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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본인의 책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를 들어보이는 이유진 씨. 전국 곳곳에서 청소년과 성인에게 젠더교육을 하기도 하고, 타로 교육을 하고 글쓰기 모임도 하는 등 열정적으로 일한다. 그런 만큼 빨리 은퇴하고 싶다고 한다.
 본인의 책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를 들어보이는 이유진 씨. 전국 곳곳에서 청소년과 성인에게 젠더교육을 하기도 하고, 타로 교육을 하고 글쓰기 모임도 하는 등 열정적으로 일한다. 그런 만큼 빨리 은퇴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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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한풀 가라앉은 9월 초, 지리산 자락 북서쪽에 자리 잡은 남원을 찾았다. 주소에 적힌 털보식당 옆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조그맣게 나 있다. 올라가니 살롱드마고가 나타났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만나기로 한 이유진씨가 먼저 알은체를 해 주었다.
 
페미니즘 문화지구&북카페, 살롱드마고. 남원시청 뒷골목에 있다.
 페미니즘 문화지구&북카페, 살롱드마고. 남원시청 뒷골목에 있다.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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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드마고 내부는 전시장 같기도 책방 같기도 굿즈 상점 같기도 실크스크린을 비롯한 체험 공방 같기도 하고 찻집 같기도 하다. 실은 이런 다양한 일을 작당하는 곳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손님으로 와서 날이면 날마다 죽치고 앉아 책 읽고 차 마시고 뭔가 작당해도 지루하지 않을 듯하다.

어서 은퇴하여 이곳에 손님으로 오고 싶다는 이유진씨를 만났다. 그는 최근에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다른길)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유진씨를 안 건 <지글스>라는 잡지를 통해서였다. '지리산에서 글 쓰는 여자들'(지글스)이 쓴 글을 읽으며 웃기도 울기도 반성하기도 한 기억이 난다.

이유진씨는 어려서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다. 몸의 고통과 이로 인한 심리적 불안은 일상이었을 테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몸에 대해서 깊이 있는 얘기를 들어 보자.
  
살롱드마고 내부. 전시장 같기도 하고 책방 같기도 하고, 굿즈 상점 같기도 하고 실크스크린을 비롯한 체험 공방 같기도 하고 찻집 같기도 하다. 실은 이런 다양한 일을 위해 즐거운 작당을 벌이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살롱드마고 내부. 전시장 같기도 하고 책방 같기도 하고, 굿즈 상점 같기도 하고 실크스크린을 비롯한 체험 공방 같기도 하고 찻집 같기도 하다. 실은 이런 다양한 일을 위해 즐거운 작당을 벌이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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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안 가는 남자가 어디 있어"

전북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와 가장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곳을 찾다 강원도에 있는 대학을 갔다. 졸업하고 서울과 제주도에서 반성매매 단체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대학교 4학년 때 학교에 일이 있었어요. 총학생회장하고 단과대 학생회장들하고 교직원들이 룸살롱에 갔다가 걸렸죠. 등록금 벌려고 웨이터 하던 한 남학생 눈에 띄어 알려졌는데, 총학생회장이 제 친구의 남자 친구였거든요. 그 사실이 소문이 나서 알게 됐지요. 왜 갔냐 했더니, 등록금 투쟁 기간에 인상률 조정을 위한 회의를 하고 뒤풀이를 간 거래요. 충격을 받았죠.

'총학생회장이 그런 곳에 갔다니 문제가 있다, 학생들한테 사과하고 사퇴를 하라.' 이렇게 저희 동아리 차원에서 요구를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이 일로 대자보를 붙이는데, 지나가던 남학생들이 욕하면서 찢어요. '○○년들아!' 이러면서. 또 제 눈앞에서 '대한민국에 안 가는 남자가 어디 있어! 남자라면 당연한 거지.' 이러면서 대자보를 찢는 거예요."


이때가 2004년쯤이다. 얘기를 듣는 순간, 지난 2000년 광주 5.18 추모제 때 민주당 386초·재선 의원들이 룸살롱에서 여종업원을 불러 술판을 벌인 사건이 떠올랐다. 그 시기에 이유진씨는 남학생들이 방석집(성매매 업소)에 가기 위해 계를 붓기도 하고, 입대를 앞둔 남자 후배에게 선배들이 총각 딱지 떼라고 성매매 업소에 보내 준다는 이야기도 들으며 성매매(성구매가 맞는지도 모르겠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히 밀착되어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여성주의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이유진씨는 이때 성매매에 대해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침 2004년 '성매매 방지법'이 제정되어, 정부에서 성매매 방지 상담원을 양성하던 때였다. 성매매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상담소와 쉼터에서 일할 상담원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졸업하고 그쪽으로 갔다고 한다. 그 일을 4년을 했다.

