율이 대조적으로 펼쳐지며, 역동적인 지휘(유영재)로 곡이 표현하는 통영 앞 바다 작은 섬들에서 예술인들이 가진 낭만적인 밤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은 한국여성작곡가회를 존재하게 한 이영자 작곡가의 '나의 조국'이었다. 현악사중주(이태정, 채경애, 노원빈, 이현지)에 콘트라베이스(박노익)는 저음제공, 피아노(구자은)는 협주곡의 느낌이었는데, 사실 2013년 아창제 위촉의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작곡된 곡으로 이날 6중주로 축소해 발표했다. 어둑한 베이스 저음에 피아노는 대조적인 밝은 빛을 표현한다.

힘있게 도약하는 선율선은 지금껏 나이 90까지 작곡활동을 하고 계신 작곡가를 닮아 있었다. 선율은 위로 아래로 느리게 굽이치는 물결 같았다. 영원한 얼의 노래, 조상들에게는 진혼곡이 되고, 오늘을 이끌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송가로 가슴 깊이 위로되길 소망한다고 곡 소개를 적은 작곡가님은, 무대인사에서 "우리 작곡가보다도 여기 계신 관객분들이 더 위대하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이날 관객으로는 저서 <현장음악비평>의 김규현 선생님, 내일모레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을 10년간 창작해 올리시는 박영희 작곡가 선생님 등 여러 유명 원로 예술가님들이 자리하셨다. 여자 나이 40! 한국 여성작곡가회는 이제 더욱 아름답고 원숙한 음악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더욱 화려하고도 심도있는 작품들이 한국 여성작곡가들의 손으로 이 세상 곳곳에서 발견되고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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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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