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6 11:10최종 업데이트 21.10.16 11:12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카카오맵 자전거 내비게이션은 자꾸 경고음을 냈다. 하지만 복잡한 도심이 아닌 해안길이었다. 북두칠성을 보며 방향을 헤아리듯이 나는 갈림길에서 바다를 보며 노선을 정했다. 그러면 막다른 길이 나오거나 거칠고 텅 빈 지방도가 나왔다. 


길이 끊겼으면 갈림길로 되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대신 운이 좋으면 방파제를 치고 해변길 위로 느닷없이 쏟아지는 바닷물을 뒤집어썼다. 또 너른 벌판을 가로지른 농로로 잘못 들어서면 빳빳하게 선 벼의 가르마를 타면서 달리는 호사를 누렸다.

화진포에서 거진항까지 5.5km, 해안 길이 중간에 끊겼다. 내륙 도로를 타고 거진항에 도착한 뒤 등대까지 달렸다. 알전구 수백 개를 주렁주렁 매단 오징어배가 보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명태잡이가 번성해서 '거진항에 거지가 없다'는 말이 떠돌았다는 거리는 한산했다. 시장끼를 해결하려고 둘러봤는데 모두 횟집이었다. 가장 싼 것이 회덮밥과 물회였다.
 

거진항 인근 백섬해상전망대에서 바라본 비취색 바다. ⓒ 권우성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 권우성

 
"아이구, 시원타!"

얼음 육수를 한 숟가락 떠먹자 탄성이 터졌다. 쌉싸래한 멍게향이 입안에 퍼지면서 침이 솟았다. 건더기를 입안에 넣자 싱싱한 잡어와 얇게 채를 썬 채소가 씹혔다.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비웠더니 제법 배가 불렀다. 어부들이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려고 고추장·된장에 무친 회에 물어 부어 마셨던 데서 유래했다는 물회 맛, 내겐 간단치 않았다.

[거진항-북천 철교] 속도는 근육을 지배한다

해변길을 달리다가 거진 1교를 지나서부터 7번 국도로 갈아탔다. 그때까지만 해도 라이딩 (riding)반, 산책 반이었다. 10km 속도로 유산소 운동하듯 달렸다. 수려한 해안 풍광을 눈과 카메라에 담을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속도는 시선을 지배했다. 7번 국도에 올라선 순간부터 경주마처럼 앞만 보였다. 대형 트럭과 활어차, 승용차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전거 바로 옆으로 빠르게 질주했다. 곡예를 하듯이 좁은 갓길을 시속 30km 이상으로 내달렸다. 큰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자전거가 흔들렸다. 

속도는 근육도 지배했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의 힘으로 페달을 밟을 때 왼쪽 종아리 근육과 아킬레스건으로는 페달을 끌어올렸다. 이 때 페달은 밟는 게 아니라 굴리는 것이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 운동이다. 핸들을 잡은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등을 활처럼 구부려 바람 저항을 줄인 채 고개를 숙이고 눈은 치켜떴다.   

자동차들은 서행운전하거나, 우회해서 추월했다. 간혹 나를 위협하듯이 한 뼘 옆으로 스치듯 지나치는 차도 있었다. 한 번은 자동차의 꽁무니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아! 운전 똑바로 해! 죽을 뻔 했잖어."

이유가 있었다. '자전거는 차'다. 교통법규상 국도의 한 차선으로 달릴 권한이 있다. 하지만 나는 승용차에 한 차선을 양보했다. 그럼에도 신경질적 반응이라니... 나는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속도는 여행자의 감성도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선배, 무섭다. 다른 길, 없을까?"

7번 국도로 들어서기 전만 해도 휘파람을 불고, 뽕짝을 부르며 따라왔던 후배 이준호 기자였다. 사실 15년차 자출(자전거 출퇴근) 이력을 가진 나도 아찔했다. 속도에서 해방되자고 마음을 먹으니 다른 길이 보였다. 반암항을 통과해 해안으로 이어진 마을길이었다. 

초계천 다리를 건너 옛 북천철교에 도착했다. 1930년 경 일제가 놓았던 동해북부선 철교인데 6·25전쟁 때 북한군이 군수물자를 운반하자 아군이 함포사격으로 폭파했다. 60여 년 동안 방치됐던 끊어진 철교는 걷기·자전거 전용 길로 재탄생했다. 

북천은 나에겐 낯이 익었다. 35년 전, 고성의 한 초병이었을 때였다. 북천 연어의 미끈한 몸통을 두 팔로 껴안고 바닥에 세우니 내 목까지 차고 올라왔다. 입이 쩍 벌어졌다. 당시 매일 식탁에 오른 튀긴 연어를 물리게 먹었다. 제일 큰 연어는 상급 부대로 상납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연어 떼는 진부령 고개의 예비 대대에서 훈련받을 때에도 따라왔다. 팔뚝만한 연어가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계곡물을 거슬러 오르려고 몸부림쳤다. 병사들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연어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킨 뒤 백병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전리품을 챙겨서 막사로 복귀하곤 했다. 

