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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어떻게 아무것도 안 사들고 온다니?"
"엄마, 그냥 기다리지 말고 오빠한테 뭐 먹고 싶다고 엄마가 말을 하면 되잖아."
"오빠야. 엄마는 오빠 온다고 기대하고 있는데 빈손으로 가지 좀 말고 뭐라도 사가지고 가지 그래."
"그게, 엄마 아빠가 뭐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가다가 또 중간에 마트 들르기도 번거롭고."
"오빠야. 그건 미리 사서 차에 놓던가 하면 되지. 그리고 뭐 좋아하시는지는 내가 문자로 보내줄게. 저장 좀 해놔."


오래전에 저 대화를 돌림노래처럼 했더랬다. 삼각무역도 아니고 왜 엄마와 오빠는 하고 싶은 말과 필요한 말을 서로 직접 할 줄 모르는지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당연히 답답했다.

"사랑하는 딸. 택배기가 왔다. 네가 갈비 보냈니?"
"엄마. 나 아닌데. 오빠가 보냈나 보네. 그리고 엄마! 택배기가 아니고 택배라니까. 택배기가 뭐야."


어느 날부턴가 오빠도 인터넷 배송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엄마는 택배로 먹거리를 받는다. 전염병 때문이 아니더라도 엄마가 읍내 마트나 시장을 가는 일은 쉽지 않다. 걸어 나가 버스를 타고 짐을 들고 시장 돌아다니는 일이 팔순 넘은 엄마에겐 이제 힘에 부쳤다. 아빠가 엄마를 옆에 태우고 같이 다정하게 장 보고 짜장면도 먹고 그런 일은 엄마의 이번 생에는 없을 것만 같다. 

엄마를 위한 특별 조치 
 
 나름 꼼꼼하고 정교하게 아이템을 챙기는 데도 내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빨리 떨어지는 게 있다. 바로 아빠 빵이다.
 나름 꼼꼼하고 정교하게 아이템을 챙기는 데도 내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빨리 떨어지는 게 있다. 바로 아빠 빵이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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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어쩌다 이발하러 시내로 나갈 때 엄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따라갔지만 항상 아빠 이발 시간보다 길게 장을 보니 아빠의 눈치가 여간 아니다. 차에서 기다리는 아버지는 역정을 내고. 그래서 엄마는 맘대로 시장 한 번을 못 간다. 그 고립된 일상이 길어지면 어쩌다 쌀, 김치 말고 먹을 게 없게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엄마와 장보기는 나의 의무이자 엄마와의 데이트가 된 지 오래다. 볼거리가 많아서 가끔 5일장을 다닌다. 엄마의 소비방식이 장보기를 더 힘들게 했다. 엄마는 오이를 살라치면 시장을 입구부터 끝자락 마지막 오이까지 "얼마에요"를 다 물어보았다.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그대로였다. 시장 입구 쪽으로 되돌아가서 세 번째 오이를 샀다. 내가 보기엔 그 오이가 그 오이인데 말이다.

요즘은 오빠와 내가 연실 먹을 거를 배송해드려서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하신다. 그러다보니 이번 배송된 과자는 눅눅하지는 않은지? 고등어는 몇 토막 남았는지? 과일은 떨어질 때 안 되었는지? 늘상 궁금했다.

그래서 나의 특기이자 취미, 바로 엑셀로 뚝딱 장부를 하나 만들었다. 그건 바로 '엄마 아빠 먹을 거 택배 장부'이다. 그러고 보니 내 생활비 총 지출 중 엄마 아빠의 먹을거리가 20프로 정도를 차지한다. 진작 별도의 장부가 있었어야 했다.

지난 두 달치 가계부를 다 뒤져서 과일, 간식, 고기, 생선 등 아이템별로 날짜를 표로 기록해놓고 보니 한눈에 들어오고, 계절 음식도 잊지 않고 챙길 수 있게 되어서 효율적이다. 곳간 열쇠 쥐고 있는 기재부 장관이 대단한 나랏일 한 것 같은 심정이랄까. 너무 뿌듯했다.

나름 꼼꼼하고 정교하게 아이템을 챙기는 데도 내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빨리 떨어지는 게 있다. 바로 아빠 빵이다. 빵 회사에서는 우리 아빠에게 공로상을 줘야 할 것이다. 아빠는 손바닥만 한 단팥빵 두세 개를 매일 자기 전에 드신다. 카스텔라, 초코빵, 샌드위치, 크림빵, 꽈배기 다 사드려봤어도 단팥빵만 못하다고 하신다. 아마 아빠 속은 팥으로 물들어 시커멀 것이라고 엄마랑 농담할 정도이다.

냉동 찹쌀떡과 함께 여름을 나시는 아빠

빵이 떨어지면 아빠는 자식 돈 쓰게 하지 말라며 엄마에게 전화 금지령을 내린다. 그것은 또한 자기 전 엄마의 부엌일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 퇴근했는데 회사를 또 가야 하는 상황이랄까.

저녁상 다 치워놓고 드라마 보다가 자면 딱 좋은데, 아빠의 야식을 위해 다시 부엌으로 가 밀가루 반죽하고 뭘 만들어내야 하는 일은 정말이지 얼마나 귀찮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봉지빵을 내가 사 보내드리기 전에는 늘 그리하셨다. 
 
냉동 찹쌀떡 날이 더워서인지 아빠는 요새 아침식사까지 밥 대신 떡으로 하신다.
▲ 냉동 찹쌀떡 날이 더워서인지 아빠는 요새 아침식사까지 밥 대신 떡으로 하신다.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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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평생을 반찬투정 없으시고 김치 말고는 찾는 반찬이 없다. 한편으로는 엄마의 음식 솜씨가 줄어드는 까닭이 그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아빠는 오직 야식으로 과일도 밥도 아닌 빵과 떡이 필요할 뿐이다. 봉지만 뜯으면 되니까 빵이 엄마에게도 천국이다. 그래서 내가 더 이 장부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다.

어느 날엔가 단팥빵 한 가지면 물리지 않을까 하여 팥으로 된 간식거리를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 팥 기획을 했다, 여름엔 얼려먹을 수 있는 바람떡과 찹쌀떡, 겨울엔 뜨겁고 푸짐한 호빵, 봄가을에는 단팥빵과 팥떡으로 정해보았다. 엄마네 집 김치냉장고의 반은 떡과 빵이다.

요즘 같이 더운 날, 아빠에게는 냉동 찹쌀떡이 그만이다. 속은 팥이고 겉은 쫄깃쫄깃한 떡으로 살짝 녹여서 먹으면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해서 여름 간식으로 안성맞춤이다. 요새는 아침식사까지 밥 대신 떡으로 하신다니 나는 오늘도 냉동실로 들어갈 아빠의 사랑을 주문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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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은퇴 후, 돈 안 되는 텃밭농사꾼. 최소한의 벌이만을 위해 노동하는 백수형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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