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1927> 영화 포스터

▲ <송해 1927> 영화 포스터 ⓒ (주)이로츠,빈스로드


송해는 한국 대중문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55년 유랑극단 '창공악극단'에서 희극인 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수, 코미디언, 영화배우, 라디오 DJ, MC 등 다방면에서 여전히 활동하는 대한민국 최고령 현역 연예인이다.

KBS의 <전국노래자랑>은 1988년부터 진행을 맡아 국내 단일 프로그램 연속 진행 최장수 기록을 지금도 갱신하는 중이다. 서울시 종로구 수표로엔 '연예인 상록회' 사무실을 열고 활동한 송해를 기리기 위해 '송해 길'이 만들어졌다. 

<송해 1927>은 제목 그대로 송해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연출은 < 마담 B >(2016), <히치하이커>(2016), <뷰티풀 데이즈>(2017), <파이터>(2020) 등 다큐멘터리 영화와 극영화를 넘나들며 여러 영화 실험(< 마담 B >와 <뷰티풀 데이즈>는 같은 소재를 다큐멘터리와 극 영화란 다른 형식으로 풀었다)을 이어가는 윤재호 감독이 맡았다. 그는 송해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밝힌다.

"송해 선생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게 흥미로운 주제였고, 100년 가까운 삶을 사신 분인 데다, 일제강점기 때 태어난 분이라는 것만으로도 인문학적 가치가 있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생각했다."
 
<송해 1927> 영화의 한 장면

▲ <송해 1927> 영화의 한 장면 ⓒ (주)이로츠,빈스로드


윤재호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화면 속 송해의 얼굴을 통해 많은 이에게 낯선 카메라 바깥 송해의 이야기를 풍부한 자료 화면과 함께 끄집어낸다.  연예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둘째 딸과 손자도 만난다. 그리고 그것은 다큐멘터리에 삽입된 노래 4곡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영화는 <전국노래자랑>의 행사 장면으로 문을 연다. 인파에 묻힌 채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하는 송해의 모습은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국노래자랑>의 MC로 활약하는 '희극인 송해'를 대변한다. 송해의 노래 중 하나인 '네 고향 갈 때까지'엔 '실향민 송해'로서의 아픔이 서려있다. 1927년 일제강점기 시절 황해도 재령군에서 '송복희'란 이름으로 태어난 송해는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해주를 거쳐 연평도에서 미 군함을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실향민으로 바닷길을 건너오면서 '바다 해(海)'자를 예명으로 쓰기 시작하며 오늘날까지 친숙한 송해가 되었다.

1986년 3월 18일 송해의 아들 송장진은 한남대교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꿈을 줄곧 반대했던 송해는 막내딸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아들이 육성으로 녹음한 자작곡 카세트테이프를 수십여 년 만에 접한다. 아들이 만든 자작곡 '보고 싶은 얼굴'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송해에겐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 송해'의 슬픔이 묻어난다. 아들의 진심을 몰랐던 게 후회스러웠던 탓인지 송해는 지난 11월 9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송해 1927>의 언론시사회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가족의 '소통'을 강조하기도 했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다 보니 부모와 자녀가 서로 알고 소통할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것 같다. 나 역시 자격이 없는 부모였다는 생각에 후회가 컸다. 영화를 보고 부모는 자녀의 꿈을 믿어주고 자녀는 부모한테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하는 등 상호 간에 소통했으면 한다."
 
<송해 1927> 영화의 한 장면

▲ <송해 1927> 영화의 한 장면 ⓒ (주)이로츠,빈스로드

 
엔딩크레딧에 올라간 후엔 '딴따라'를 열창하는 송해가 등장한다. "가진 건 없어도 행복한 인생 나는 나는 나는 딴따라"란 노래 가사처럼 한평생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딴따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간 송해'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송해 1927>은 인물 다큐멘터리로서 깊이엔 아쉬움을 남긴다. 희극인 송해, 실향민 송해, 아버지 송해를 두루 건드리나 깊숙이 파고들진 못한다. 송해란 인물이 가진 무게를 의식한 나머지 지나치리만치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인상도 짙다. 한편으로는 한국 대중문화계, 나아가 현대사의 산증인을 더 늦기 전에 영화로 기록했다는 의미만으로도 각별하지 않나 생각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 계획'에 따라 방송가도 속속 대면 녹화를 재개하는 상황이다. 야외 공연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은 주요 관객층이 고령이고 추위가 다가오는 점을 고려하여 내년 봄 대면 녹화를 계획한다니 MC 송해도 겨울이 지나면 만날 수 있으리라 본다. 고향에서 <전국노래자랑>을 하고 싶다는 소원을 꼭 이루셨으면 좋겠다.
송해 1927 송해 다큐멘터리 윤재호 전국노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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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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