북천 철교에서 내려 은빛으로 반짝이는 강물을 보니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 시인의 말도 떠올랐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그 언제서 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 길"(강산에의 '연어'중)

"강물은 아래로 흐르면서 자신의 물살과 체온을 연어들에게 가르친단다. 그리고 길을 가르쳐주지.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하는 이유를 말이야."(안도현 '연어' 중)


오는 10월이면 300여개의 알을 낳으려고 수만km를 헤엄쳐온 은빛 연어들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매년 양양군에서 열리는 '연어 축제'에서 3만원을 내면 알래스카와 베링해로 갔다가 북천과 남대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가수와 시인은 연어의 꿈을 노래했지만, 지금도 나는 인문학적 상상력보다 군침부터 돈다.

[북천철교-청간정] 곶이 멈춘 자리에 만이 시작됐다
 

남천 하구의 그림같은 모습. ⓒ 김병기

 
내비게이션으로 송지호를 찍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비경은 수시로 두 바퀴를 멈춰 세웠다. 남천 하구에 둥글게 쌓인 새하얀 모래사장은 쪽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내비치는 투명 유리판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두어 점 떨어뜨려 녹인 것 같았다. 푸른 바다와 하늘을 끼고 달리다보니, 내 눈동자가 쪽빛으로 물든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송지호로 가는 길은 '곶'과 '만'의 연속이었다.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해안은 '곶'. 후빙기 때 수면이 올라가면서 산줄기였던 곳이 바다에 잠겼을 것이다, 침식에 강한 바위가 파도를 버텨낸 곶에는 화강암 암석 지대의 비경이 펼쳐졌다. 곶이 멈춘 자리에서 만이 시작됐다. 육지 쪽으로 움푹 패인 만에서는 크고 작은 해수욕장과 작은 항구들이 나타났다. 

송지호 전망대로 직행하지 않고 우회해서 호젓한 둘레길로 접어든 뒤 문암리 백도와 교암항을 지나니 과거 군 복무 시절, M60기관총을 메고 걸었던 군 순찰로가 나왔다. 방책도 없는 모래해변 바로 옆에서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길에 '평화누리길'이란 안내판이 서 있었다. 과거 민간인 통제구역이었다.
 

아야진 해변 너럭바위 위에 펼쳐진 평상들. ⓒ 김병기

 
"헐~ 바다에 뜬 평상이네."

뒤쪽에서 쫓아오는 이준호 기자에게 소리쳤다. 너럭바위 해변인 아야진이었다. 물웅덩이가 없는 곳에 평상이 즐비했다. 이곳의 옛 지명은 '구암마을'. 등대가 있는 곳의 바위가 거북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었다. 아이들은 바위 위에 찰랑거리는 물속에서 뛰어 놀았다. 단단한 거북의 등짝 위였다.  
 

'관동8경'의 하나인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정(淸澗亭). ⓒ 권우성

 

'관동8경'의 하나인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정(淸澗亭). ⓒ 권우성

 
해안길을 10여분 더 달리면 남한 땅 관동팔경 중 가장 북쪽 누각인 청간정이 나온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는 아깝다. 천후산과 설악산에서 시작된 청간천이 동해 하구 기암절벽과 만나는 곳에 세워진 이곳을 '연려실기술 지리전고편'은 이렇게 묘사했다. 

"석봉이 우뚝 솟았는데 층층마다 대와 같고 높이가 수십 길이나 된다. 위에는 용틀임을 한 소나무 몇 그루가 있다. 대의 동쪽에 만경루가 있으며, 대의 아래쪽에는 돌들이 어지럽게 불쑥불쑥 바다에 꽂혀 있다. 놀란 파도가 함부로 물을 때리니 물방울이 눈처럼 날아 사방에 흩어진다."

절창이다. 팔각의 거친 주춧돌 위에 얹은 팔작지붕 누각에 오르면 단청 처마 끝을 걸쳐 바라보이는 모래해변 풍경이 그림 같다. 자전거에서 내려 청간정 옆쪽 나무 데크로 들어서서 해파랑길로 내려오면, 고운 백사장의 해변이다. 해안선과 인접해 달릴 수 있는 평화누리길은 봉포항을 지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청간정-아바이마을] 돌아갈 수 있을까? 북천의 연어처럼

청간정에서 아바이마을까지 7번 국도로 올라타지 않고 마을길로 달릴 수 있다. 번잡한 도심에서는 신호등이 자꾸 두 바퀴를 세웠다. 속초항을 지나 금강대교와 설악대교를 올라탔다가 청초호 건너편 마을에서 한참을 헤맸다. 설악대교로 다시 올라타서 다리 중간 지점에서 내려와야 아바이마을이다.
 

강원도 속초시 아바이마을. ⓒ 권우성

 

강원도 속초시 아바이마을 식당골목. ⓒ 권우성

 
"분단의 아픔을 자전거 타기로 이어보자"

아바이마을 갯배 선착장 자전거 거치대 앞에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와 분단, 어색한 조합이지만 이유가 있었다. 1951년 1·4후퇴 때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온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함경도 명태 순대, 오징어 순대, 아바이 순대 간판이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비좁은 마을길을 걷다가 할머니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할아버지를 아바이, 할머니를 어마이라고 불러."