4년 동안의 성매매 피해자들 상담 활동이 이유진씨에게도 트라우마가 되었다. 상담 내용이 대부분 극단적인 폭력 피해였다. 성폭력은 빠지지 않고, 쉼터에서 일할 때는 자해나 자살을 목격하기도 했다. 방문 상담을 갈 때 혼자 죽어 있는 피해자 언니를 비롯해 가해자를 찾을 수 없는 죽음, 업소에서 손님에게 당하는 죽음… 이런 일을 일상에서 본다는 게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돌이켜보니 당시에 악몽을 많이 꾸었다고 한다. 결국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우울증을 앓았다. 자살 충동도 심해져, 상담을 통해 마음을 돌보고자 단체 일도 그만두었다. 부모님마저 헤어져 가족이 해체되면서 진짜 회복이 필요해졌다. 몇 달 오대산 월정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도망치듯 간 시골살이

회복을 위해 간 절에서 남편을 만났다. 종무원으로 일하던 남편은 대학 때 공부만 하던 모범생이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불교에 관한 책을 읽고 관심이 생겨 단기 출가학교에 들어갔다. 스님이 될까 하다 포기하고 종무원으로 남아 이유진씨를 만나게 되었다. 절에서 둘은 서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나 보다. 아니면 서로 호감이 있어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겠다 싶기도 하다.

"절에서 같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얘기를 하는데, 둘 다 도시에서 살고 싶지 않고 약간 자급자족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었어요. 마침 친구들이 귀농 공동체를 한다고 하니까 가 보자 그래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쉽게 갔죠. 생태주의나 농사에 대해서 진짜 1도 모르고. 약간 도망치는 심정으로 간 것 같아요."

몇 달 귀농 공동체 생활을 하다 친구들은 나중에 흩어졌다. 결국 둘만 결혼해서 남게 됐다고 한다. 어떻게 결혼할 생각을 했을까?

"그냥 연애 1년 하고. 저는 결혼 생각은 별로 없었고 그냥 같이 있고 싶은데, 남편은 곧 죽어도 결혼을 해야겠대요. 그래? 그럼 해 보지 뭐 이렇게 했죠. 저는 결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이런 마음이었죠."

농사는 영 아니었나 보다. 로망은 있었지만 적응하느라 애쓰기도 했단다. 농사로 한 달에 50만 원도 못 벌었는데, 둘이 겨울에 마트 계산원과 가스 배달을 하며 300만 원씩 벌어 모았다. 모은 돈으로 비닐하우스를 크게 했는데, 어느 날 큰바람에 대가 뽑히고 비닐이 찢어지면서 다 접고 말았다.

농사를 접고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를 비롯해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다. 이러려고 시골 온 게 아닌데 하며 회의감에 빠졌다. 그때 남원 산내에 가 있던 동료가 놀러 오라 해서 갔다가 동네에 반해 빈집 구해 바로 이사 왔다고 한다.

재미없으면 그만둬야지

이유진씨는 산내로 이사 와서 10달 정도 '한생명'이라는 단체에서 일하다 이듬해에 '문화기획달'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고, 계간지 <지글스>를 창간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글스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는 작가가 꿈이었고, 대학 때는 잡지사에 들어가고 싶어 하기도 했다. 물론 생계를 위해 방과후교사 등 여러 일을 하면서.
 
계간지 <지글스> 표지. 지리산에서 글쓰는 여자들의 다양한 삶이 고스란이 녹아 있는 잡지였다.
 계간지 <지글스> 표지. 지리산에서 글쓰는 여자들의 다양한 삶이 고스란이 녹아 있는 잡지였다.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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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교사들, 폭언과 신체적 폭력을 일상으로 하는 교사들이 많았어요. 3학년 때 친구들과 학교장에게 정식으로 문제제기 하기로 하고, 탄원서를 작성한 다음 몰래 서명운동을 벌였어요. 그런데 수업 시간에 서명지를 돌리다 걸렸고, 저는 당연히 처벌받겠지 했죠.

근데 담임선생님이 제게 '이렇게 힘들었으면 먼저 이야길 하지 그랬냐'고 안타까워하면서, '탄원서 보고 글을 너무 잘 써서 놀랐다. 유진이는 커서 기자나 소설가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교사 대책 회의를 통해 개선하기로 약속했고, 저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죠.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거나 되고 싶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그때 칭찬을 듣고 처음으로 작가의 꿈을 꾸게 되었어요."


하지만 혼자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같이 쓸 사람을 모았다. 책으로 나올 수 있을까 확신은 없었지만, '안 되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동네 언니들과 이웃 여성들한테 자기 이야기를 쓰고 그리자고 했다. 뜻밖에 거절하는 경우가 거의 없이 다들 하겠다고 나섰다.

