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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이 한 모임을 제안했다. 이른바 '하루에 다섯 문장 쓰기' 인증 모임.
 책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이 한 모임을 제안했다. 이른바 "하루에 다섯 문장 쓰기" 인증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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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곳을 갈 수도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도 없는 무기력한 시간이 일 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난 슬슬 불안해졌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코로나만 잠잠해지면, 그때가 되면' 하고 미루고 있는 날 발견했다. 코로나 시국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그 무렵 책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이 한 모임을 제안했다. 이른바 '하루에 다섯 문장 쓰기' 인증 모임.

규칙은 간단하다. 매일 다섯 문장을 써서 카톡 창에 올린다. 최소 다섯 문장이어야 하고 문장이 더 많은 건 상관없다. 100일 동안 진행되는 모임이고 처음 시작할 때 10만 원을 낸다. 하루 안 올리면 1000원씩 차감. 1000원이라고 하면 얼마 안 되는 돈 같지만 벌금을 낸다고 생각하면 그 돈이 그렇게 아깝다.

뭐라도 써서 다섯 문장을 만든다.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다들 서로의 글을 읽고 글 쓰는 습관을 들이는 재미에 빠졌는지 100일이 지나 한 번 정산을 했음에도 모임을 계속하자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200일을 목표로 글을 쓰고 있다.

인증 모임은 장점이 많다. 혼자 하면 포기하기 쉬운데, 서로 응원과 격려를 해주니 몇 번 빼먹을지언정 아예 포기하지는 않는다. 내 삶뿐 아니라 상대방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오프라인으로 마음껏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요즘, 이 모임에서 서로 마음을 나누며 온기를 느낀다.

영어, 운동, 문장... 매일이 바빠졌다  

다섯 문장 쓰기 모임을 한 달 정도 했을 때, 같이 일하는 후배들과 영어 공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영어'란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난 한숨이 먼저 나온다.

"아후, 영어만 잘하면 소원이 없겠다."
"저도요, 영어만 잘했으면."


서로 푸념을 늘어놓다가 난 영어도 인증 모임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카톡방을 만들고 서로 공부한 걸 매일 찍어서 올리면 어때?"

후배들은 모두 찬성했다. 영어 공부 유튜브 채널을 하나 정해서 매일 유튜브를 보고 노트 정리한 것을 찍어 올린다. 규칙은 다섯 문장 쓰기 모임과 동일하게 시작할 때 먼저 10만 원을 내고 안 올리는 날은 1000원씩 차감하기로 했다.

이 모임도 100일이 지나 한 번 정산이 끝났는데 200일을 목표로 계속하고 있다. 정산할 때 벌금을 제외한 돈을 받는 기쁨도 쏠쏠하다. 내가 낸 돈을, 그것도 벌금을 제하고 받는 건데도 괜히 돈을 버는 기분이다.

이것 외에도 지인 추천으로 운동 인증 모임과 성경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혼자 홈트를 하고 있어서, 운동 인증 모임이 굳이 필요할까, 생각했는데 막상 운동 인증 모임을 하니 주말에도 운동하게 되고 운동에 대한 새로운 정보도 많이 얻게 된다. 거기서 얻은 정보로 아는 체도 한다. 회의 중간에 림프 마사지를 하면서 다른 직원들에게 권한다.

"자, 얼굴을 들었을 때 목 옆에 튀어나온 근육을 살짝 꼬집듯이 꾹꾹 눌러 줘요. 쇄골 안쪽 라인도 꾹꾹 눌러주고요."

한 직원이 찌릿하다고 아흑, 소리를 낸다.

"어머, 림프 순환이 안 되나봐요. 이거 꾸준히 하면 면역력도 생기고 좋대요."

흡사 내가 아침 프로그램에 나오는 운동 강사가 된 것 같다.

지금, 무기력한 일상을 버티고 있다면 

코로나19라 안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분주했더라면 이런 인증 모임에는 관심도 없었을 거다. 집안일과 회사 일 사이사이에 퍼져 있는 날 일으켜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성경을 읽고 영어 공부를 한다. 각 카톡방에 인증 카톡을 다 올리고 나면 최소한 오늘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요 며칠 인증 모임의 폐해를 발견했다. 물론 이건 나에게만 해당한다. 바로, 인증을 하는데만 급급하다는 거다. 하나를 해도 깊이 있게 정성을 들여서 해야 하는데 '오케이, 패쓰! 다음! 오케이, 패쓰! 다음!' 하면서 해치우기 바쁘다. 이렇게 사유가 없는 삶이라니. 난 스스로를 자책한다.

인증 모임을 줄여야 하나, 그러다 또 안 하게 되면 어쩌지. 고민하다 퍼뜩 이게 발전하는 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고 습관을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이다가 이젠 거기에서 더 나아가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아야 하는 단계인 거다.

'그래! 난 발전하고 있는 거야!'

나아질 듯 나아지지 않는 코로나 시국으로 지치고 무기력한 사람이 있다면 인증 모임을 해 볼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온라인상으로라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며 서로 응원하다 보면 마음의 외로움이 걷히고 그 자리를 뿌듯함과 따뜻함이 대신 채울 수도 있다. 어쩌면 코로나 시국이 지난 뒤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 뼘 훌쩍 자라있을지도.

태그:#인증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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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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