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넷플릭스 드라마 <D.P.>(<디피>)가 공개된 직후인 지난달 31일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향후 군내 성범죄와 사망 사건을 군대 밖 수사기관이 수사하고 기소한 이후 일반 법정이 재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법안 통과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휘관이 수사, 기소, 재판까지 좌지우지하니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잘만 덮으면 됐던 겁니다. 회유하고, 수사를 막고, 안 되면 불기소를 하고, 그것도 안 되면 재판에서 솜방망이 판결을 하면 되니까, 그랬던 겁니다.

하지만, 반쪽짜리 법안이란 비판이 나온다. '평시 군사법원 폐지 및 비군사 범죄를 민간으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진보정당 및 군 관련 시민단체들은 금번 군사법원법 개정안에 반대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금번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사망 사건을 제외한 갖가지 군 내 사건사고는 여전히 군내 기득권 세력이 좌지우지할 여지를 남겨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디피>에도 이와 관련해 정곡을 찌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탈영했다 군무 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 D.P.)에 잡혀 온 한 사병은 이제 '다 잘 될 거라'는 어머니의 위로에 정색하며 이렇게 한탄한다.
 
엄마 바보야? 우리나라 그런 나라 아니야. 나 방독면 씌운 애들 전출 간데. 다른 부대로 간다고. 걔네가 전과자 되고 뭐 영창에 가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데로 간다고.

이 사병은 가해자들이 방독면을 씌운 얼굴에 물을 붓는 등 가혹한 괴롭힘에 시달리다 탈영을 선택해야 했다. 황당한 듯 쳐다보는 어머니에게 "수사관들이 면밀히 조사 중입니다"라는 군무 이탈 담당관 박범구(김성균). 그런 그를 향해 어머니는 이렇게 절규한다. 현실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디피>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이 절규에 담긴 것이다.
 
아저씨 높은 사람이죠? 얘 말이 진짜예요? 그럼 재판을 안 열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나라를 지키라고 보낸 군대에서 애를 때리고 괴롭혀서, 그래서 탈영을 했던 건데, 어떻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나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나요?", 어머니의 절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 넷플릭스

 
세상 모든 군필자 및 예비역들에게 방관자로서의 위치를 자각시키는 동시에 일부 시청자들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 중인 <디피>. 부대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탈영한 사병들을 잡아들이는 헌병 내 형사 혹은 수사관 '군무 이탈 체포조'를 소재로 한 이 드라마가 현실을 환기시키는 것은 군대 내 괴롭힘과 폭력을 브라운관 속에 가시화해서만은 아니다.

드라마 속 영문도 모른 채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사병들과 누구는 생활에, 누구는 신념에 찌든 채 사병들을 길들이는 간부들은 모두 의식했든 아니든 방관자로서 '아버지의 법'을 사수해 나가는 중이다.

그 법을 전통적인 남성중심적 사회적 관습과 규범이라 부르든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와 독재정권이 고착화시킨 군사문화로 칭하든 크게 관계 없겠다. 그 체계에 반기를 드는 순간 도태되거나 관심사병과 같은 부적응자 혹은 문제적 인간으로 찍힐 뿐이다. 탈영병들이 바로 그런 탈주자들이다.

영화 <차이나타운>, <뺑반> 등을 연출했던 한준희 감독과 < D.P 개의날 >의 원작자이자 각본으로 참여한 김보통 작가는 이러한 군대 내 체계와 작동방식, 그리고 그 근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를 극적으로 영민하게 잘 활용한다. 탈영병들을 비단 낙오자만으로 그리지 않는 것이 단적인 예다.

심지어 부제가 '방관자'인 6화를 속 탈영병이 체포조 한호열(구교환) 상병과의 대치 속에 꺼내드는 수통 일화는 딱 그렇다. 총을 든 채 극단으로 치닫는 탈영병에게 한호열은 "우리가 군대를 바꾸면 되지"라고 호소하고 이에 탈영병은 부대 내 수통 이야기를 잠시 들려준다.
 
"거기 (수통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1954. 6·25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이 핵심 대사 하나로 <디피>는 군대 내 폭력 구조란 바뀌지 않는 근원이 분단 체제라는 한국 사회의 한계에서 비롯됐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 70년 분단 체제 안에서 군사정권이 한국사회를 지배한 것은 또 얼마인가.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이란 냉소에 공감했다는 감상평이 줄을 잇는 것은 군대 경험 유무를 떠나 국민들 스스로 내재화된 체념, 즉 군대는 바뀌지도, 바뀔 리도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멈춰 섰다면 그저 비관적 전망을 장르적으로 풀어낸 범작에 머물렀을 터. <디피>는 후반부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우리 모두 방관자'라는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을 기어이 마주하게 만든다.

