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입장하는 미국 선수단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 [올림픽] 입장하는 미국 선수단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계농구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이 무너졌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이 25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농구 A조 예선 1차전'에서 프랑스에게 76-83으로 충격패를 당했다.

4회 연속 금메달을 노리는 미국 남자농구가 올림픽에서 패배한 것은 2004년 아테네대회 4강전 아르헨티나전 이후 무려 17년 만이다. 당시 동메달에 그쳤던 미국 대표팀은 지난 2016 리우대회 결승전까지 이어온 25연승 행진에 씁쓸한 마침표를 찍었다.

미국은 부인할 수 없는 올림픽 농구 최강국이다. 미국은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는 대학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구성해 참가했으나 대회 준결승에서 소련에 패배하며 자존심을 구긴 이후, 4년 뒤인 1992 바르셀로나 대회부터는 사상 최초로 프로 최정예 멤버의 팀을 꾸리기 시작하며 미국의 독주체제가 본격화됐다.

당시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결집한 미국 대표팀을 두고 꿈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팀이라는 의미로 '드림팀(Dream team)'이라는 표현이 탄생했다. 세계올스타도 아닌 한 국가의 대표팀을 드림팀이라고 자부할 만큼 미국농구의 오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현실적으로 실력-인기-결과 모두 그럴만 했던 '역사상 최강의 팀'이었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수 없었다.

기대한 대로 드림팀은 올림픽에서 8경기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평균 점수 차는 무려 43.8점에 이르렀다. 드림팀의 압도적인 실력과 높은 인기는 농구의 세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고, 각 종목을 통틀어 역사적인 강팀을 두고 드림팀이라는 표현이 일반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대회 미국농구대표팀은 지금도 유일무이한 '원조 드림팀'으로 꼽히고 있으며, 당시 멤버 12인 중 11인이 개인 자격으로 미국농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2010년에는 아예 드림팀 자체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이후 미국농구는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3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동메달에 그치며 잠시 주춤했지만 2008년 베이징 대회부터,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까지 다시 3연패를 이뤄냈다. 프로 선수들이 출전하기 시작한 1992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최근 7번 중 6번이나 정상에 올랐으니 최강이라는 자부심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도쿄 대회를 앞두고 미국 등 해외 현지 언론에서는 일찌감치 '이번에는 불안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포포비치 감독이 이끄는 미국농구 대표팀은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제임스 하든, 앤서니 데이비스 등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부상과 개인사정 등으로 잇달아 불참을 선언했다.

이번 대표팀에 리그 최정상급이라고 할 만한 선수는 케빈 듀란트와 데미언 릴라드 정도에 불과하다. 뱀 아데바요와 드레이먼드 그린이 주전으로 나서야 하는 빅맨진은 1992년 원조 드림팀 이후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여기에 크리스 미들턴, 즈루 할러데이, 데빈 부커 등은 소속팀이 NBA 플레이오프에서 챔피언전까지 치르고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하느라 체력적 부담이 큰 데다 동료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이 거의 없었다.

'최대 흑역사' 2004 아테네올림픽 연상

미국 대표팀은 도쿄올림픽 출전에 앞서 치른 평가전에서 2승 2패에 그쳤다. 스페인을 83-76으로, 아르헨티나엔 108-80으로 이겼지만, 호주에 67-70으로 패했고 몇 수아래로 꼽혔던 나이지리아에 87-90로 덜미를 잡힌 것은 큰 충격이었다. 물론 연습경기였고 미국이 전력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곳곳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올림픽에서의 행보가 쉽지 않으리라는 복선을 예고했다.

이번 미국대표팀의 전력이나 상황은 여러모로 드림팀의 최대 흑역사인 2004 아테네올림픽을 연상시킨다. 당시 미국은 올림픽에 앞서서 2003년 자국에서 열린 FIBA 세계선수권(현 농구월드컵)에서 2진급 선수들을 내보냈다가 6위에 그치는 망신을 당하며 불안감을 드리웠다. 미국은 올림픽에 최상의 선수들을 내보내려고 했으나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케빈 가넷 등 리그 최고의 스타들이 테러 위협 등의 이유로 대표팀을 고사했다.

물론 팀 던컨, 앨런 아이버슨, 스테판 마버리 등이 가세했지만 이들은 올림픽이 첫 출전이어서 국제농구 경험이 부족했고 이름값에 비하여 수비 매치업과 포지션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은 팀이었다. 훗날 리그 최고의 스타로 성장하는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등은 이때만 해도 신인급에 불과하여 크게 중용되지 못했다.

사령탑이었던 래리 브라운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장이었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선수 기용방식과 상대팀에 대한 대처능력 부족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농구의 상향평준화로 경쟁팀들도 더이상 예전처럼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국은 올림픽 본선에서 무려 3패나 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이후 몇 년간 국제무대에서 슬럼프를 겪어야했다.

2021년의 미국은 올림픽을 2년 앞두고 열린 지난 2019 중국 농구월드컵에서 역시 2진을 내보냈다가 7위에 그치는 수모를 겪으며 불안한 복선을 드리웠다. 포포비치 감독은 이 대회에 이어 올림픽에서도 여전히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사령탑을 겸임하고 있는 포포비치 감독은 2004년의 브라운 감독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인정받는 명장이지만 현역 최고령 감독으로서 나이가 너무 많고 국제농구의 흐름에 대처하는 데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은 올림픽을 앞두고 발표한 파워랭킹에서 미국은 놀랍게도 호주와 스페인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올림픽 첫 경기에서는 역시 NBA리거들을 다수 보유한 프랑스를 만나 에반 포니에(보스턴)에게 무려 28점을 내줬고 루디 고베어(유타)의 높이에 고전하며 리바운드 싸움에서 36-42로 밀리는 등 고전했다. 미국이 자랑하던 원투펀치 듀란트(10점)과 릴라드(11점)가 나란히 저득점에 야투율이 3할대에 그치는 졸전을 펼친 것도 치명타였다.

미국농구는 전성기에는 상대가 드림팀만 만나면 붙어보기도 전에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분위기지만 지금은 각국대표팀도 NBA에서 뛰는 스타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미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없다는 것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오히려 미국농구가 2000년대 이후 정통센터 기근과 농구트렌드의 변화로 인하여 빅맨진의 높이는 유럽팀에게 밀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렸을 때부터 비슷한 선수들이 연령대별 대표팀을 거쳐 FIBA룰에서 꾸준히 호흡을 맞춘 해외 대표팀 선수들이 조직력과 경험 면에서도 미국보다 우위에 있다.

물론 첫 경기만으로 미국이 아직 무너졌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A조의 미국은 앞으로 올림픽에 첫 출전하는 체코와 아시아팀인 이란과의 경기를 남겨두고 있어서 토너먼트 진출은 확실해보인다. 첫 경기의 패배가 오히려 미국 선수들의 위기의식과 동기부여를 자극하는 전화위복이 될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무조건 우승을 노리는 팀이다. 조 1위를 놓친다면 결선에 오르더라도 호주, 스페인, 아르헨티나, 슬로베니아같은 강력한 우승후보들을 조기에 만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미국농구를 바라보는 세계농구팬들의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볼수 있다. 세계최고의 스타 선수들을 보유한 '드림팀의 화려한 쇼타임'에 대한 기대감, 다른 하나는 세계최강이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미국농구의 덜미를 잡을 수 있는 '언더독의 반란'이 나와주기를 바라는 기대감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대회야말로 올림픽 정상을 노리는 팀들이라면 2004년 아테네에 이어 모처럼 대어 미국을 사냥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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