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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카불공항 테러 관련 대국민 연설을 중계하는 CNN 방송 갈무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카불공항 테러 관련 대국민 연설을 중계하는 CNN 방송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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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뉴스는 미군의 아프간 철수에 대한 기사들로 매일 업데이트 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미국 정부가 아프간 군대 건설에 지원해준 막대한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군대는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해보고, 이주 전 탈레반에게 카불 진입을 허용했다. 비교적 평화롭게 카불 입성에 성공한 탈레반은 미군이 아프간에서 한시바삐 철수하길 원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프간을 떠나는 데에 적극 협조하고 있으나, 자국민의 이탈은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하고 있다.

탈레반의 카불 입성 직후 CNN 보도에 따르면, 시내 상점들은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등 대체적으로 평상시와 같은 모습을 보였던 반면, 카불 공항은 미군이 완전 철수한 후 탈레반 정권이 세워지기 전 고향을 떠나려는 아프간인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당시 인터뷰를 했던 한 아프간 남성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36시간 이상 대기 중이라고 했다.  

며칠 후 카불 시내에서 총기가 발사돼 아프간인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발표됐지만, 아프간의 혼란은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될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려는 자국민들이 카불 공항으로 모이면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 현지 시간으로 8월 26일 카불 공항 인근에서 아이시스(ISIS)-K의 자살 폭탄테러로 인해 미군 13명과 아프간인 70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건마저 발생해 카불 공항을 통한 아프간 탈출이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 국무부는 아프간에 남아있는 미국인들(8월 29일 기준 약 500명)에게 카불공항 근처에도 가지 말고, 인근 제3국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간 항공사와 제휴하여 아프가니스탄 주변국에 여객기를 보내서 자국민을 미국으로 데려오겠다는 계획을 이미 발표했었다.

아프간 철수가 베트남 철수와 오버랩되는 점

탈레반 군대가 카불을 접수한 후, 아프간 정부에게 제공되었던 미국의 살상무기와 헬리콥터 등이 탈레반으로 넘어갔다. 이들은 미국이 제공한 무기로 무장하고 헬리콥터에 올라 찍은 사진을 소셜 미디어나 뉴스를 통해 배포하고 있다. 
 
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미 공군 C-17 수송기가 활주로를 주행할 때 함께 달려가고 있다.
 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미 공군 C-17 수송기가 활주로를 주행할 때 함께 달려가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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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미지를 보는 미국인의 심정은 착잡할 수 밖에 없다. 국민 세금으로 우방에게 원조해 주었던 무기가 결국 미군을 대적하기 위해 쓰일 수 있는 적군의 손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자국민으로 인해 혼란한 카불 공항과 그 인근에서 발생했던 살상테러 현장을 뉴스를 통해 지켜보며 베트남 철수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1955년에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사이공이 베트콩에 함락되면서 종결되었다. 미국은 1973년 파리조약에 서명함으로써 베트남에서 미군 철수를 약속했고, 1975년 4월 30일 마지막 헬리콥터가 사이공 주재 미국 대사관 옥상에서 이륙함으로써 철수가 완료되었다. 미국정부는 마지막 24시간 동안 100대의 헬기를 동원해 7000명 가까운 민간인(미국인)을 대피시켰다고 한다. 

당시 자료 화면을 보면 마지막 헬기가 떠나는 순간까지 베트남 사람들이 끊임없이 미 대사관으로 모여드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마치 현재 카불 공항이 아프간을 떠나려는 사람으로 혼란스러운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게다가 미군이 전쟁기간 동안 베트남에게 원조해 주었던 무기는 베트콩이 정권이 잡은 후, 그들의 소유가 된 점 역시 현 시점 아프간과 유사하다. 

아프가니스탄과 베트남 전쟁 모두 20년 장기간 동안 진행되었고, 미국 정부는 막대한 돈을 들여 무기를 원조해 주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군수 및 관련 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되었고, 전쟁으로 큰 돈을 벌었다. 다른 글에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배후엔 베트남 전쟁에서 발을 빼려는 그의 의도를 알아챈 군수산업 종사자들이 있었다는 설마저 존재할 정도다. 