이등병 안준호(정해인) 자체가 그런 존재다. 한참 고참들한테 시달리며 부대 내 시간 자체가 고통인 이등병 시기부터 탈영병 잡는 디피로 차출, 부대 담장 밖 세상을 떠도는 안준호는 태생이 관찰자이자 방관자로 길러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부단히 챙겨준 바로 위 기수 고참 석봉이 병장에게 맞고 있을 때, 발끈하던 안준호가 한호열의 등장과 만류에 이내 수긍하고 곤란한 순간을 면피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없이 문제적이다. 현실에선 잠시 잠깐의 달콤한 도주지만 그 자체로 군대 내 폭력적 체계에 순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디피>는 바로 그 장면을 놓치지 않는다. 맞다. 군대 내 사병들의 시간은 평등하다. 수십 년 전 36개월이 됐든, 육군의 경우 점점 줄어 현재 18개월이 됐든 사병들은 제대만 하면 그 폭력적 체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디피>가 안준호에게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비의 존재를 부여한 것은 그래서 상징적일 수밖에 없다.

"군대가 바뀔 것 같냐"란 냉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 넷플릭스

 
안준호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맞는 어머니를 방관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안준호는 입대 후에도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의 환영을 보고, 수북이 편지를 보내며 관계 개선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그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어머니를 되도록 멀리한다.

디피로 생활하며 어머니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안준호에게 그러한 능동성과 치유를 가져다 준 것은 군대라는 '아버지의 법'이다. 그 법 체계는 군대 안팎을 지배한다. 그게 한국사회의 법이다. 아버지에게 도망치니 더 큰 구조와 체계가 안준호를 짓누르는 식이다. 안심하고 방심하는 순간 체제 순응자가 되어버리는 형국이랄까.

6화에서 그러한 주제 의식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부대 내 탈영 사건에 경찰이라는 이름의 국가가 수사에 나선다. 급기야 '특임대' 동료들이 탈영병을 잡기 위해 총을 들고 출동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테러 운운하는 '꼴통' 같은 부대장의 명령만으로 이 모든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될 수 있었을까.

1화부터 6화까지 잘 짜인 구조와 현실적인 캐릭터, '수사 버디'물이란 장르적 외피를 능수능란하게 버무린 <디피>는 그러한 구조의 작동 방식이 오래전부터 안착돼 있었다는 사실을 역동적으로, 또 애처롭게 강변한다.

안준호를 비롯한 방관자들 모두 "우리가 바꾸면 되지"란 단순하지만 놓고 싶지 않은 전망과 "군대가 바뀔 것 같느냐"는 뼛속 깊이 박힌 냉소 속에서 쳇바퀴처럼 돌고 돌며 군대라는 체계를 지탱시켜 나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란 탈영병의 물음은 그래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다소 튀는 '쿠키'를 논외로 치더라도, 안준호의 뒷모습을 비추는 <디피>의 마지막 장면이 씁쓸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들. 앞서 언급한 어머니의 절규처럼 <디피> 속 유의미한 질문들은 대부분 여성들로부터 나온다. 끝내 안타까운 선택을 한 탈영병의 누나가 안준호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동생이)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데… 왜 보고만 있었어요?"라고 묻는 에필로그 속 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장치는 이중의 알리바이이기도 한데, 군대라는 체계를 진짜 바꿀 수 있는 시선은 군대 밖 타자로부터 시작된다는 진리가 하나요, 또 하나는 <디피> 전체를 끌어가는 남성적 시선으로부터의 면죄부를 부여하고자 하는 기능적 장치 말이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자>나 연상호 감독의 중편 애니메이션 <창> 이후 군대 내 폭력을 다룬 문제적 작품이 미국 넷플릭스의 자본으로부터 제작됐다는 점 또한 같은 맥락에서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결국 <디피>와 같은 군 문제를 다룬 작품의 자본도, 작품 내 타자적 시선 역시도 내부자들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직접적인 동시에 우회적인 반증이 아닐까. 여당인 민주당이 반쪽짜리 군사법원법을 통과시킨 것도 어쩌면 엇비슷한 현실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디피>가 명시한 시간적 배경은 불과 7년 전 윤 일병 사건과 임 병장 사건이 발생했던 2014년이다.
디피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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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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