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코로나19를 1년 반째 겪고 있는 지금, '방역은 과학이다'라는 말을 많이 접했던 것 같다. 방역을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사고해야 하며 정치를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방역은 하나의 정책이라는 점에서 꽤나 정치적이지 않나 싶다. 백신을 누구에게 먼저 맞출 것인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생겨나는 손실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방역 앞에서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제한될 수 있는가 등등.

지난 1년 반은 이런 문제들이 방역은 과학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주는 시간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방역의 정치학'은 우리가 마스크를 쓴 채로 숨을 쉬는 행위에 대해 다각도로 사유할 수 있게 해준다. 

혼자 쉬는 숨이 없다는 깨달음
 
 전치형 외 지음, <호흡공동체> 책 표지.
 전치형 외 지음, <호흡공동체> 책 표지.
ⓒ 창비

관련사진보기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네 명의 저자들이 7월 출간한 <호흡공동체>(2021)는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공기위기'로 정의한다. 미세먼지와 코로나19, 폭염은 숨 쉬는 일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이는 숨 쉬는 일이 사회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는 통찰과 연결이 된다. 
 
우리는 인간의 사회적 활동이 공기를 뒤흔들고 다시 공기가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뒤흔드는 순환에 휘말려 있다. 사회는 공기를 통해서만 지금의 사회일 수 있고, 공기도 사회를 통해서만 지금의 공기가 된다. 공기는 자연의 매질인 동시에 사회의 매질이다. 미세먼지, 코로나19, 폭염의 공기위기를 거치며 우리는 '사회적 관계'가 곧 '공기관계'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공기를 누구와 나누어 마시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의 모든 사회적 활동가 정치적 행위의 중심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저자들이 주목하는 건 공동체를 위기에서 지켜내는 '공공의 과학(science for the public good)'이다. 이는 과학이 정치로부터 고립되거나 분리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에서 처음 이야기하는 '공기위기'는 미세먼지다. 2019년 봄 미세먼지 사태가 첫 관찰 대상이었다고. 미세먼지는 평소 공기에 신경 쓰지 않고 살던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공기문제에 대한 대책과 관련 정보에 대한 공개를 촉구하게 했다.

그러나 미세먼지 대책을 만들기 위한 한중일 동북아 3국 공동의 노력은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이로 인해 각자가 황사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한 공기기술이 빠르게 성장해 갔다. 이른바 공기공포가 수익 창출의 계기로 전환되어 간 것. 

이러한 '각자도생의 공기'는 개인과 기업이 당장 내 앞의 공기에만 집중하게 만드느라 거대한 공기의 문제를 감당해야 할 과학과 정치는 길을 찾지 못하게 만든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공기청정기는 당장 내 방 하나의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을진 몰라도, 우리 사회의 공기, 더 나아가 동북아 호흡공동체의 공기를 지켜내진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숨 쉴 권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인터넷 카페 '미대촉(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의 활동은 인상적이다. 
 
매년 봄 공기청정기 최신 모델을 구입하는 것으로는 아이가 평생 마실 공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분명하다. 과학, 행정, 외교를 망라하는 공적 자원을 과감하고 꾸준하게 투입해야만 공기위기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겨우 잡을 수 있다는 생각도 이제 낯설지 않다. 그래서 미대촉 회원들은 각자 전자제품 마트로 가서 쇼핑하는 것으로 활동을 끝내지 않고 굳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구호를 외친다. 마트가 아닌 광장에서 이들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공기제품이 아니라 숨 쉴 권리다. 지금껏 시민이 요구해야 하는지도 정부가 보장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권리,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권리다. 

공기위기에 대처하는 공적 지식을 위해 
 
 공기위기에 대처하는 호흡공동체가 오늘날 시급하게 요구된다.
 공기위기에 대처하는 호흡공동체가 오늘날 시급하게 요구된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미세먼지가 다양한 이유로 인해 2015년 관측 시작 이래 가장 낮게 검출된 지난 2020년, 우리의 또 다른 공기위기인 전염병과 폭염은 여전히 골칫덩어리다.

코로나19는 7월 21일 기준 2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천 명 대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여름 날씨는 푹푹 찌면서 35도를 웃도는 기온이 유지되고 있다. 어쩌다 보니 가장 시의적절한 때에 이 책이 출간된 게 아닌가 싶다.

전염병으로 인한 공기위기는 이전에도 있었다. 바로 메르스다. 저자들은 메르스가 한국의 감염병 관리 체계의 큰 허점을 드러냈지만 또한 한국 의료시스템의 공기관리 능력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가 이렇게 지독하게 길어질 줄 그 누구도 몰랐지만, 메르스 대응 실패의 교훈을 통해 감염병의 위험한 공기를 추적하고 이해하며 예측하려는 시도는 지금의 전염병 대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신종' 바이러스다. 그래서 모든 것에 대한 답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작년보다 조금은 더 잘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결국, "지식과 기준이 계속 업데이트 되는 상황"이며 현재의 역학조사는 "정답이 없는 게임"과 같다는 것이 이들의 시선이다. 

그런데 폭염은 새로운 일이 아님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공기위기다. 폭염을 피하는 것, 즉 '피서'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허락이나 제도적인 보장이 필요하며,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피서를 사회적, 문화적 행위라고 한 책의 표현은 타당하다.

한반도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지금, "최선의 지식과 판단으로 폭염의 공기관계에 개입"해야 한다. 이 역시 모두 함께 숨쉬기 위해 공동체적 해법이 필요한 일이다.

뉴노멀이라면 이런 상황이 뉴노멀이 아닐까? 과학의 몫이라고만 생각했던 지식을 공동체의 관점에서 다시 사유하고, 함께 숨 쉬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조건을 마련할 것이 요구되니까 말이다. 
 
광화문 광장의 호흡공동체에 미세먼지, 코로나19, 폭염의 공기재난은 서로 떨어져 차례를 지키면서 찾아오지 않는다. 관찰과 서술의 편의를 위해 각 장에서 따로 다루었을 뿐, 이들 공기재난은 얼마든지 동시에 발생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한 호흡공동체가 다시 구성해야 하는 공기관계도 세 가지 종류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미세먼지의 공기관계, 코로나19의 공기관계, 폭염의 공기관계가 독립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나머지에 영향을 미치면서 함께 변화한다. (중략) 우리는 때로는 연속적으로 때로는 동시다발적으로 닥쳐오는 적어도 세가지의 공기위기를 살아내고 있다. 이 위기의 목록은 언제라도 갱신될 수 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