전쟁의 고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정부는 국채 발행을 남발하고, 이로 인해 국가 재정이 악영향을 받아도, 그리고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어도, 전쟁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 집단은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 군수 산업 관련자들 뿐이다.

철군 계획의 부재인가, 필연적인 혼란인가

미국 언론도 그렇지만, 한국 언론도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순조롭지 않게 이루어지는 원인에 대해 궁금해한다. 도대체 누구의 책임일까? 이를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언론의 관점이 다르다.

먼저 폭스(Fox)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시각은 바이든이 무능하여 아프간 철수를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해 혼란을 야기하고 있으며, 미군과 민간인(미국인)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폭스 내에서도 보수의 스펙트럼이 넓은데, 그 중 트럼피즘으로 대표되는 극우는 바이든 인신공격까지 하고 있다. 한 앵커는 프랑스는 아프간에 들어가서 자국민을 다 구출해오는데, 바이든은 아프간 문제를 타개할 정신적 능력이 안 된다는 말까지 했다. 호기를 만난 듯, 또 '바이든 치매설'을 거론하는 거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 국무장관이었던 폼페이오도 폭스뉴스에 출연해 바이든이 모든 걸 망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반해, 진보언론의 초점은 현재 아프간 혼란의 책임문제보다 미군과 민간인 그리고 아프간 협력자들이 안전하게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방법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가 체계 있는 철군계획을 세웠는지, 만약에 세웠다면 왜 이런 혼란이 야기됐는지 원인 분석을 하고, 현 국무장관인 블링켄과 국가안보 수석인 설리번을 불러내 정부의 대안이 무엇인지 해결책을 질문한다.

사실 CNN과 같은 미국 진보언론은 이미 6월부터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대비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보도해 왔다. 지난 20년간 미군에 협력해왔던 아프간 조력자(통역인)와 그 가족에 대한 이민 신청 1만 8000건 가운데 9000건만 승인돼 탈레반 집권 후 남은 조력자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기사가 그 중 하나였다. 폭스는 자국민도 제대로 탈출시키지 못할 정도로 바이든은 무능하다고 욕하고 있을 때, 진보언론은 아프간 통역과 그 가족들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철수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자살 폭탄테러까지 발생해 미군의 아프간 철수로 인한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철수계획을 잘 세웠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순조롭게 철수가 진행되었을까?

8월 25일자 뉴욕타임즈 기사 "The Morning: A better Afghan policy"를 쓴 데이비드 리온하트에 따르면, 미군이 순조로운 철수를 실행하기 위한 깔끔한 해결책은 없고, 아프간에서의  철수는 필연적으로 볼썽사나울(ugly)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자국민이 아프간을 떠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탈레반과 탈레반 집권 전 어떻게든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의 이해가 극도로 상충되는 상황에서 혼란은 충분히 예견된 시나리오다.     

철수에 대한 바이든의 확고한 의지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앞서 이날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직후 국외로 도피했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앞서 이날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직후 국외로 도피했다.
ⓒ 카불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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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아프간 철수는 조 바이든의 전임인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을 내린 사항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아프간에 쏟아부은 돈이 천문학적 액수라며 더 이상 그 돈을 낭비할 수 없다며 즉각 철수를 강력히 주장했다. 미국이 나토(NATO) 동맹 부담금 내는 것까지 아까워했던 사람이라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트럼프는 2020년 2월 탈레반과 휴전 협상을 마치고도 즉각 철군을 하지 않고 밍기적거렸다. 트럼프가 그렇게 하고 싶다던 철수였는데 그에게 철군 의지가 분명하게 있었다면 재임 기간 중 단행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새롭게 당선된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정책노선과 다른 전임 대통령의 결정을 뒤집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건 매우 흔한 일이다. ABC 뉴스에 따르면, 2017년 1월 20일 트럼프는 대통령직에 취임한 직후 같은 해 9월까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중 20개를 취소하거나 뒤집는 행정명령을 발효했다. 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DACA 철회, 파리 기후조약으로부터의 탈퇴 등이다. 따라서 바이든은 전임이었던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인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뒤집을 마음만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CNN에 의하면, 바이든은 대통령직에 취임한 후 첫 100일 동안 60개의 행정명령에 사인했고, 그 중 24개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에 벽을 쌓는 것을 중단시켰고,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 조약에 다시 가입했으며, WHO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철회했으며, 키스톤 파이프라인 건설도 다시 취소했다. 그런데 아프간 철수 계획은 뒤집지 않고, 이전 행정부의 결정대로 철군 절차를 밝고 있다.