"신기한 게, 그림을 잘 그릴 듯한 분한테 그림을 내보지 않겠냐 했더니 실은 내가 시를 쓴다 그래요. 그럼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자 해서 4년 동안 하신 분들이 있었고, 한 동료는 취미로 사진을 찍었는데 표지 촬영을 꾸준히 했죠. 저는 주로 인터뷰 담당이고 연극하는 언니는 희곡과 관련된 글을 썼어요. 이렇게 뭔가 평소에 자기가 했던 내용을 그냥 모아 놓기만 했는데도 한 권이 이렇게 딱 되는 거예요."
 
지글스 낭독회. 지글스에 실린 글을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누고 유대를 깊게 해갔다.
 지글스 낭독회. 지글스에 실린 글을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누고 유대를 깊게 해갔다.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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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지글스> 잡지가 나오면서 반응은 참 좋았다. 다른 지역에서 정기 구독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지글스 멤버들은 기쁠 수밖에. 결과물이나 독자들 반응뿐만 아니라 자기 글과 작품이 책으로 나온 경험은 큰 힘이 되었을 듯하다.

"사실 저희는 저희끼리 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되게 좋았어요. 서로 글이나 작품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거에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받았고 영향도 많이 받았죠. 매일 보는 사이지만 글을 보면 참 다르게 느껴지고.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 하는 새로운 면을 알게 되고. 또 여성들끼리 하니까 뭔가 좀 유대가 훨씬 깊어지는 느낌이 있어요."

결국 자기를 솔직히 드러내 보이는 자세가 중요하지 싶다. 그럴싸한 모습만 보여 주고 나머지는 감추게 되면 온전한 교감을 나누고 유대를 깊게 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또 내가, 우리가 즐겁고 신나야 그 기운이 흘러넘쳐 밖으로 퍼지지 않을까 싶다. 저마다의 삶이 인정받고 지지받는 경험은 더 놀라운 창조성과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가 보다.

어쩌면 <지글스>라는 잡지가 나오는 과정은 곧 이들의 글쓰기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지지하는 과정이랄까. 경쟁과 비교, 외모 중심의 시스템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방향으로만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자기를 긍정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지글스 멤버들이 있어서 문화기획달이 훨씬 확장됐고, 페미니즘 활동도 지글스 멤버들 때문에 시작하게 됐어요. 책 내고 글 쓰고 땡! 이게 아니라, 같이 해 보니까 재밌어서 이거 해 보자 저거 해 보자 했을 때 참여를 많이 했어요. 살롱드마고 공간 낼 때도 집에서 안 쓰는 물건들 다 가져와서 채워줬죠. 살림살이 하나하나를 자기 일처럼 생각한 것 같아요."
 
타로 교육. 타로는 닫힌 마음을 열고, 나의 무의식과 만날 수 있는 좋은 통로이기도 하다.
 타로 교육. 타로는 닫힌 마음을 열고, 나의 무의식과 만날 수 있는 좋은 통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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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경험이 다른 일을 벌일 수 있는 동력이 된 셈이다. 이후 문화기획달은 다양한 일을 했다. 자기 삶이나 경험을 글로 담아내고 나누면서 마을에서 겪은 성차별·성폭력을 공유하며 캠페인 등 농촌 페미니즘 활동을 본격 시작했다.

여기에 단행본 출판, 여러 문화예술 프로그램, 교육 활동, 워크숍, 산내 바깥 활동 등을 하였으며 '양성평등문화상'을 비롯한 여러 수상 경력도 쌓았다. 글을 쓰고 작품을 실은 멤버들 가운데는 작가로서 예술가로서 입지를 탄탄히 하게 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함께한 구성원들이 변화를 실감하고 삶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아닐까.

<지글스>는 창간 4년 만인 2017년에 폐간이 아닌 완간을 했다. 반응도 좋았는데 4년 만에 달랑 16번 내고 완간을 선언하다니! 너무 쿨한 거 아닌가?

"재미없으면 그만둬야지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죠. 시간이 갈수록 동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저는 들었어요. 저도 그렇고 참여하는 분들도 그렇고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시작할 때랑 몇 년 할 때의 애정이나 집중도는 변할 수밖에 없잖아요. 무엇보다 사람의 욕구가 자꾸 바뀌니까요. 다들 아쉬워하면서도 편집장을 맡겠다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웃음)"

국영수 과목 다루듯 다뤘다면

이유진씨는 젠더 교육(성교육) 강사이기도 하다. 청소년을 비롯해 교사 양육자들, 공공기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해 왔는데, 청소년들에게 가장 관심이 가고 교육도 그동안 많이 했다고 한다.

