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24 18:51최종 업데이트 21.07.2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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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일본 극우세력이 제동을 걸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벗어났다. 이를 반영하는 현상들이 이번 7월에도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6일 나고야에서 위안부 소녀상 전시회가 개최됐다는 소식, 지난 8일 오사카에서 소녀상 전시회가 사전에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데 이어, 현지 시각으로 21일 독일 뮌헨 '슈퍼+센터코트' 전시장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회가 개막했다는 보도가 들려왔다. 뮌헨에서는 한국·일본·독일의 예술가 단체인 '아트 5'가 '예술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9월 15일까지 전시회를 이어가게 된다.


예술가들이 도전에 나서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신호다. 세상의 흐름을 직감적으로 수용하는 예술가들이 세계 도처에서 소녀상 건립이나 소녀상 전시회에 뛰어드는 현상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대세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추론케 할 만한 단서다.

또 국경이나 국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이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둘러싼 국제적 연대가 한층 용이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안부 문제가 전 지구적 보편성의 획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머지않아 나치 치하의 유대인 문제나 백인 치하의 미국 흑인 문제처럼 세계적 공감대를 얻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는 위안부 문제의 종착점이 '한국이 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일'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삶의 조건이 향상되는 일'이 될 것임을 전망케 하는 일이기도 하다.

뮌헨에서 열린 소녀상 전시회
 

21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뮌헨 도심의 슈퍼+센터코트 전시장에서 처음 선보인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 2021.7.22 ⓒ 연합뉴스

 
위안부 문제가 그 같은 보편적 성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은 뮌헨에서 소녀상 전시회를 주최한 이들의 발언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전시회 개막식 발언에서 레나 폰 게이소 공동대표는 "이번 전시의 목적은 예술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 형성에 기억과 문화와 과거 청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소녀상을 통한 기억의 공유가 과거 청산과 민주주의에 기여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고자 전시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유재현 아트 5 대표의 발언에서도 비슷한 취지가 나타났다. 그는 "민주주의의 저항의 힘을 예술로 보여주자는 게 기획 의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과거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이야기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데, 소녀상 전시를 통해 무엇이 우리를 침묵하게 짓누르는가를 묻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바로 표현의 자유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이런 발언들에서도 나타나듯이, 소녀상은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매개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세계인들이 소녀상에 공감하는 것은 한민족에 대한 일본 민족의 억압에 분노해서만은 아니다. 세계 어디서나 자행되는 인간에 대한 억압과 부조리한 지배에 대한 반감이 그런 공감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와 소녀상이 인류의 보편적 공감대를 획득하게 되면, 정치 영역뿐 아니라 일터 혹은 가정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좀 더 크게 확산되리라 기대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에 담긴 궁극적 코드는 '여성'이나 '민족'이 아니라 '피억압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소녀상을 매개로 이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더 크게 확산되면, 한민족이 이기는 게 아니라 '피억압 인간'들이 이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트 5' 대표들이 소녀상을 매개로 예술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강조한 것은 위안부 문제에 담긴 그 같은 폭발력과 무관하지 않다.

시대에 뒤떨어진 일본 극우
 

한국과 일본, 독일 문화예술가단체 '아트5'가 21일(현지시간)부터 9월 15일까지 뮌헨 슈퍼+센터코트와 플랫폼에서 '예술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국과 일본 작가 기획전을 연다. 사진은 전시회 개막한 '아트5'. 2021.7.22 ⓒ 연합뉴스

  
위안부 문제와 소녀상이 이처럼 예술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인류 보편의 영역으로 달려가고 있는데도, 일본 극우세력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대응법에 아직도 매달려 있다. 지난 8일에는 나고야 전시장에 폭죽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배달됐고, 오사카 전시장 측에도 협박 편지가 배달됐다는 교도통신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뮌헨 전시회의 경우에는 주최 측과 후원 단체들에 수백 건의 협박성 메일이 발송됐다.

