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9 19:12최종 업데이트 21.10.0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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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 새벽 5시쯤, 우리나라 최북단 대진항 근처 펜션에서 눈을 떴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들리는 파도소리. 전날 밤바다를 비춘 교교한 달빛 아래 아코디언을 켰던 숙박집 주인 신재석(66)씨와의 밤늦은 대화가 떠올랐다.

[여행 전야] 아코디언과 파도, 그리고 윤슬

"90년대부터 대진항에 명태잡이 배가 멸종됐어요. 해안 주변도 죄다 덕장이었는데, 대관령으로 올라갔죠. 명태잡이 할 때는 대형 선박 선주가 10여명을 데리고 다녔는데, 이젠 '1인 1배'입니다. 바다에서 낚시로 문어 잡는 자영업자들이죠." 


"허, 참. 요즘 수온이 높아져서 제주에 살던 방어 떼가 올라와요. 작년에 그물을 한번 끌어올려 3억 5천만 원어치를 잡은 어선도 있어요."  

마른 체구의 그는 구릿빛 얼굴에 콧수염을 약간 길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허름한 흰색 반팔 면티가 뭍으로 갓 올라온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고성 대진항 인근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신재석씨. ⓒ 김병기

 
"아, 여기. 대진에 '아산 휴게소'가 열렸죠. 육로관광 출발점이었어요. 당일치기, 2박3일 일정이 있었는데, 하루 1500여명 관광객이 작은 동네의 숙박 시설과 거리에 넘쳤죠. 그런데 2008년 금강산 총격 사망사건 때 7번 국도가 막히고 나서 15년, 동네가 쫄딱 망했어요."

그는 최근 강릉에서 통일전망대 민통선 제진역까지 철도를 개통하려고 9공구를 발주해 측량을 시작했고 북쪽 철도는 이미 제진역까지 놓여 있다는 말끝에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더라도 이 철도를 통해 DMZ을 보고 싶은 관광객들은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람의 몸에는 역사가 새겨 있다. 지문 같다. 낯선 여행자 앞에서 대진의 어제를 그림 그리듯이 풀어낸 그는 '고향의 봄' '갈대의 순정'을 연주했다. 아코디언의 거친 선율은 갯바위에 부딪친 파도 소리와 뒤섞였다. 바다 위에 쏟아진 보름달빛은 물결이 일 때마다 노란 별빛처럼, 노란 날치 무리처럼 수면 위로 뛰어 올랐다. 이를 본 후배 이준호 기자가 말했다. 

"선배, 저걸 우리말로 '윤슬'이라고 부른답니다." 

이름, 참 예쁘다. 

여행자의 심성을 지배하는 건 이성보다 감성이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 낯선 공간에 서면 일상에서 나를 팽팽하게 묶어놨던 이성의 사슬이 느슨해진다. 일상의 속도를 멈추면 그간 보지 못하고 흘려보낸 감성의 조각들이 빛을 내며 꿈틀댄다.   
 

대진항 펜션에서 본 '윤슬'.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동해. ⓒ 김병기

 
[최북단 항구] "문어 지지 마요"

여행 첫날, 동이 틀 때까지 잠자리에서 뒤척이던 나는 창 밖을 보며 내뱉었다.  

"동 텄네, 해 보기 글렀네."

바다와 하늘 사이에 붉은 색 형광펜으로 그은 듯한 굵은 실선은 구름 뒤편에 갓 떠오른 태양의 존재를 알렸다. 대진항에서 출발한 고깃배들이 붉은 수평선 아래쪽에 또 다른 흰색 실선을 그으며 지나갔다. 쪽빛 파도는 곡선을 그리며 실선들을 끊임없이 지웠다. 아침밥부터 먹으려고 대진항부터 찾았다. 

명태잡이가 멈춘 항구에서 국적을 알 수 없는 황탯국에 밥을 말아먹은 뒤 어판장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작은 어선 100여 척이 밧줄에 묶인 채 파도가 칠 때마다 서로 몸을 부비며 들썩였다. 신씨의 말대로 대부분 문어 잡이 배일 것이다. 새벽 3시경 출항한 문어 잡이 배들이 들어오는 오전 11시경에야 활기를 띤다고 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 ⓒ 권우성

 

문어잡는 모습이 선명하게 새겨진 대진항 방파제. ⓒ 권우성

   
한쪽 구석에서 흰 김을 내뿜으며 끓는 가마솥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아니, 문어 대가리가 이렇게 커요? 사람 머리통만하네."

핸드폰 카메라를 다짜고짜 솥 안으로 들이미는 것이 멋쩍어서 혼잣말처럼 장화를 신은 어부에게 한 마디 건넸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아니, 그건 애기여. 이거 찍지 말고, 좀 이따가 좋은 거, 진짜 큰 거 한번 찍어봐."