성·젠더 교육 강사가 된 계기가 있었다. 20대부터 배운 타로를 이용해 방과후교사로 중고등학교에 '타로 집단상담'을 다녔다. 이때 성폭력 피해 상담을 듣게 되어 피해자를 돕고 싶었는데, 보호자들이 정식 절차를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사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고 강의 시연을 할 때 자신의 몸을 수업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실험이자 도전이기도 했다.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129쪽에서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129쪽에서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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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 젠더·성 교육을 듣는 이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성인이나 청소년이나 젠더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나 배워야지 하는 의지가 없는 듯하다고 한다. 학생들은 문제집을 들고 와 푸는 경우가 많고, 교사나 공무원들은 강사료는 다 줄 테니 일찍 끝내 달라고도 했다.

심지어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씨 성폭력 사건 이후 충남도청에 성인지 교육을 갔는데 담당자가 '남자 직원들 기분 나쁘지 않게 수업을 해 달라' 요청을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거꾸로 가는 듯했다. 전국 100여 개 학교에서 '스쿨미투'가 터져나온 뒤, 남자 교사들이 젠더 교육을 듣는 태도나 반응이 더 안 좋아졌다고도 한다. 드러내 놓고 휴대전화만 본다거나 수업 내용마다 딴지를 걸며 방해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만약 이 수업이 중요하고 열심히 들어야 돼 하고 메시지를 줬다면, 학생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국영수 과목 다루듯이 이 수업을 다뤘다면 학생들이 무성의하게 듣지 않을 거예요. 성적이 더 중요하다고 어른들이 가르치니까 그렇게 듣는 거죠."
 
젠더 교육 중인 이유진 씨. 여러 지역에서 교육을 한다. 그만큼 그의 교육이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젠더 교육 중인 이유진 씨. 여러 지역에서 교육을 한다. 그만큼 그의 교육이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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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 이유진씨는 '성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기', '나와 다른 존재를 비정상이라고 낙인찍지 않는 태도 키우기', '폭력을 허용하는 것들에 경계심 가지기'를 강조했다. 이 세 가지는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만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일상에서도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이유진씨는 이중에서 특히 '폭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요즘에는 '젠더 문제도 그렇지만 폭력 자체에 대해서 사람들이 갈수록 무뎌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나 자신을 비롯해 사회의 변화를 고민하는 이들은 더욱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이슈가 아닐까.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프롤로그에서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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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얘기를 들어 보자. 어쩌면 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이유진씨는 지금껏 아토피를 앓아 왔다. 아픈 몸은 고쳐져야 하거나 정상에서 탈락한 대상으로 또는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무언가로 여겨져 왔다. 이런 인식은 약자나 소수자, 나(우리)와 '다른' 존재에게로 확장되어 우리 일상을 지배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계기로 자기 몸(아토피)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을까?

"조한진희씨가 쓴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읽었어요. '아, 아픈 몸을 껴안고 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처음 한 것 같아요. 언니(조한진희씨는 이유진씨의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와 관계를 맺으면서 몸에 대해서 전환된 시각을 가질 수 있었고, 페미니즘 활동이나 젠더 교육, 글쓰기 활동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힘이 자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상담도 마찬가지고."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다른길) 이 책은 인터넷서점에서는 구입할 수 없다. 몇몇 지역 서점과 출판사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사려면 메일(jayams@naver.com)이나 큐알(QR)코드를 이용하면 된다. 많이들 사서 읽으면 좋겠다.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다른길) 이 책은 인터넷서점에서는 구입할 수 없다. 몇몇 지역 서점과 출판사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사려면 메일(jayams@naver.com)이나 큐알(QR)코드를 이용하면 된다. 많이들 사서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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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말난씀>(<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를 줄여 부르는 말) 책을 거의 단숨에 읽었다. 아토피만을 얘기하지 않는 글이었다. 우리는 대개 내면이든 몸이든 아픔이 있는데, 이유진씨는 자신을 부정하거나 감추지 않고 받아들이며 감싸 주고, '지금 네 모습 괜찮아!' 하며 글로 손을 내밀어 주는 듯하다. 사촌 오빠가 그에게 했다던 '너에겐 숨길 수 없는 빛이 있다'는 말을 이유진씨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 책이 널리 읽히면 좋겠다. 또 많은 이들이 자기를 드러내는 글쓰기를 시작했으면 한다. 협동조합마고 구성원 셋이 공동 운영하는 공간, 살롱드마고가 남원의 명물이자 많은 이들에게 아지트가 되고 즐거운 작당소가 되길 빌며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작은책에도 실립니다.


태그:#살롱드마고, #아토피, #귀농귀촌, #젠더, #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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