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2 07:10최종 업데이트 21.08.1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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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최초의 올림픽 ⓒ IOC 공식 한국어 트위터 계정

 
올림픽은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들의 무대였다. 1896년 처음으로 열린 아테네올림픽에는 여성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여성 선수 출전이 처음으로 허용된 건 4년 뒤인 1900년 파리올림픽부터였는데, 이때도 여성 선수는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올림픽에 신설되는 종목에는 여성과 남성 부문이 모두 있어야 한다는 규정은 1991년이 되어서야 신설되었다. 긴 시간 동안 여성이 참가 가능한 종목은 더디게 늘어났다. 전 종목에 모든 참가 국가의 여성 선수가 출전한 올림픽은 2012년 런던올림픽이었다.

성소수자 쪽으로 가면 존재가 가려진 역사는 조금 더 길다. 커밍아웃을 한 선수가 등장한 최초의 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이후로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커밍아웃 한 성소수자 선수의 숫자는 한자리를 넘어간 적이 없었다.
 

2일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87㎏ 이상). 성전환 수술을 받은 선수 중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선 로럴 허버드(뉴질랜드)가 인상을 시도하고 있다. 2021.8.2 ⓒ 연합뉴스


그리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또 다른 최초가 등장했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공개한 선수들이 출전한 것이다. 이들 중 트랜스젠더 여성이자 뉴질랜드 역도 대표인 로렐 허버드가 국내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캐나다 여자축구 대표팀 미드필더인 퀸은 올림픽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건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선수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공개하고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는 168명으로 이는 역대 가장 많은 숫자다. 이들은 성소수자로서 올림픽에 참여한 의미를 이야기하며 가슴 뭉클한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올림픽을 빛낸 성소수자 선수들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무관중으로 열린 지난 23일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 밖에 세워진 오륜기 조형물 앞에서 일본 시민과 외국인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각종 사건사고로 시끄러웠던 도쿄올림픽이었지만 어쨌거나 이 행사에서 빛나는 지점을 뽑는다면 바로 성소수자 선수들의 존재였을 것이다. 우선 이들은 국가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참여했다. 대표성을 가진 자리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건 긍정적이거니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이는 성소수자 역시도 적어도 한 나라의 구성원이라는 맥락에서는 보편적이고 다를 게 없는 존재라는 신호를 준다. 사실 정치·시민사회 등 여타의 다른 영역에서는 성소수자가 대표성을 지닌 자리에 오르기 어렵다. 존재 자체가 '찬반'이라 논쟁적인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이 선출직이나 임명직에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그게 된다. 실력과 기량만이 조건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선수들의 존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당사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물론 올림픽은 내게 심란하기 짝이 없는 행사지만(나는 올림픽 행사를 앞두고 국가가 빈민을 도시에서 몰아내거나 경기장 건립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일을 막을 방안을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올림픽을 그나마 반겼던 것도 성소수자 선수들 때문이었다.

적어도 이 기간에는 성소수자와 관련하여 부정적인 보도보다 긍정적인 보도의 비율이 높다. (사실 긍정적이기보다는 선수가 공식석상에서 커밍아웃을 해도 언론이 호들갑을 떨거나 문제시하지 않을 뿐이다.) 특히나 정치인들의 혐오발언이나 보수 개신교계 혐오집단의 추태를 뉴스로 보게 될 다른 성소수자들(특히 청소년)을 늘 염려하는 입장에서, 올림픽 속 성소수자 선수들이 매체에 등장하는 걸 보면 마음이 놓일 정도다.

100년이 넘는 역사, 올림픽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
 

8일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폐회식에서 2024하계올림픽 개최지인 프랑스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이 오륜기를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2021.8.8 ⓒ 연합뉴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지난 시간 역동했던 여성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 운동들이 성취한 문화의 변화와 권리의 진전도 있었다. 환경이 바뀌면 단체도 행사도 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기에 올림픽 국제위원회가 고집불통의 집단으로 남지 않은 것도 짚어야 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더디기는 했고 때로는 뒷북에 가까웠지만, 올림픽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규정을 수정하고 문화를 변화시켜 갔다.

문제가 된 여성 출전, 트랜스젠더 선수 출전 제한도 점점 사라졌다. 인터섹스를 구별한다는 목적으로 여성 선수에게 강제되었던 신체검사 역시도 1999년에는 폐지되었다. 최근에는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에 대한 테스토스테론 수치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올림픽 위원회는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는 올림픽이 성소수자 친화적인 대기업들의 스폰서를 받고 그들의 눈치를 살핀다는 이유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정도의 눈치도 보지 않다가 결국 생명력이 꺼져버린 다른 행사들의 사례를 생각한다면 이런 처신을 꼭 나쁘게 볼 필요가 있을까. 어쨌거나 이들은 변화된 세상에 발맞추어 생존하기를 선택한 셈이니까. 낙후되어 도태되는 게 아니라 공존을 택한 것이다.
 

2024 파리올림픽 로고 ⓒ 국제올림픽위원회

 
변화는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도 계속된다. 파리올림픽은 여성이 최초로 참가한 1900년 올림픽을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로고의 디자인에는 공화국과 혁명의 상징인 마리안의 형상이 반영되었다. 마지막으로 파리올림픽은 여성과 남성 선수가 5250명씩, 최초로 동수로 참여하는 올림픽이 될 것이다.

올림픽의 첫 시작과 이후의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화다. 올림픽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그 기간 동안 홀로 낡아가다 시대의 웃음거리가 되어 사라진 문화들은 정말 많다. 그러니 이 국제행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아무리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었다고 해도 공존을 위해서는 시대에 발맞추어 스스로 개혁하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게 아닐까. 나는 우리 사회에도 이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할 곳이 많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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