막 들어온 어선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어부는 배 밑바닥 어항에서 대게를 대여섯 마리씩 연거푸 꺼내 경매장으로 향할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았다. 대게는 큰 집게발을 쩍쩍 벌리며 걸리는 놈은 아주 작살을 내겠다는 듯이 허공을 위협했다. 아주머니들은 선풍기를 틀어놓고 옆에서 그물을 손질했다. 

깊게 골이 패인 어부의 손놀림, 위판장 바닥에 널부러져 눈과 입을 껌뻑거리며 물을 삼키는 가자미와 작은 잡어들, 건조대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는 문어들. 대진항의 갯비린내는 생명을 움켜쥐려는 먹물 같은 삶이 내뿜는 향기였다.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오다가 한 축대에 큼지막하게 쓴 글귀를 보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문어 지지 마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 ⓒ 권우성

 
[대진항-통일전망대] 7번 국도, 길이 아니라 마음이 끊겼다 

길은 근육이다. 마디와 마디를 잇는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7번 국도의 끝, 인적 끊긴 마디부터 살핀 건 온전히 23년 전의 기억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7번 국도를 달리면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그곳이 있다. 1998년 겨울, 속초에서 '봉래호'를 타고 북한 장전항에 도착한 뒤 금강산 온정리 마을에 갔었다. 

당시 주간지 기자였던 나는 금강산을 둘러보고 북쪽 사람들을 만난 감격을 기사 대신 시로 썼다. 버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는 감성의 언어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고 편집국장에게 둘러댔지만, 취재를 게을리 한 탓도 있었다. 당시 쓴 시의 제목만 기억한다. 한 소설가의 책과 같았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내가 본 것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백발의 도통한 노인이 우뚝 서있는 듯한 금강산의 겨울이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자체였지만, 70년대 풍의 짙은 갈색 옷을 입고 남쪽 이방인들을 쳐다보는 사람들에 더 끌렸다. 그래서였다. 통일전망대에 서서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잇던 길부터 더듬었다. 길이 끊긴 게 아니라 마음이 끊겼다.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 권우성

 
전망대에 오르기 전에 관문이 있다. 2.5km 아래쪽에 있는 출입신고소이다. 대진항에서 10여분 달리면 나온다. 전망대까지 약 10km는 자전거 출입 금지 지역이다. 1인 입장료 3000원과 전망대 주차비 5000원을 내면 승용차로 이동할 수 있다. 택시를 불렀다. 왕복요금은 무려 6만원. 전망대에서 멈춰 있는 시간도 요금으로 계산했다.

"여긴 우리나라 최북단 마을 명파리죠. 이 길은 7번 국도인데, 통일전망대까지밖에 갈 수 없어요. 금강산까지 길은 뚫려 있죠. 저기 금강산이 보이네요.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라고 하는데, 저 섬이 일만 이천 봉의 마지막 봉우리인 송도입니다."

이 말을 듣고 택시 요금이 비싸다는 생각을 접었다. 운전기사인 한아무개씨는 민간 문화 해설사였다. 그는 해발 70m 고지 위에 34m의 높이로 서 있는 전망대 앞 주차장 나무 그늘에 차를 세웠다.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 권우성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를 방문한 시민들이 망원경으로 금강산과 해금강의 절경을 비롯해,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남북 최전방 초소 등을 살펴보고 있다. ⓒ 권우성

 
전망대에 들어선 나는 7번 국도부터 살폈다. 금강산 육로관광 길이었다. 7번 국도와 해안선 철책 사이에 동해북부선 철도로 나 있었다. 남과 북이 마음만 열면 열릴 수 있는 길이었다. 금강산 구선봉과 송도, 그리고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서린 감호, 해금강을 뜯어보기 시작한 것은 그 뒤부터였다. 구름이 끼어 희미해진 풍광은 흐린 날의 수채화 같았다. 
    
[통일전망대-화진포] 김일성 별장 '파노라마 영상'과 솔 그늘

"선배, 여긴 서울보다 5도 낮답니다."

전망대 출입관리소에서 헤어질 때 권우성 사진기자가 귀띔한 말이다. 승용차를 타고 동해안 풍경을 담던 권 기자가 자전거로 출발하는 나에게 위로 차원에서 건넨 말인 듯했다. 실제로 '열대야' '최악 더위' 등의 소식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지만, 페달을 밟을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의 세포를 깨웠다.    

