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26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 부산영화제


"올해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대박이다."
 
지난 15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아래 부산영화제)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에서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선정된 영화들에 대한 자신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베를린, 베니스국제영화제로 수상한 작품들이 대거 올해 부산영화제 상영작 목록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칸영화제 수상작으로는 황금종려상 <티탄>(쥘리아 뒤쿠르노), 심사위원대상 <히어로>(아스가르 파르하디), <6번 칸>(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상 <아네트>(레오스 카락스), 심사위원상 <아헤드의 무릎>(나다브 라피드), <메모리아>(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남우주연상 <니트람>(저스틴 커젤), 감독주간 황금눈상 수상작 <무지의 밤>(파얄 카파디아) 등이 상영된다.
 
베를린영화제 수상작은 황금곰상 <배드 럭 뱅잉>(라두 주데), 관객상 <흰 암소의 발라드>(베타쉬 사나에에하, 마리암 모그하담) 등이, 베니스국제영화제 수상작은 심사위원 대상 <신의 손>(파올로 소렌티노), 심사위원특별상 <일 부코>(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상 <파워 오브 도그>(제인 캠피온) 등이 부산을 통해 국내 관객들과 먼저 만날 예정이다.
 
이밖에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황금표범상 <사랑과 복수>(에드윈), 심사위원특별상 <쓰촨의 신-신 극단>(치우지옹지옹),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하이브>(블레르타 바숄리), 심사위원특별상 <자키>(클린트 벤틀리) 등도 부산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

홍콩에 대한 '애가' 담은 폐막작
 
수준 높은 해외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부산영화제의 큰 매력이지만 올해 프로그램 중 눈여겨 보이는 영화들은 '홍콩, 민주주의, 현대사'를 다룬 작품이다. 그동안 아시아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해 힘써왔던 부산영화제의 노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영화제 폐막작 <매염방>

부산영화제 폐막작 <매염방> ⓒ 부산영화제 제공

 
여기서 주목되는 작품은 폐막작 <매염방>이다. 올해 개폐막작은 한국영화와 홍콩영화가 각각 맡게 됐는데, <매염방>은 지난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홍콩영화 <칠중주: 홍콩 이야기>와 공통분모가 있다. 자유로웠던 홍콩에 대한 추억을 되새긴다는 점이다.
 
홍콩의 전설적인 가수이자 배우인 매염방은 '홍콩의 딸'이라고 불릴 정도로, 홍콩의 국내외적 상황에 적극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 왔다. 영화는 과거의 공연과 영화, 인터뷰 및 방송 자료화면 등을 곳곳에 삽입하여 매염방을 현실로 불러낸다.
 
부산영화제 측은 "<매염방>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우리가 사랑했던 매염방에 대한 드라마이자, 홍콩의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에 대한 애가(哀歌)"라며 중국의 강력한 통제에 자유를 잃고 있는 홍콩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
 
개막작은 최민식, 박해일의 로드무비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가 상영된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무산된 칸영화제 상영작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만족했다가 부산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관객과 첫 만남을 갖게 됐다.
 
해외 거장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는 프랑스 레오 카락스 감독과 일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가 선보인다.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선정되는 작품은 5편 안팎 정도였다는 점에서 올해 상영은 예전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영화상영 외에 기자회견이 별도로 예정되는 등 다른 상영작들보다 더 예우를 받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방문할 수 있는 인사들이 제한되면서 전체 편수가 줄게 됐다. 두 명의 감독이 3편의 영화를 선보이는데, 혼자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이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드라이브 마이 카>가 칸영화제 각본상을, <우연과 상상>이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것이 작용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연이어 수상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에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를 자부하는 부산영화제가 예우하는 것이다.
 
레오 카락스 감독이 <홀리 모터스>(2012)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아네트>는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이었다. 레오 카락스 감독은 마스터 클래스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봉준호 감독과 스페셜 토크를 통해 영화 상영 외 관객들과 만난다.
 
특히 레오 카락스 감독은 특히 박근혜 정권 당시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탄압을 받을 때 해외에서 연대의 목소리를 낸 대표적 영화인 중 하나라는 점에서 부산 방문이 더욱 의미 있어 보인다.
 
김귀정 열사, 부마항쟁, 전태일 열사
 
 다큐멘터리 영화 <왕십리 김종분>

다큐멘터리 영화 <왕십리 김종분> ⓒ 부산영화제 제공

 
다큐멘터리 경쟁에 선정된 작품들은 주로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도드라진다. 먼저 세월호 다큐 <나쁜 나라>(2015) 등을 연출한 김진열 감독이 신작 <왕십리 김종분>을 통해 고 김귀정 열사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한다.
 
고 김귀정 열사는 1991년 5월 25일 당시 노태우 군사독재 정권의 공안통치에 반발해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압사 사고를 당했다. 딸을 잃은 아픔을 삭이면서, 왕십리에서 50년간 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분씨의 삶을 따스하게 조명한다. 올해가 고 김귀정 열사 30주기라는 점에서 뜻깊은 선정이다.
 
<말해의 사계절>(2017)로 주목받은 허철녕 감독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작업에 동행해 만든 <206: 사라지지 않는>를 선보인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동윤 감독의 <10월의 이름들>은 부마민주항쟁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40여 년 전 박정희 유신독재를 종말로 이끌었던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기억을 풍부한 영상 자료와 함께 담았다. 최근 수년 동안 꾸준하게 부마민중항쟁을 기억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던 부산영화제의 기조가 이어지는 셈이다.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에 선정된 애니메이션 <태일이>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그린 영화로 전태일 열사 50주기였던 지난해 개봉을 준비하다 코로나19로 인해 1년 연기됐다. 올해 11월 관객들과 만나기에 앞서 부산영화제를 통해 먼저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야외상영인 오픈 시네마에서는 유덕화 양조위가 출연한 <무간도>가 디지털로 복원돼 상영된다. 유덕화, 양조위 모두 홍콩 민주화 시위를 적극 지지했던 배우들이다. 아시아 여성 감독 특별전 '원더우먼스 무비'에서 <심플 라이프>를 상영하는 허안화 감독의 경우 지난해 개막작 <칠중주: 홍콩 이야기>에 참여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 명필름

 
한편 올해 부산영화제 상영작은 모두 70개국 223편이 상영된다. 예년 300편 정도가 상영되던 것과 비교하면 75%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규모를 축소했던 지난해의 경우 모든 작품이 1회 상영에 그쳤으나 올해는 예전처럼 2~3회 상영된다.
 
개막식 등 모든 행사를 정상적으로 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은 코로나19를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굳건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부산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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