전시회를 훼방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이것은 일본과 한국 간의 민족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민족감정이나 '반일종족주의'가 작동하는 문제로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굴레를 씌워 위안부 운동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폭발성 물질이나 협박 편지를 보내 예술가들을 제지하는 방식은 그런 방식을 구사하는 집단의 역량 부족만 드러낼 뿐이다. 예술가들을 겁주어 다시는 이런 일을 못하게 만들겠다는 식의 접근법은 일본 극우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떨어트리는 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 헌법 제2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선언했다. 일본 헌법은 제23조에서 학문의 자유는 보장했지만 예술의 자유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집회, 결사 및 언론, 출판 그 외 일체의 표현의 자유는 이를 보장한다"는 제21조 제1항에 의해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한국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이 발행한 <예술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검토>는 "일본에서는 예술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한다.

무슨 무슨 자유가 헌법 조문 혹은 헌법 해석에 의해 보장되려면, 해당 분야 사람들이 장구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한국에서는 헌법 조문을 통해, 일본에서는 헌법 해석을 통해 예술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은, 양국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투쟁을 벌여 성과를 획득했음을 뜻한다. 그런 역량을 갖춘 집단을 상대로 폭죽이나 협박성 메일로 겁을 주려하고 있으니, 일본 극우가 얼마나 낡은 의식의 소유자들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한국인, 여성

위안부 문제가 그런 훼방에 관계없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은 이 문제의 본질에서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식민지 한국인에 대한 억압이자 여성에 대한 억압에만 그치지 않고, 힘없는 민중에 대한 억압이라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가난한, 한국인, 여성'들이었다. 피해자들이 당한 억압은 식민지 한국인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기도 했고,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가난한 민중계급이었기 때문에 받은 측면도 컸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본제국주의의 억압을 받고 산 것은 아니다. 또 여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제의 핍박을 받은 것도 아니다. 고통을 받은 이들은 주로 힘없고 가난한 민중이었다.

피해자 중에는 강제적으로 연행된 이들도 있지만, '돈 벌게 해주겠다', '공부시켜 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이들도 있었다. 일본 극우세력은 감언이설에 넘어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이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강제로 끌려갔건 감언이설에 넘어갔건 간에 힘없고 가난한 민중계급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는다.

강제로 연행됐다는 것은 그렇게 끌고 가도 뒤탈이 없다고 봤을 만큼 집안이 힘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돈 벌게 해준다거나 공부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넘어갔다는 것은 그만큼 가난했음을 뜻한다. 이는 힘없고 가난한 가정의 여성들에게 위안부 피해가 집중됐음을 보여준다. 이는 위안부 문제가 민족 문제인 동시에 여성 문제이자, 민중 문제임을 뜻하는 것이다.

제국주의는 이제껏 인류 역사에 출현한 그 어떤 지배체제보다도 잔인하고 혹독했다. 그런 제국주의로 인해 식민지 한국 민중의 삶은 한층 더 열악해졌고, 그런 속에서 민중계급 여성들이 위안부 강제동원에 노출됐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일은 민중의 정치적 위상을 제고하는 일과도 직결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 속에 민중이라는 코드가 담겨 있다는 점은 이 문제가 한국의 문제, 한·일 양국의 문제를 떠나 세계의 문제로 보다 강력하게 뻗어나갈 가능성을 전망케 한다. 한·일 양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예술가들이 예술의 자유를 무기로 위안부 문제와 민주주의의 연관성에 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이 문제가 여성이나 약소민족뿐 아니라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데도 기여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는 일반 국민들과 시민단체뿐 아니라 세계 각국 예술가들의 지원까지 확보했다. 이런 상태에서 한민족이나 여성의 이익을 초월해 인류 보편의 이익인 인권과 민주주의 영역으로 달려가고 있다. 일본 극우세력이 '고전적' 방식으로 훼방을 놓을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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