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8번째를 맞은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일상의 특별함을 담다”라는 주제로 전 세계 29개국의 64편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했습니다.[편집자말]
다큐멘터리 <종의 보존 대 인류생존>은 2020년 작품으로 상영시간은 75분이며, '2021 EBS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상영작 중 한 편이었다. 영화제는 끝났지만, EBS D-Box 구독권이 있는 분이면, 얼마든지 반복감상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최근 이삼십여 년간 65% 이상의 북대서양참고래들이 어업장비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민들의 어업장비에 참고래가 얽혀들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고는 사실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바닷물이 너무 뜨거워져서 동물성플랑크톤이 급감하자 참고래들은 먹이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 이동경로에 대대적으로 설치돼있던 어업장비들에 얽혀들어 사망하는 사례가 급증하게 되었다. 
 
스크린샷: 어업장비(수직밧줄)에 걸려든 참고래의 모습.

▲ 스크린샷: 어업장비(수직밧줄)에 걸려든 참고래의 모습. ⓒ EIDF

 
삼사십여 년 전엔 어업장비를 뒤집어쓰고 바다를 고통스럽게 헤엄치는 참고래들을 발견하면 따라다니면서 풀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바닷물 속 어업장비들은 너무 많고, 그것에 얽혀드는 참고래 숫자도 너무 많아, 일일이 풀어주러 다닐 수가 없다. 과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어업장비 자체를 지나치게 많이 바닷물 속에 드리우지 않도록 엄격히 규제하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됐다. 
 
그런데, 정부가 어업장비 감축을 엄격히 명령하니 그 장비를 사용해 거둬들이는 수산업 (특히 바닷가재) 수확량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게 되었다. 어민들의 개인파산은 물론, 관련산업(수산물 유통산업, 해산물 레스토랑 등)의 피해도 줄줄이 나타났다. 하여, 지난 몇 년간 어업장비 규제정책을 강력히 폈던 미국과 캐나다 정부는 규제정책이 가혹하다는 어민들의 거센 항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규제정책을 조금 완화했다. 그랬더니 참고래들이 또 죽어나갔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에서 제작된 것이라 미국의 사례에 집중하는데, 트럼프 정부가 어민들과 수산업의 손실을 줄여주는 규제완화를 실시했던 탓에 참고래들의 상황이 급격히 더 악화되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참고래를 살리고자 규제를 강화하면 어민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친다. 반대로 정부가 어민들을 살리자고 규제를 완화하면 참고래들이 소리없이 죽어나간다. 머리쪽 각질이 인간의 지문처럼 개체마다 고유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반가운 마음에 하나하나 이름도 지어주곤 했는데, 지금 그 한 마리 한 마리 고유한 개성을 지닌 참고래들 중 고작 300마리만이 살아남았다.  
 
스크린샷:  각종 어업장비들이 바닷물 속에서 어지럽게 헝클어져있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림.

▲ 스크린샷: 각종 어업장비들이 바닷물 속에서 어지럽게 헝클어져있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림. ⓒ EIDF

 
남은 300마리도 그리 건강한 상태라고 말할 수 없다. 선박들의 소음 때문에 자기들끼리 소통하지 못해 스트레스 지수가 몹시 높아져 상처, 질병에 취약한 채로 위험한 바닷물 속을 떠돌아다니며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어떤 녀석들은 어업장비들이 살과 뼈를 파고드는데도 어찌할 줄 몰라, 그것들을 칭칭 감은 채로 망망대해를 무작정 헤엄치는 중이다. 그러다 어느 날 숨을 거두게 되면 바닷물 속에서 부패되거나, 어느 낯선 바닷가로 떠밀려 올라온다. 과학자들은 참고래 완전멸종까지 대략 20년 정도가 남아있다고 추산한다. 
 
다큐멘터리 <종의 보존 대 인류생존>은 참고래를 주제로 하는 토론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어떤 어민은 고백한다. "앞으로는 (제가) 가족들을 부양하지 못한다고 말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 생각만 하면 정말이지 가슴이 미어져요. 하지만 제 배에서는 수직밧줄을 17킬로미터 줄이겠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어민들은 묻고 또 묻는다. "우리 어민들은 참고래가 다치는 걸 바란 적 없습니다. 우리더러 어업장비를 줄이라고만 하면 우린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지구 문제의 후유증을 왜 우리만 견뎌야 합니까?"
     
스크린샷: 바닷가재잡이 어민들 중 한 사람.

▲ 스크린샷: 바닷가재잡이 어민들 중 한 사람. ⓒ EIDF

     
<종의 보존 대 인류생존>은 참고래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음성을 들려주고, 할아버지-아버지가 대대로 꾸려온 가업을 이어 바닷가재잡이 어민이 되고 싶다는 어린이의 순박한 눈망울도 보여준다. 어민들은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한맺힌 집회를 열고, 환경운동가들은 참고래 종족보존을 위한 눈물겨운 집회를 연다. 양측의 팽팽한 의견과 주장들 사이에서 정부측 관료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난처해하는 장면도 보여준다. 
 
스크린샷:  국립해양대기청 연구팀장의 의견.

▲ 스크린샷: 국립해양대기청 연구팀장의 의견. ⓒ EIDF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자발적으로 바닷가재 어업장비를 줄이겠다고 말하는 한 어민의 옆얼굴이 내 눈앞에 계속 어른거렸다. 어업장비를 줄였을 때 발생하게 될 손실, 그로 인한 고통을 오롯이 감당하겠다고 결정한 그 어민을 유심히 지켜보며 나는 생각했다. 참고래의 고통이 어떤 어민의 고통으로, 단순히 옆으로 옮겨가서는 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참고래의 멸종위기 앞에서는 고통의 평행 이관이 아니라 고통의 적극적 분담이 필요하다. '그건 그 사람 사정이고'라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즉 바닷가재를 먹는 원근각처의 고객들, 바닷가재를 사고파는 유통상인들, 그리고 정부까지 같이 나서서 참고래가 겪는 고통을 적합하게 공유하고, 참고래 종족보존 정책 추진 시 파생되는 불이익을 분담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참고래의 이동을 부추긴 전지구적 기후위기(바닷물 온도상승)도 다함께 해결해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 하나만일지라도 앞으로 평생토록 바닷가재를 먹지도 구매하지도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이 같은 나의 작은 다짐, 작은 움직임이 조촐하게 '나비효과'라도 일으키기를 기도한다. 비록 다른 어민들은 그리 안 할지라도 자기 하나만이라도 참고래의 목숨을 위협하는 어업장비를 17킬로미터 줄이겠다고,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내하겠다고 발표하는 한 어민의 슬프도록 다부진 표정을 떠올리며…
 
스크린샷:  자발적으로 어업장비를 줄이겠다고 발표하는 한 어민.

▲ 스크린샷: 자발적으로 어업장비를 줄이겠다고 발표하는 한 어민. ⓒ EIDF

덧붙이는 글 추후 기자의 저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종의 보존 대 인류생존 EDIF ENTANG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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