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진품명품> 유한주 PD

KBS <진품명품> 유한주 PD ⓒ 이희훈

 
'집안 가보인 고문서를 의뢰했는데 알고 보니 노비문서였다'는 풍문은 26년째 사랑받고 있는 KBS 1TV < TV쇼 진품명품>(아래 <진품명품>)의 아주 오래된 루머다.

실제로 1000회 특집 방송에서는 "실제로 노비문서가 방송에 의뢰된 적은 있지만, (루머에서 말하는 것처럼) 노비의 자손이 문서를 가져온 건 아니다. 그 당시 노비문서를 보유할 수 있는 사람은 양반가뿐이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유한주 PD도 "그 루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다"면서도 "특히 고문서에 옛 한자는 바르게 쓰지 않은 것도 많아서 그런 루머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에서 유한주 PD를 만났다. 

방송에 소개되는 고미술품은 대부분 제보자들의 의뢰를 통해 시청자를 만난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출장 감정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의뢰품의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유 PD는 "의뢰품을 다양하게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줄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오래 사랑받은 프로그램, 부담감 있다"
 

 KBS <진품명품>의 녹화 현장

KBS <진품명품>의 녹화 현장 ⓒ 이희훈

 
지난 4월부터 이 프로그램 연출을 맡았다는 유 PD는 "오래 사랑받아온 프로그램이기에 질을 떨어트리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며 "같은 도자기가 나오더라도,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좋은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며 "제작진으로서 의뢰품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색깔도 문양도 예쁘고 보존상태도 좋아서 (추정) 감정가 몇억 원짜리라고 하면 눈길이 가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진품명품> 공식 홈페이지에는 감정의뢰품 제보 방법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페이지 가운데, 가장 큰 글씨로 강조되어 있는 문장은 "의뢰품을 직접 보내시면 즉각 반송처리 됩니다. 절대 보내지 마세요"다.

유 PD는 "메일이나 우편으로 사진만 받는데, 간혹 물건을 보내시는 분들이 있다. (훼손될까 봐) 열어보지도 않고 바로 반송한다"고 호소했다. 전문 감정위원들은 사진만으로도 대부분의 의뢰품을 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유 PD는 "사진만 보고도 (의뢰품의) 절반 이상은 걸러낸다. '이 정도 물건이면 직접 보고싶다'고 하시면 의뢰인분께 연락을 드려서 만난다"며 "물론 실물을 보니 아닌 경우도 있고, 사진에선 표현이 안 됐는데 실물엔 하자가 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 방송에 못 나가지만, 많은 경우에는 사진이 괜찮으면 좋은 물건"이라고 설명했다.

또 홈페이지 제보란에는 "의뢰품 보내지 말라"는 문구와 함께 "감정위원 연락처나, 판매경로는 안내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에도 노란색 강조 표시가 되어 있다. 감정품의 수익화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원칙이 담긴 부분이기도 했다. 유 PD는 "정말 일부겠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판매 통로로 이용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방송을 만드는 거지, 감정을 해주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끔 방송에 나가고 싶진 않은데 감정만 해 달라고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고미술협회로 안내한다"고 덧붙였다.

방송을 만들면서 제작진들은 자연스럽게 공부도 많이 하게 됐단다. 유 PD는 "어제도 작가와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다'는 얘기를 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감정위원들이 30년 이상 쌓아온 걸 저희가 1~2년 만에 따라갈 순 없다. 의뢰품을 보러 감정위원, PD, 작가, 의뢰인 이렇게 만나는 자리에 갈 때 저희는 '공부하러 간다'고 말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감정위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를 쓸 때, 이를 쉽게 풀어서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제작진의 몫이다. 유 PD는 "대본 리딩을 할 때 최대한 알기 쉽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럼에도 전문용어가 계속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에는 설명 자막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박쥐가 부귀영화를 상징한다는 것 혹시 아시나? 중국에서 유래한 건데, 박쥐의 '박'자와 복을 뜻하는 '복'자의 중국어 음운이 비슷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박쥐가 부를 뜻한다. 이런 식으로 방송을 만들면서 알게 되는 게 굉장히 많다. 감정위원이 이 도자기에 어떤 부분이 굉장히 좋다고 설명하시면, 저희는 최대한 그 부분을 화면에 잘 담아서 시청자에게 보여드리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늘 실제로 보는 것, 듣는 것을 100만큼 다 방송에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


연예인 패널들도 감정위원과 시청자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완충재 역할을 한다. 현장에서 의뢰품을 직접 보고 진행자가 내는 퀴즈를 맞히는 이들은 가끔 엉뚱한 답변으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그리고 감정위원이 바로 뒤이어 틀린 부분을 바로 잡고 좀 더 쉽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유 PD는 "저희 프로그램은 'TV쇼'다. 보통 '진품명품'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제목에 'TV쇼'가 있다"고 강조했다.
 

