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새 영화를 찍으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과거 대표작과 경쟁하는 감독들이 있다. 그 작품이 워낙에 뛰어나고 인상이 깊어 그만큼 뛰어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영화 <친구>를 찍었던 곽경택 감독이 있으며, 해외에서는 <식스 센스>를 찍었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대표적이다.
 
특히 샤말란 감독의 경우는 많은 관객들이 그의 영화를 보면서 기가 막힌 반전을 기다리곤 한다. 워낙 <식스 센스>의 반전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와 같은 부담감에 감독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영화를 자주 찍는다는 점이다. 소재는 신선한데 뭔가 한 방이 없어서 아쉬운 그런 영화.
 
최신 개봉한 영화 <올드>는 그런 샤말란 감독의 신작으로서 14번째 장편 영화이다. <식스 센스> 이후 계속 내리막을 걷다가 2016년 <23 아이덴티티>로 다시 부활했다는 평을 받는 샤말란 감독. 과연 <올드>는 관객들의 감독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줄까?
 
 영화<올드> 포스터

영화<올드> 포스터 ⓒ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 <올드>의 색다른 소재, 시간
 
언제나 그렇듯 샤밀란 감독은 이번에도 색다른 소재로 관객들을 현혹시킨다. 만약에 시간이 평소보다 일찍 가게 된다면? 영화는 포스터에 적혀 있듯이 아침에는 아이, 오후에는 어른, 저녁에는 노인이 되는 기괴한 상황을 상상해본다.
 
평범한 4인 가족의 여행. 아내는 약국에 갔다가 우연히 리조트 숙박권에 당첨되고, 덕분에 고급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다. 가족들은 리조트 측의 배려로 몇몇 팀들과 함께 외딴 곳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에서 놀게 되는데, 사건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일행들은 새벽에 나가 물에 빠져 싸늘하게 주검으로 돌아온 여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신고하기 위해 해변을 나가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해변 뒤에 있는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정신을 잃고 다시 바닷가에 누워 있기를 반복한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갖게 된 사람들. 그러나 곧이어 더 이상한 일이 생긴다. 6살, 11살이던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세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된다. 심지어 아이까지 갖고 출산도 경험하게 된다. 어른들은 시간의 흐름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은 눈에 쉽게 보이는 법이다.
 
 갈등의 시작

갈등의 시작 ⓒ 유니버설 픽처스

 
주인공들은 그제야 깨닫게 된다. 이곳에서의 30분은 원래 시간의 1년과 같다는 것. 영화는 그때부터 한 편의 호러물이 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바위산을 오르고, 바다에 뛰어들고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며, 그 과정에서 서로 의심하고 피까지 보게 된다. 한마디로 아비규환이 펼쳐진다.
 
그러나 영화가 더욱 무서운 것은 그런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스크린 속 시간의 흐름을 보는 것 자체가 공포다. 결국 인간이 느끼는 최고의 공포는 붙잡을 수 없는 세월이요, 그 종점에 서 있는 죽음 아니던가. 감독은 갑작스레 빨리 감기는 시간의 서늘함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사람들. 주인공들은 자신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대로 늙어간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고, 정신을 놓게 된다. 비록 일행 중에 의사와 간호사가 있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는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하루 만에 노인이 된 부부는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아이들 옆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속삭인다. 이제 오히려 편안하다고. 우리가 왜 그렇게 살기 위해 아득바득 노력했는지 모르겠노라고. 아마도 그것은 영화 <올드>를 통해 샤밀란 감독이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어설픈 반전
 
 평범했던 4식구

평범했던 4식구 ⓒ 유니버설 픽처스

 
그러나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동안 샤밀란 감독다운 반전을 요구했던 관객들의 목소리에 화답하듯이 갑자기 영화는 급 발진한다.
 
중년이 되어버린 남매는 아주 우연하게 산호초를 통해 해변을 탈출하게 되고, 자신들을 그곳으로 보냈던 리조트 회사를 일망타진하게 된다. 왜 해변에서 시간이 빨리 갔을까? 감독은 이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해변을 둘러싼 암석들 때문에 그랬을 뿐이라고, 영화적 장치일 뿐이라고 눙칠 뿐이다.
 
전혀 샤밀란 감독답지 않는 마무리. 그의 이전 영화들이 다 애매하고 불분명하게 끝났던 것에 반해 영화 <올드>는 부족한 개연성과 논리적 허점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확실한 결말을 찍는다. 샤밀란 감독의 영화가 결말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반전일 정도다. 원작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감독이 관객들의 불평불만에 시달렸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끝으로, 샤밀란 감독의 영화가 늘 그렇듯이 이번 영화에도 감독은 직접 조연 배우로 출연한다. 알아챌 듯 말 듯 출연했던 이전 영화와는 달리 그 배역도 꽤 크고 중요하다. 샤밀란 감독 영화를 자주 보았던 관객이라면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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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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