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못 춘다. 당연히 춤을 모른다. 풍류 DNA가 적은 탓이라 생각했는데,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아래 <스우파>)를 보며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춤에 무지한 데다, 나이가 많아지면 더욱 춤에 무심한 게 자연스럽거나 점잖은 현상이라 여겨지도록 학습된 게 DNA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에 이르렀다. 
 
여성이 하면 'O바람'이라 부르며 지탄하는 시절이 있었다. 학교 일에 조력하던 엄마들의 학교 출입은 언제나 '치맛바람'으로 불리지 않았던가. '춤바람'이라며 언론에 대서특필되던 시절에도 같이 춤추었을 남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여자만 '춤바람'났다는 취급을 받았다. 이런 성 불평등한 시절을 지나 비하될 수 없는 '쎈 여자 댄서'들의 끝장 춤판을 보고 있노라니 말로 다할 수 없는 환희가 찰랑찰랑 차오른다.
 
아, 이 센 언니들, 진짜 춤을 너무 잘 추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한 장면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한 장면 ⓒ Mnet

 
흠... 대체 어찌나 춤을 잘 추는지 현란한 춤사위에 아안이 벙벙한데, 춤 또한 다 같은 춤이 아니지 않은가. 춤이 이렇게 다양한 장르가 있는 줄 몰랐던 춤 문외한인 나로서는 장르가 뭐든 어쨌거나, 저렇게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정말 깜짝 놀랐다. 잘 춰도 이만저만 잘 추는 게 아닌 데다, 각 팀들마다 저마다의 색깔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매력적인 댄스 퍼포먼스는 놀라울 흡인력으로 관객을 화면 속으로 '줌인' 시켰다.
 
온몸을 리듬에 맡기고 그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들의 능력, 숨을 멈추게 하는 기발하고 역동적인 동작과 이를 보고 내뱉게 되는 감탄의 탄성, 그리고 댄서들의 정교하게 쪼개지는 몸 사위는 이를 보고 도저히 멀거니 앉아 있게 두지 않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시종일관 무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들의 에너지를 포집해 활용하면 소형 발전소가 되고도 남을 듯하다.
 
재미를 고조시키기 위한 '악마의 편집'이 중간중간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지만, 참가 팀들은 제식대로 혹은 영리하게 자신들의 미션을 수행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날 것으로 드러나는 각 팀의 우승을 향한 열망과 경쟁심은 여성들이 경쟁을 회피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조작된 편견을 통쾌하게 박살 내고 있었다. 경쟁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치열하게 다투고 춤추는 그들의 모습은 성공과 인정을 향한 욕망이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끌어대는 모습은 어떤 팀에선 조금 과하게 어떤 팀에선 정직하게 재현되었다. 애초 자원 동원에 관한 어떤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채 경쟁을 부추기며 재미를 배가시키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염치없이 드러나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참가 팀들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정체성을 지켜주었다. 글로벌 '좋아요' 집계로 승패를 판정한다는 것도 좀 문제가 있지만, 결국 "각자 하고 싶은 거 하자"며 "졌지만 잘 싸우"는 모습으로 댄서의 자긍심을 보여주려는 그들의 모습이 우뚝하다.
 
<스우파>, 댄서인 게 자랑스러울 만하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한 장면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한 장면 ⓒ Mnet

 
청출어람은 가르치고 배우는 자들의 숙명일 것이다. 동료 댄서이기 전에 사제지간이기도 한 몇몇 댄서들의 면모는 이 청출어람이라는 미션 앞에서도 결코 옹졸하지 않았다. 경쟁에서 이겨본 적 없는 상대를 지목해 대담하게 도전장을 내미는 배짱이나, 감히 "선생님이랑 배틀하"겠다며 던진 도전장을 기꺼이 받아내는 평정함 모두 이들이 이토록 당당한 댄서가 되기까지 얼마나 혹독하고 의연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평등과 자존을 탑재한 이들의 춤 배틀은 경쟁이라는 형식이 무색하리만큼 각 댄서의 매력과 기량을 마음껏 펼치는 장인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춤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하는 훌륭한 콘텐츠가 되어 주었다.
 
이들이 지켜온 춤꾼으로서의 패기와 자존감은 준우승을 결정하는 퍼포먼스에서 웅숭깊게 드러났다. 성소수자에 공감하며 위로와 지지를 전한 라치카와 프라우드먼의 퍼모먼스는 이들의 경연이 단지 승리를 위한 눈먼 열망에 있지 않음을 인상깊게 보여주었다. 무지개 의상을 입은 라치카가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를 팀에 합류시켜 '본 디스 웨이(Botn This Way)' 노래에 맞춰 이 노래가 함의하는 바를 퍼포먼스를 통해 완성한 연대감은 뭉클하다. 또한 프라우드먼이 드래그퀸을 영입해 노래가 아닌 여성선언문에 맞춰 매우 이색적이며 도전적인 춤 퍼포먼스를 보인 시도는, 이미 퍼포먼스 자체가 소수자에 대한 공존과 연대감을 용기 있게 표방하는 선언문이었다.
 
