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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박 원장.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자네를 위해서 멋진 여행 한번 시켜줄게. 이거 아무나 안 시켜 주는 거다. 남편이랑 같이 와."

지난주 빵만들기 봉사현장에서 지인의 속삭임에 혹 했다. 일년 365일, 다람쥐 쳇바퀴같은 생활이지만 그래도 함께 봉사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여행에서 얻는 청량 산소를 마시는 듯하다.

나를 위해서 제안하는 것이니 당연히 고마웠다. 게다가 시간을 아끼며 생활하는 내 성격을 아는지라, 텃밭 하루 쉬고, 아침 일찍 갔다 오면 점심 전에 오니, 나의 학원 업무에도 지장이 없을 것이라 했다. 장소는 고군산도의 선유도!

오전 7시에 출발해서 선유도 주차장까지는 약 40분. 옥수수 수확을 앞둔 텃밭행 대신 오랜만에 새만금 여행 한번 가자고,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일부러 관광까지 오는 선유도 한바퀴 돌고 오자며 남편을 깨웠다. 언제나처럼, 남편은 흔쾌히 허락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자연-바다, 산, 새, 꽃, 구름, 바람-을 만나면서 그 고장의 문화와 역사를 줄줄 얘기하는 것을 즐기는 남편, 게다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벌써부터 아른거릴텐데라고 얘기했더니 그냥 웃었다.
 
선유도해수욕장 인적이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가히 예술이다
▲ 선유도해수욕장 인적이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가히 예술이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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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관광지인 선유도 해수욕장은 거의 텅 빈 상태였다. 섬 고장 사람들은 여름 한철 소위 바캉스 계절, 인파의 북적거림으로 일 년의 생계가 달렸다는데... 너무 한적해서 구경 왔다는 마음이 미안해졌다. 주차장에 모인 지인 8명을 인솔할 관광해설사 두 분이 나왔다.

그런데, 쓰레기봉투와 쓰레기 줍는 집게를 들고 있었다. 해설사 한 사람 당 지인 4명씩 조를 나눴다. '헉, 설마, 이렇게 더운 날, 해수욕장 쓰레기 줍는 봉사활동은 아니겠지?' 쓰레기 봉투를 든 박수진님(전라북도 천리길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 있었다. 

"여러분 오늘은 선유도 천리길을 걸으면서 이곳의 문화 역사 얘기도 듣구요, 더불어 환경을 지키는 '플로깅 캠페인'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사전에 플로깅(조깅이나 산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말씀은 못 드리고, 그냥 선유도 여행이라고해서 맘 상하셨나요? 여기 오신 분들은 봉사활동에 나름 전문가이셔서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실 걸로 믿어요. 제가 오늘 재미난 얘기 많이 해드리고요, 오랜만에 선유도의 해수욕장 모래도 밟아보시며, 힐링여행 함께 즐기시게요."

정말이지 해설사의 진심어린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돌아갈 뻔 한 기분이었는데, 때마침 학생들의 여름방학 봉사활동으로 환경캠페인 '우리동네 플라스틱 줄이기'를 계획했던 터라 금세 마음이 바뀌었다. 

"솔직히 우리 부부는 여행인 줄 알고 왔는데요,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선유도 구경도 하고, 온 김에 쓰레기도 줍고 하죠 뭐. 이런 기회가 흔치 않지요."

전라북도는 2018년 전라도 정도 천년을 기념하여 14개 시, 군마다 3~4개의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 가치, 이야기가 있는 길, 명품걷기여행길(44개 노선, 405Km)을 선정하였고 선정된 길들을 '전북천리길'로 명명했다. 그 중 군산시는 구불4길(구슬뫼), 구불5길(물빛길), 구불6-1길(탁류길), 구불8길(고군산)이 선정됐다. 선유도 해변은 고군산도 길 중 하나였다. 
 
