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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벌레는 꽁무니의 꼬리털이 변형되어 생긴 한 쌍의 집게를 가지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로는 'earwig'라고 하는데 날개를 펼친 모습이 마치 사람의 귀처럼 보인다고 해서 지어졌다. 'wig'는 고대 영어 'wicga'에서 왔는데 딱정벌레라는 뜻이다.

집게벌레 무리는 주로 눅눅한 땅바닥에 살며 작은 곤충을 잡아먹거나 썩은 낙엽과 같은 유기물을 처리한다. 대개 야행성이라 낮에는 돌 밑이나 낙엽, 땅굴 속에 숨어서 천적을 피한다. 위험을 느끼면 꼬리를 쳐들고 집게로 위협을 하나 물려도 아프지는 않다. 집게벌레 무리는 다른 몇몇 종의 곤충(뿔노린재, 물장군, 물자라 등)과 함께 알을 지키는 습성이 유난히 강하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20~70개 정도의 알을 땅 속에 낳고 잘 보살핀다. 어미는 입김을 불어넣어 습도를 조절하고 흙을 털어내어 곰팡이로부터의 습격을 막는 등 헌신적으로 돌본다. 육아 기간 동안 먹지 않고 버티므로 새끼들이 자라나면서 어미는 시나브로 죽어간다.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식량으로 주고 생을 끝낸다.
 
러시아의 식물학자 코마로프를 기념하여 이름 지어졌다
▲ 고마로브집게벌레의 아름다운 속날개 러시아의 식물학자 코마로프를 기념하여 이름 지어졌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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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로브집게벌레는 가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먹이활동을 한다. 반날개처럼 겉날개가 절반 정도만 남아있지만 의외로 멋진 속날개를 갖고 있다. 평소에는 3단으로 고이접어 갈무리하고 있으나 가을이면 화려한 날개를 펼치고 창공을 나른다. 봄 철에도 비행을 하지만 주로 나는 때는 10월 경이다. 

왜냐하면 짝짓기를 하고 월동 준비를 하려고 수십여 마리가 떼를 이루기 때문이다. 쉬운 비상을 위해 풀줄기나 나뭇가지 위로 기어 올라가므로 이 때를 잘 살피면 멋진 속날개를 볼 수 있다. 날개를 펼치는 시간은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나 사진으로 담아 보면 주황색과 눈부신 코발트 계열의 파랑색, 진밤색이 어우러져 예쁘장하다.

조복성과 석주명의 성을 받은 나비

명칭에서 '고마로브'는 소련의 식물학자 블라디미르 코마로프(V. L. Komarov)를 기리기 위하여 붙인 이름이다. 당시 28세의 젊은 과학자였던 고마로프는 1896년 아관파천(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 후에 소련군의 지원으로 북한과 만주일대를 탐사했다.

학명에 특정인의 이름을 넣는 예는 세계적으로 흔한 일이며 분류학의 체계를 세운 린네(Linnaeus)가 가장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복성을 기린 '조흰뱀눈나비'와 석주명을 기념하기 위한 '석물결나비'가 있다. 
 
석주명을 기리기 위해 '석'씨 문중의 일원이 되었다.
▲ 석물결나비. 석주명을 기리기 위해 "석"씨 문중의 일원이 되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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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 모두 대한민국 곤충 역사에서 큰 획을 그었는데 보통 사람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이는 석주명(1908~1950)이다. 그는 나비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과 41세의 젊은 나이로 살해 당한다. 우리나라 나비 이름 대부분은 그이가 명명했으며 살아서 계속해서 연구를 할 수 있었다면 눈부신 공적을 남겼을 터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석주명의 연구가 세계적 평판을 얻으면서 1938년에는 영국 왕립아시아학회로부터 한국산 나비의 총목록 집필 의뢰를 받는다. 생계를 미뤄두면서까지 몰두해 필생의 결정체인 <A Synonymic List of Butterflies of Korea, 한국의 나비 동종이명 목록> 영문판을 세상에 내 놓는다.
 
석주명이 영국 왕립아시아학회의 의뢰를 받아 내놓은 일생의 역작이다.
▲ 한국의 나비 동종이명 목록. 석주명이 영국 왕립아시아학회의 의뢰를 받아 내놓은 일생의 역작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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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초인적인 업적은 영국왕립학회에 소장되어 있는 <The Distribution Maps of Butterflies in Korea, 한국산 접류 분포도>로도 알 수 있다. 석주명의 책은 현재 국내 고서적 시장에서 100만 원 대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외국에서는 아마존에 매물이 나와 있다. 
 
조복성의 업적을 기려 '조'씨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 조흰뱀눈나비 조복성의 업적을 기려 "조"씨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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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성(1905~1971)은 우리나라 자연과학 발전을 주도했다. 해방 후에는 국립과학박물관장(현 국립어린이과학관)을 거쳐서 성균관대와 고려대에서 후학을 길러냈다. 여러 논문과 명저를 냈는데 보통 사람이 재미나게 읽어 볼 수 있는 책으로는 <조복성 곤충기>가 있다.

벌레 얘기만 가득찬 서적이 아니라 만주를 포함한 당대의 풍속을 알 수 있기에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석주명과의 만남도 짧게 기술되어 있어 글쓴이의 '인문학 곤충기' 시리즈처럼 흥미로운 내용이 펼쳐진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석주명, #조복성, #고마로브집게벌레, #아관파천, #코마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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