왕복 2차선 도로의 한쪽 차선을 거의 독차지하면서 초도항을 거쳐 8.5km를 달렸다. 해당화 꽃이 핀 도로에선 노래를 불렀다. 솔밭과 화진포해수욕장 사이로 난 길을 지나 30여분 만에 도착한 곳이 이승만 별장이다. 3000원을 내고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 등을 관람할 입장권을 샀다. 3개의 별장, 이 존재만으로 이곳의 비경을 짐작할 수 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이승만별장. ⓒ 권우성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이승만별장. ⓒ 권우성

 
"여긴, 35년 전에 내가 빗자루 들고 청소했던 곳이여."

별장에 오르면서 후배 이준호 기자에게 큰소리를 쳤다. 잠시나마 내 손때가 묻은 곳이다. 군복을 입고 빗자루로 쓸던 흙마당은 나무 깔판과 대리석 바닥으로 바뀌었다. 시멘트 구조물밖에 없었던 텅 빈 공간은 각종 기록과 유품으로 채워졌다. 이승만 찬양일색인 전시물 중 이런 대목도 눈에 들어왔다.  
 
"1960년 3월 15일의 정·부통령 선거를 규탄하는 4.19 학생들의 시위가 경찰 발포에 의해 많은 인명이 희생된 비극적인 사태로 전개됐다. 뒤늦게 부정선거를 알게 된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를 결심하였다."

그가 부정선거를 뒤늦게 알았을까? 역사는 편집된 사실의 기록이다. 진실이 아닐 때도 많다.
 

강원도 고성군 김일성별장과 화진포해수욕장. ⓒ 권우성

 

강원도 고성군 김일성별장. ⓒ 권우성

 
화진포가 내려다보이는 이승만 별장과는 달리 김일성 별장에 서면 화진포 해수욕장의 하얀 백사장과 바다를 볼 수 있다. 2층에선 눈부신 풍경이 파노라마 영상처럼 펼쳐진다. 녹색에 가까운 짙은 쪽빛 바다가 투명하게 일렁인다. 1938년경 독일 망명 건축가 베버가 지은 원통형 2층 석조건물인데, 1948년 김일성 가족들이 찾았던 곳이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이기붕별장. ⓒ 권우성

 

화진포 이기붕 별장 옆의 '금강 소나무길' 풍경 ⓒ 김병기

  
이곳에서 나와 이기붕 부통령 별장으로 가다가 숲길로 샜다. 잠깐이었지만 100년 이상 된 울창한 금강 소나무 샛길을 따라 페달을 밟으며 솔향기로 흠뻑 젖은 온몸의 땀을 말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솔잎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었다. 동해안이 서울보다 5도 낮았던 것은 거센 바닷바람과 오감을 사로잡는 이런 솔 그늘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깨를 짓누르던 일상의 무게를 덜면 마음의 온도는 내려간다.    
 

해안선 1만리 두 바퀴 여행-동해안 1편 해안선 1만리 두바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동해안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화진포까지의 영상입니다. ⓒ 김병기

 
[내가 간 길]  
대진항 →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 통일전망대 → 출입신고소 → 화진포해수욕장 → 화진포 → 이승만 별장 → 김일성 별장 → 솔밭 → 이기붕 별장

[인문·경관 길] 
통일전망대 : 북위 38도, 이북 88km 지점의 우리나라 최북단 전망대. 모래 해변 뒤쪽으로 금강산 구선봉과 해금강, 송도 등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대진항 : 동해안 최북단 항구. 명태가 주종이었지만, 지금은 넙치·문어·청어 등이 많이 잡힌다. 위판장에 가면 싱싱한 물고기를 싼값에 구입해 맛볼 수 있다.  

화진포 : 해당화 꽃이 만발해서 '화진포'다. 동해지역 최대 담수호, 연어·숭어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이승만·김일성·이기붕 별장을 관람하면서 과거를 조망할 수 있다. 

[사진 한 장] 
통일전망대에서 본 금강산과 김일성 별장에서 내려다 본 쪽빛 동해  

[추천, 두 바퀴 길]
이기붕 별장 옆 금강 소나무 길

[밥&거처] 
거처 : 대진항 주변에 펜션이 여럿 있다. 
밥집 : 대진항 횟집에선 싱싱한 활어와 문어 등을 맛볼 수 있다.    

[자전거팁 : 운반]
도심 전철 끝 칸에 타서 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고속버스 짐칸에 실으면 된다. 뒷바퀴부터 짐칸에 들이밀면 쉽다. 전철역 계단 양측 끝 자전거 이동 통로를 이용하고, 부득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경우, 굴러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대중교통 연결 수단이 없을 때에는 포털사이트 검색으로 콜밴을 부르면 된다. 예외도 있지만, 택시비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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