골동품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추정가격만 보여주고 끝나겠지. 그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재미있게 시청자에게 가볍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 부분을 맞추기 상당히 어렵다. 어떤 분들은 패널들이 나와서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 '어떻게 이것도 모르냐', '너무 무식한 패널을 데려다 놨다'고 불평하시기도 한다. 그게 사실은 일반적 수준이거든. 시청자분들을 모셔도 비슷할 것이다. 한자도 잘 못 읽고, 조선시대 것인지 신라시대 것인지, 혹은 가짜인지 진짜인지 일반인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게 카메라에 담기니까, 너무 상식 없는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재미와 교양, 그 중간점을 찾는 게 때론 어려울 때가 있다.


기억에 남는 단원 김홍도 그림
 

 KBS <진품명품> 유한주 PD

KBS <진품명품> 유한주 PD ⓒ 이희훈

 
그동안 <진품명품>에는 안중근 열사의 '경천' 유묵이나 추사 김정희의 서화 등 가치를 매기기도 힘든 보물들이 나오기도 했다. 유한주 PD는 가장 기억에 남는 감정품으로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꼽았다. 그는 "안산문화재단 대표 방송인 김미화씨 덕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단원 그림은 박물관에서도 보기 어렵지 않나. (박물관에) 가더라도 유리 너머에 있는 걸 봐야 한다. '공원춘효도'라는 그림을 지난 6월 방송에서 소개했는데, 단원 그림인 것도 중요하지만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6.25 전쟁 통에 미군이 그걸 구입해서 미국에 가져갔다가 7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거다. 그림 소장자가 한국 전문가를 불러서 미국에서 감정을 했고, 진품으로 판정이 나서 경매에 내놓아 고가에 낙찰됐다. 당시 안산시가 그림을 환수하기 위해 구입했다. 안산시에 단원구가 있는데, 안산시는 단원 김홍도의 단원이 안산의 단원이라고 여긴다. 김홍도가 실제로 어린 시절 안산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도 이 사실을 김미화씨 덕분에 알게 됐다. 안산문화재단 대표가 김미화씨인데, 지난해에 대표로 취임했더니 단원 그림이 (안산시에) 있었다고 하더라. 그림을 방송에 꼭 소개하고 싶다고 하셔서 우리와 직접 만났다. 과거 시험장을 그린 민속화는 이게 유일하다더라. 그래서 감정위원은 당시 추정가격을 '감정 불가'라고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보물급 의뢰품은 감정가를 매기기 어렵다. '내 마음 속에선 수십 억'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저는 그림을 실제로 봤는데 그림에서부터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감정가가 비싸고 귀중한 의뢰품일수록 제작진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유 PD는 "당시 안산문화재단에서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까지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 무진동차량까지 빌리고 보험도 들었다"고 귀띔했다. 무진동차량은 비싼 골동품, 고미술품을 운반할 때 훼손을 막기 위해 최대한 자동차의 진동을 줄인 특수차량이다.
 

의뢰품을 다룰 때 정말 조심한다. 특히 감정가가 억 단위를 넘어가면 더 걱정되지, 훼손되면 어쩌나. 팀 내 원칙이 있다. '의뢰품을 향한 제작진의 손길을 최대한 줄이라.' 물론 스튜디오에 세팅할 때는 도와주시는 전문가도 오신다. 그림을 액자에서 꺼낼 때라거나. 그럼에도 제작진이 무대 위로 옮겨야 할 때가 있고 정말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그래서 가능한 의뢰인이 직접 스튜디오까지 가져와주시길 부탁하는 편이다. 녹화가 끝나도 의뢰인이 가져갈 수 있게 한다. 우리가 터치하는 건 정말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다행히 작가님과 스태프들이 오래 일해서 준 전문가에 가깝고, 여태까지는 사고가 없었다.


국내 유일의 고미술품 감정 프로그램인 <진품명품>은 최근 고미술품, 골동품에 대한 관심이 줄면서 의뢰품 수집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자연스레 유 PD의 고민도 깊어졌다.
 

우리 것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았으면 좋겠다. 감정위원들도 매번 '우리 것의 가치가 굉장히 저평가돼 있다'고 아쉬워 하더라. 연예인이 스포츠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운동화가 한 켤레에 1천만 원인데, 200년 된 고가구가 1천만 원이다. 200년 전에 뛰어난 장인의 기술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잘 보관된 것이어야 그렇다. 운동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이 그만큼 변했다는 얘기다.

생활 양식이 아파트 중심으로 바뀌면서 고미술품이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아파트 벽에 골동품 걸 자리는 없으니까. 너무 건조해서 고가구를 갖다 놓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고가구를 갖다놓아도 너무 튀지. 그런 부분이 아쉽다.

진품명품 유한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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