나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 '아바이'를 따서 아바이마을로 불린다고 했다. 

"여긴 강호동이 그거(1박2일 프로그램) 촬영한 뒤에 먹자골목으로 바뀌었어. 코로나 이후로는 사람들이 안 와. 뭔 장사를 하든 죽을 지경이여. 울 엄마는 20살 넘어 여기로 왔고, 나는 갯배를 타고 초등학교를 다녔어. 그런데 여기 할머니는 우리 엄마랑 같이 내려왔다는데 아바이마을에서 최고령이지. 97세."(60세의 한 아주머니)  

 

강원도 속초시 아바이마을. ⓒ 권우성

강원도 속초시 아바이마을을 오가는 갯배. ⓒ 권우성

강원도 속초시 아바이마을을 오가는 갯배. ⓒ 권우성


청초호 물길 사이를 오가는 '갯배 선착장'. 왕복 1000원(자전거 승차비 포함)을 내고 갯배를 탔다. 아바이마을에서 중앙동을 잇는 동력 없는 멍텅구리 배이다. 승객들이 직접 쇠갈고리로 바닥의 쇠밧줄을 끌어 당겨서 50m 물길을 건넜다. 뱃고동 대신 즐거운 뽕짝이 흘러나왔지만 선착장 옆 현판에서 본 유형일 시인의 시 '갯배'가 읊은 도강의 역사는 고단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서 잠시 쉬어 가려 앉아/고향 가는 날만 기다리며 삶을 연명하려 버텨내고/(중략)/작은 배인지 물 위를 걷는 것인지/니아카를 끌고 머리에 다라를 이고/60년을 기다리며 60년을 넘어 다니네."

아바이 순대와 오징어순대로 배를 채운 뒤 식당 주인 건계화(60)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북쪽에서 내려오신 분 중에 지금 살아계신 분이 0.5%나 될까요? 백사장에서 움막을 짓고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지만, 이웃집 숟가락 개수도 알 정도로 정겨운 마을이죠. 이북에서 잔칫날에 해먹던 아바이 순대도 당면만 잔뜩 집어넣는 다른 지역과는 달라요. 무청을 많이 썰어 넣고 쌀과 야채, 선지도 듬뿍 넣습니다. 과거 명태가 많이 잡혔을 때에는 아가리에 야채와 쌀을 넣은 뒤에 찜을 쪄 먹었어요."
 

아바이마을에 세워진 '아바이상'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함경도 실향민들의 마음을 담아 고향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 권우성

 
이곳 골목길을 누비며 한참을 머문 나는 자전거 경로를 완전히 이탈했다. 수시로 경고음을 울렸던 내비게이션과 함께 속도를 껐더니 시간 여행길이 열렸다.  

'모천회귀(母川回歸)'. 자기가 태어난 강물의 냄새를 기억하며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생태를 이르는 말이다. 7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북녘 땅이지만 고향의 향기는 잊지 않았다. 매년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북천 연어는 속초 아바이를 닮았다. 

 

북천 연어는 속초 '아바이' 닮았다 해안선 1만리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동해안 2편으로 화진포에서 속초 아바이마을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 김병기

 
   
[내가 간 길]  
화진포->거진항->북천철교->가진항->송지호->아야진해변->청간정->아바이마을

[인문·경관 길] 
-북천 철교 : 1930년경 일제가 자원수탈 목적으로 원산~양양간 건설한 동해북부선 옛 철교. 6·25때 아군 함포 사격으로 폭파, 교각 하부에 많은 포탄자국이 나 있다.   

-청간정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 설악산에서 발원한 청간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하구에 있다. 조선 인조 때 군수로 부임한 이식은 "정자 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면 물과 바위가 서로 부딪쳐 산이 무너지고 눈을 뿜어내는 듯한 형상을 짓기도 하다"고 노래했다.

-아바이마을 갯배 : 속초 시내와 아바이마을 사이의 50m 되는 물길을 왕복하는 배이다. 무동력선인 이 배위에 올라 속초에 정착한 함경도 아바이들의 삶을 추억할 수 있다. 

[사진 한 장] 
청간정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는 한 폭의 그림 같다.  

[추천, 두 바퀴 해찰 길]
평화누리길 : 평화누리길은 DMZ 접경지역을 걷는 길이다. 그런데 동해안 송지호부터 봉포항을 지나서까지 나타나는 자전거 길 명칭도 같았다. 방책 없이 바다를 끼고 달릴 수 있다. 

[밥&거처] 
거처 : 아바이마을에는 숙소가 거의 없다. 중앙동쪽에 거처를 잡는 게 좋다. 
밥집 : 거진항 횟집의 물회와 아바이마을의 순대를 추천한다.     

[자전거팁 : 안장통]
60km 정도를 달리니 안장통이 시작됐다. 바셀린이나 접촉성 피부염 연고를 바르면 증상이 완화된다. 안장을 자기 몸에 맞게 조절하거나, 안장 위에 실리콘 덮개를 씌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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