바이든은 이미 7월 아프간 철수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8월 16일 다시 한번 기자회견을 통해 철수 의지를 천명했다.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매우 혼란스럽게 진행되는데다, 미군과 민간인이 8월 31일 데드라인까지 철수를 완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회의론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군부를 대표하는 합참의장 밀리는 언론을 통해 아프간 철수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아직 아프간은 홀로 설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단호한 어조로 "(나는) 어떠한 비난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으며, 아프간 철수라는 짐을 자기 후임에게 떠 넘기지 않고 자신이 처리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해야 하는 이유

아프간 전쟁은 미국 2001년 9/11 사태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설립한 알 카에다의 척결이라는 목적아래 그들의 근거지를 소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진격하면서 시작되었다. 결국 2011년 오랜 추적 끝에 빈 라덴은 파키스탄에서 네이비 씰(Navy SEAL: 미국 해군의 엘리트 특수부대)에 의해 살해되었고, 알 카에다의 위세도 크게 줄어들었다. 

2001년부터 20년간 미국정부가 아프간에 쏟아 부은 액수에 대한 수많은 데이타가 존재한다. 심지어 3조 달러($3 trillion, 한화 약 3496조 억 원)까지 썼다는 기사도 봤다. 하지만 사회 인프라나 경제에 대한 투자까지 에둘러 포함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미군이 여태껏 아프간에 남아있었던 이유는 아프간 군대의 건설을 도와 스스로 탈레반에 맞서게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 정부가 아프간 군대를 건설하기 위해 원조한 금액 830억 달러($83 billion, 한화 약 96조 7천억 원)가 지난 이십년 동안 아프간에 쓴 돈으로 보면 된다. 

빈 라덴은 2011년 이미 사망했고, 알 카에다의 세력도 예전과 다르게 줄어들었다. 미국정부는 아프간 전쟁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고도, 여지껏 철수하지 않고 남아서 명분도 없이 국민세금을 계속 쓰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명분을 잃어버린 전쟁, 또는 아프간은 국민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갔기에 '잊힌 전쟁'이라고 미국 내에서 불리고 있다. 

미국 측이 20년 동안 830억 달러를 쓰고도 아프간 군대는 탈레반의 카불 진입시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무너졌다. 더 이상 미국정부가 아프간 군대를 위해 해 줄 것은 없다고 본다. 20년 동안 했는데 안 됐으면 안 되는 거다. 앞으로 계속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아프간에 원조를 정당화해줄 명목이 더 이상 없다고 본다.

미국 대통령은 임기를 단임으로 끝내고 싶지 않은 이상, 첫 번째 임기 중 크게 책 잡히거나, 정치적 반대파로부터 비난받을 만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다음 선거 때 상대 후보에게 공격당할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어서 재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바이든이 재선을 염두에 두었다면 미군의 아프간 철수에 대해 재고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앞서 언급했던 뉴욕타임즈 기사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철수는 사람들의 희망사항과 달리, 필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messy) 과정을 보일 수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트럼프를 잊지 못하는 보수언론은 역시나 이를 빌미로 바이든에게 맹렬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이든은 비난을 꿋꿋이 버텨가며 아프간 철군을 강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개인 블로그 californialifeblog.com에도 포스팅 되었습니다.


태그:#아프간 전쟁, #아프간 철수, #오사마 빈 라덴, #알 카에다, #미군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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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금속공예가의 미국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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