선유도와 대장도를 이어준 장자도  선유도(선유봉)의 머리와 대장도의 발끝이 서로 맞닿은 풍경이 아름답다
▲ 선유도와 대장도를 이어준 장자도  선유도(선유봉)의 머리와 대장도의 발끝이 서로 맞닿은 풍경이 아름답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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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산도는 군산시의 서남쪽 약 50㎞ 해상에 위치, 옥도면에 소속되어 있는 군도(群島)로서, 현재 군산시의 태동지이다. 선유도(仙遊島), 야미도(夜味島), 신시도(新侍島), 무녀도(巫女島), 장자도(壯子島), 대장도(大長島), 방축도(防築島), 명도(明島), 말도(末島) 등 6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16개가 유인도이다. 군산에서 고군산군도의 중심인 선유도까지는 약 50㎞이다.

고군산군도는 '선유8경'이라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다. 새만금사업(1991∼현재)과 함께 국제해양관광단지 계획이 진행 중인데, 고군산도의 여러 섬들을 서로 이어서 손꼽히는 관광지를 조성한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나의 사적 의견은 다소 부정적이지만 어찌됐던 국가 사업을 내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해설가의 말대로 그나마 고군산도는 관광지로 덜 유명해서 그만큼 자연경관이 덜 훼손되었다고 하니 지금이라도, 자연은 자연스럽게, 놔두고 보았으면 좋겠다는 구 세대의 바람만 전할 뿐이다.

선유도 해수욕장 입구의 갯벌을 매립해서 주차장을 만들어 달라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군산시는 서식하고 있던 멸종위기종 '흰발농게'를 이사시켰다. 나는 꼭 일년 전(2020.7월)에 본지에 매우 특이한 이 행정정책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관련기사 : 왜 흰발농게가 이사를 가야 할까요). 다시 찾은 이곳은 자갈밭으로 메워져 있었지만 망주봉만은 변함없이 태연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플로깅을 실천하는 지인들 해설사의 재밌는 설명과 함께 걸으며 쓰레기를 담는 사람들
▲ 플로깅을 실천하는 지인들 해설사의 재밌는 설명과 함께 걸으며 쓰레기를 담는 사람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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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거의 없는 선유도 해수욕장의 모래밭에서 저 멀리 장자도, 대장도를 보고 사진도 찍고, 해설사의 선유도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선유도 내부 깊숙이 있는 몽돌해수욕장까지 걸었다. 모래해변 가에 해당화, 칡꽃, 도라지꽃, 나리꽃의 환대를 받으며, 걷다가 선유도의 사진찍기 핫플레이스인 '선유봉(선녀가 길게 누워있는 모습)'도 만나고, 할망바위가 있는 대장도의 우람한 모습도 한눈에 들어왔다.

다른 지인들은 모범생답게, 어디에 쓰레기가 있나 하며, 줍기 바쁜데, 나는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핑계를 대도 "그려 그려" 하며 어린 동생 대하듯 친절을 베푸는 60~70대 이모님 봉사자들께 시원한 냉소바로 점심을 대접했다.

여행은 설렘으로 시작하고 그리움으로 저축된다. 미지를 향한 기대감으로 출발하고 몇 끼를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포만감으로 마감한다. 열심히만 살아야 될 것 같은 삶의 에너지를 잠시 방전시켜 놓아도 괞찬다고 다독여주는 것이 여행이다. 
 
선유도의 금빛 모래위에 서서 부부는 말이 없이 섬과 바다를 보며 복잡한 일상을 힐링했다
▲ 선유도의 금빛 모래위에 서서 부부는 말이 없이 섬과 바다를 보며 복잡한 일상을 힐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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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특별한 곳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 우리가 미처 찾을 생각도 못하고 있을 때 귀중한 것을 발견하는 우연한 기회)를 찾아보면 어떨까. 새벽을 깨워 출발한 오늘의 여행은 일거다득의 만찬을 즐기게 해주었다. 절로 건강한 여름여행을 발견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지인들에게 수다를 떤다. 저와 함께 여행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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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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