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8 12:14최종 업데이트 21.10.0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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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상대로 맹렬한 비판을 퍼붓는 일본인 교수가 있다. 8일 오전 5시에 그의 트위터를 들여다보니, 밤새 매시간 1건 정도가 업로드 돼 있었다. 한국인들이 언론을 앞세워 자신을 탄압하고 인권침해를 벌이고 있다는 내용의 글들이다. 그가 7일 밤 10시경에 쓴 글은 이렇다.
 
이것은 '한국 미디어와 그 배후에 있는 조직'의 일본인 연구자에 대한 조직적 폭력으로, 일본의 법무성과 경찰은 배후에 있는 조직을 조사해야 합니다. 그들은 계획적으로, 조직적으로 한국 미디어를 이용해 탄압하고, 인권침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리마 데츠오 와세다대학 교수의 트위터 글. ⓒ 아리마 데츠오

 
이런 글들을 밤새 계속해서 올린 주인공은 올해 68세의 아리마 데츠오(有馬哲夫, 아리마 데쓰오) 와세다 대학 교수다. 이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방송·광고·문화산업 등을 연구해온 그는 작년 7월 17일 발행된 <일본인은 어째서 자학적이 됐는가(日本人はなぜ自虐的になったのか)>라는 책에서 미국이 원폭 투하에 대한 반발심을 없애고자 일본인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한국인들이 나를 탄압" 주장한 교수의 실상 

또 올해 7월 30일에는 <위안부는 모두 합의계약을 했다(慰安婦はみな合意契約をしていた)>를 통해 위안부가 과연 피해자이며 희생자인가 하는 물음표를 제기했다. 이 책에서 그는 '위안소는 전쟁에 꼭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마크 램지어 하버드 대학 교수를 옹호하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래서 램지어 교수가 그의 책에 서문을 써주었다. 서문에서 램지어는 자신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대소동"으로 표현한 뒤, '사과하라', '논문 게재를 취소하라', '하버드대학은 램지어를 해고하라' 같은 항의들을 가리켜 "엉망진창"이라고 비판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망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아리마 데츠오가 쓴 <위안부는 모두 합의계약을 했다>. ⓒ WAC문고


램지어의 동지라고 할 수 있는 극우 학자 아리마 데츠오가 한국인들이 자기를 탄압한다며 분노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미국의 민간 청원 사이트인 체인지(change.org)에서 진행되는 일 때문이다. 이 사이트에 아리마의 교수직 해임을 촉구하는 청원 글이 게시돼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
 
'차별을 선동하며 역사부정 발언을 되풀이하는 교수의 해고와 재발 방지를 요구합니다(差別を煽り、歴史否定発言を繰り返す教授の解雇と再発防止を求めます)'라는 제목이 붙은 문제의 글은 2019년에 결성된 '무빙 비욘드 헤이트(Moving Beyond Hate)'라는 운동단체가 올린 것이다. 이 글은 미국 시각 9월 26일 게시됐고 10월 5일 수정됐다.
   

본문에 인용된 청원 글. ⓒ change.org

 
'혐오를 넘어서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단체는 "일본에서 새로운 반차별 운동을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생단체"라며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hatemovingbeyond)에서 자신들을 소개한다.
 
와세다대학 사회과학부를 상대로 아리마 교수의 해임을 촉구하고자 청원을 올린 이 단체는 아리마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인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채 차별과 역사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적격 교수를 해임시키고자 청원을 올렸음을 밝힌 것이다.
 
무빙 비욘드 헤이트가 해임 사유로 제시한 것 중 하나는 위안부 망언이다. 청원 글에는 아리마의 10월 3일자 트위터 글이 원문 그대로 인용돼 있다.
 
모든 면에서 위안부는 일본 군인보다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도 위안부를 가엾게 생각하는 사람은 있어도, 일본 군인을 가엾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일본인 위안부 여성은 없었던 듯이. 완전히 역차별이다.
 

아리마 데츠오의 트위터 글. ⓒ 아리마 데츠오

 
침략전쟁에 동원돼 군국주의 희생물이 된 일본 병사들과, 성노예가 된 일본인 위안부들도 당연히 전쟁 피해자들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해도, 식민지 출신 위안부들을 이들과 비교하면서 이들이 역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본 대학생 단체의 해임 청원에 한국 배후설 주장

아리마는 위안부들에게 배상은 물론이고 사과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10월 4일에 쓴 트위터 글에서 사과와 배상금 지불을 촉구하는 한국인들에게 조롱의 뜻을 표시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촉구를 "왠지 너무 가소롭다(なんだか、とってもおかしい)"라는 말로 일축했다. 이 문장에 사용된 일본어 오카시이(おかしい)를 히라카나가 아닌 한자로 표기하면 '가소롭다(可笑しい)'는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단어 선택이다.
 
그는 위안부들이 사과·배상을 받을 게 아니라 도리어 일본 군인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월 4일자 글에서 그는 위안부들이 '아리가토'라는 말을 해야 한다는 황당한 망언까지 내놓는다. "왠지 너무 가소롭다"라고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 군인에게 '고마워요'라는 한마디를 했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된다.(朝鮮人慰安婦が日本兵にありがとうの一言があっていいと思う).
 

아리마 데츠오의 트위터 글. ⓒ 아리마 데츠오

 
무빙 비욘드 헤이트가 아리마 데츠오를 위험시하는 것은, 그가 엄연히 존재했던 위안부 착취의 역사를 부정하고 도리어 한국·중국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여성 혐오적 혹은 성차별적 인식을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원 글 후반부에서 이 단체는 이렇게 지적했다.
 
역사 부정이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공격하는 소재로 쓰이는 것에 더해, 위안부 혐오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는 심각한 섹시즘(セクシズム, sexism, 성차별, 여성 멸시)이기도 합니다.
 
8일 오전 8시 30분 현재, 이 청원은 7190명의 동의를 받았다. 일본 국민들의 지원을 받기 힘든 사안이라는 점, 일본 사이트가 아닌 미국 사이트에 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수가 아니다.
 
이 사이트에는 "서명이 7500명이 되면 이 청원은 의사 결정자의 반응을 얻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문구가 게시돼 있다. 서명이 7500명을 넘으면 이 청원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리라는 것이다. 아리마 교수가 트위터를 통해 자기 입장을 열심히 항변하는 데는 이 숫자가 점점 올라가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전혀 엉뚱한 곳을 향해 분풀이를 하고 있다. 한국이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 있다며 한국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7일 밤 10시경에 쓴 글에서 그는 '공작원'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한국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안부의 진실을 전하려는 인물에게 한국 미디어가 네거티브를 하고, 인권침해를 하고 있습니다"라며 "이렇게 해서 위안부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방해해왔습니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리마 데츠오의 트위터 글. ⓒ 아리마 데츠오


그는 8일 오전 8시경에 쓴 글에서는 "다시 반복합니다"라며 "어째서 한국 미디어는 나의 해임을 요구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 뒤 "내가 역사적 사실을 밝히려 하고, 위안부 강제연행·성노예는 없었음을 증명하고 고노 담화의 파기를 계속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자답했다.

아리마 데츠오 와세다 대학 교수는 일본 운동단체에 의한 해임 청원을 한국에 의한 해임 청원으로 간주해놓고 한국을 맹렬히 비판한다. 차별과 분열을 조장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일본 운동단체가 제동을 걸고 있는데도 '자신에 대한 한국의 탄압'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있다. 엉뚱한 분풀이이자, 씁쓸한 피해자 코스프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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