어쨌거나 승패는 엄연했고 마침내 네 팀이 준우승에 올랐지만 오히려 떠나는 댄서들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남다른 카리스마를 보여준 댄서 모니카가 준우승에 낙마해 떠나면서,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하던 대로 춤을 추며 살 겁니다"라는 소감은 이들이 걸어온 길과 이들이 걸어갈 길이 결코 이 승패 하나로 갈릴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승패는 이들의 춤 인생을 증명하는 아무런 자격증이 될 수 없음을, 이들의 춤 인생은 쉽게 평가할 수 있는 시험지가 아님을 말이다.
 
마침내 준우승에 네 팀이 남았다. 춤에 대한 열망과 자존심으로 가득한 이들에게 봐준다거나 양보 따위란 없다. 오직 실력으로 끝까지 빈틈없이 싸울 결기만이 활시위처럼 팽팽히 당겨져 있다. 이들은 이미 여러 퍼포먼스를 통해 여자 춤꾼에게 무람없이 던져지던 음험한 시선과 오해를 출중한 실력으로 한 톨의 여지없이 진공청소기로 싹 쓸어 담았다. 더 이상 의혹을 허락하지 않으며 댄서 아이디카드를 당당히 획득했다. 이들의 성취는 누군가의 시의로 베푼 것이 아니기에 더욱 의미 있고 값지다.
 
준우승에 오른 네 팀 모두 사실상 승부를 겨루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각 팀의 춤 지향이 확연히 다르고 그에 따라 보여줄 수 있는 춤의 결 또한 각기 유니크하고 고급이기 때문이다. 결승을 향한 댄서들의 춤판 모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후회 없는 공연으로 채워졌고, 특히 춤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훅 팀의 마지막 퍼포먼스는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한 장면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한 장면 ⓒ Mnet

 
신참 댄서들로 채워진 훅 팀은 다른 팀에 비해 개인적 기량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함께 하는 퍼포먼스에서 보여주는 팀 웍은 언제나 단단했고, 관객의 흥미와 공감을 끌어내는 기발함 또한 탁월했다. 훅의 리더인 아이키는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댄서에게 출산과 육아는 상당한 몸의 공백을 동반시켰을 테지만, 그럼에도 우뚝한 댄서의 면모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춤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선보인 마지막 무대는 언뜻 뜻밖이었지만, 그의 춤 인생을 돌이켜보면 이상할 것이 없다. 엄마가 되고서야 엄마라는 삶의 무게와 노고를 깊이 깨달을 수밖에 없는 건 여자들의 지독한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지켜준 엄마를 위해 그리고 코로나로 아이들과 씨름하며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엄마들을 위해, 그들의 엄마 됨에 공감하고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 무대가 눈물바다가 된 건, 엄마의 헌신 없이 단 하나의 인간도 완성될 수 없다는 보편적 깨달음에 바탕 할 것이다. 한 아이의 엄마로 당사자성을 지닌 아이키가 선택한 마지막 미션은 자신의 삶에 근거한 매우 현실적이고 영리한 선택이면서 관객의 감동까지 끌어낸 완벽히 성공한 퍼포먼스였다. 돌아선 훅 댄서들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작에서 관객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을 체험했을 테니 말이다.
 
훅이 마지막 미션에 선택한 곡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서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란 노랫말은 얼마 전 돌아가신 내 엄마가 하시던 말씀과 놀라우리만치 똑같다. 한평생이 잠깐 졸고 일어난 시공감이란 어떤 허무와 고독을 담고 있는 걸까.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가 돌아가셨는데도 아무 일 없이 매일 해가 뜨고 진다는 데 너무 어이없지만, 나는 나의 엄마를 복구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리고 돌아가셨다고 해서 엄마의 엄마 됨을 모두 긍정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엄마 됨의 결핍과 부재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삶으로의 출구를 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여자에게만 지워지는 엄마라는 책무에 대해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달라거나,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지 않다. 엄마의 자리란 어떻게 해도 부족함을 다그침 받는 자리이기에 오히려, 자신을 갉아 먹히도록 너무 애쓰지 말라고 모든 엄마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 딸이 어느 날 엄마가 된다고 해도 꼭 이렇게 당부할 것이다. 다만 몹시 쓰라린 건 엄마 생전에 이 말을 전하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아이키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강한 파이터는 엄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세상과 겨루는 양육의 책임을 온통 엄마에게 지웠기 때문이다. 해서 강한 파이터가 되느라 너덜너덜해지는 자신을 속상해하는 대신, 다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좋은 엄마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돌봄 노동에 지친 모든 엄마들에게 파이팅을, 그리고 다시 한 번 한국 '스트릿 우먼 파이터'들에게 파이팅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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