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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뒤엉켜 매듭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펼쳐들곤 한다.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술주정뱅이 이야기, 너무 슬퍼 의자를 뒤로 한발짝 물려가며 해지는 광경을 마흔네 번이나 봤던 날, 여우와 '길들인 것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대화하는 부분을 읽으면 소용돌이 치던 감정이 잦아들고 다시 살아낼 힘과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에 사는,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위로가 필요했던 어른'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어린 왕자>를 헌정했다. 지구별에 사는 영혼이 허기진 수많은 어른들에겐 진정한 위로와 눈물과 사랑 가득한 동화가 필요하다.

생텍쥐페리처럼 사랑의 마법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어른이 읽는 동화'를 쓴 이가 있다.
 
이수경 작가가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사랑 이야기
▲ 어른이 읽는 동화 이수경 작가가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사랑 이야기
ⓒ 학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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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읽는 동화>를 펴낸 이수경 작가다. 책에는 예순 여덟 편의 글이 담겨있다. 이웃으로 가족으로, 친구로 만난 이들과 맺은 관계를 인연, 이웃, 인생 편으로 나눠 엮었다

그이가 꿈꾸는 마법 세상은 호박이 황금 마차로 변하거나 멋진 왕자가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깨우는 세상이 아니다.

척박한 도시의 시멘트 갈라진 틈새에서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가난한 삶 속에서 햇살처럼 밝은 미소가 피어나는 진짜 마법이 펼쳐지는 세상이다. 그이는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울음을 웃음으로 바꿔내는 마법을 일상 속에서 실제로 펼친다.

유년의 기억, 놀이터서 만난 쪼그리고 울던 아이, 전단지를 돌리는 여학생, 경비원, 음식점서 만난 알바 학생 등 그이가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사랑과 관심 이해와 나눔을 재료로 위로, 희망, 사랑, 신뢰라는 놀랍고 아름다운 마법을 만들어 낸다.

그이가 서문에서 '위로를 나누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한 것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이유다.
 
이 책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읽으면서 눈물이 고이고, 콧물을 훌쩍이게 되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만하면 괜찮다고, 괜찮았다고 위로를 나누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가슴 속에 살고 있는 어린 '나'에게도 등불을 켜주는 이야기, 어른이 읽는 동화입니다. - 7쪽
 
작가는 소소한 인연이나 일상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집 앞 길에서 양복을 입은 채 교통지킴이를 하던 사람에게 빗방울 떨어지자 자기 우산을 건네고, 급하게 달려가던 여학생이 실내화 한짝을 떨어트리자 학교까지 달려가 실내화를 돌려준다. 음식점서 만난 알바 학생에게 뜻을 같이하는 교수님과 익명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연우요, 저희도 얼마나 아끼는 친구인지 몰라요. 저렇게 열심히 사는 아이도 없을 거예요. 농막 화재로 부모님을 읽고, 누나랑 남동생, 연우 이렇게 셋이 사는데 학교에서도 우등생이랍니다. 누나랑 연우랑 벌어서 먹고사는데 비뚤어진 데 하나 없는 아이입니다." 

 후원 후 6개월쯤 지났을 때 내 휴대전화로 '고맙습니다. 세상에 진찌 이런 분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온 것이다. 결핌은 고마워할 것이 많아지게 한다. 나 역시 결핌 속에서 자랐기에 나는 오히려 연우에게 고마웠다. - 213쪽
 
텃밭 옆에서 요양원에 간 할머니를 위해 쑥을 뜯는 할아버지 곁에 앉아 쑥을 뜯어주고 환한 웃음을 덤으로 얹어주는 작가는 행복한 마법을 펼쳐내는 마법사이자 따뜻한 이웃이다.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신 지 한 달이 되었다고 했다. 어제 갔더니 쑥국이 먹고 싶다고 해서 마트에서 살까 하다가 직접 뜯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런 거밖에 더 있겠어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조용조용 말씀하시는 목소리에 가슴이 아렸다. 나는 집으로 가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말없이 함께 쑥을 뜯었다.

한참을 뜯은 뒤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쑥 봉지에 뜯은 쑥을 넣으니 묵직해졌다. 환하게 놀라던 할아버지 얼굴을 처음 마주하며 나도 활짝 웃렀다. 슬픔을 치료하는 가장 큰 약은 웃음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말없이 자꾸 웃었다. - 55쪽

각박한 현대인이 잃어버린 함께 사는 마음을 회복하고 위로와 사랑을 나누는 작가는 행복 바이러스 전파자이자 착한 마법사다. 아마도 그이의 선한 성품과 눈길과 사랑은 어릴 때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지지와 신뢰가 바탕이 됐을 것이다. 영원한 내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불의에 맞설 용기가 생길테니까.
 
"쪼매난 기 동상들 챙기고, 장사 나가는 저거 엄마 힘들다꼬 집안일 다 하는 게 기특해서 니 편들어 줬다. 아이가."

두꺼비 아줌마는 그렇게 내 맘속에 영원한 내 편으로 남았다. - 32쪽
 
코로나 팬데믹으로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비대면 일상은 힘든 삶에 외로움의 골을 더 깊게 만든다.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춤고 배고프고 영혼이 허기져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하다. 

'어른이 읽는 동화'에는 지치고 힘든 어른들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샘이 곳곳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마음이 이끄는대로 아무데나 펼쳐 잃어버린 유년의 추억과, 팍팍한 세상을 살아갈 새로운 힘을 얻을 자양분을 한껏 길어 올려 새 힘을 얻길.

어른이 읽는 동화

이수경 (지은이), 학이사(이상사)(2021)


태그:#어른이 읽는 동화, #사랑과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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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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