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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저희학교 58회 졸업생이며 여러분들의 대 선배입니다. 여름방학 동안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자원봉사를 설명해 드리기 위해 방문하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의 선배로서 이 자리에 섰지만, 옛날 생각이 나서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여전히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교를 근 40년 만에 찾아서 정말 영광이구요."

군산여고 허미영 교감선생님의 나에 대한 소개와 나의 인사말이었다. 나의 모교인 군산여자고등학교(교장 김종기)는 1916년에 개교하여 105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지역의 명문여고다.

1980년 이 학교를 들어가던 해에 처음으로 소위 뺑뺑이 추첨으로 학교를 정하게 되니, 어린 맘에 이 학교를 떨어질까 걱정했던 기억이 새롭다. 운좋게도 학교에 들어갔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배들의 소리를 듣는다. '몇 학번이냐고. 뺑뺑이 세대네'라고.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학 및 사회생활로 떠돌다가 20여년 만에 군산으로 돌아왔지만 학생 때 보았던 군산의 시가지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발전이 안 된다고 불평이었지만 난 예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좋았다. 일부러 초중고 학창 시절의 길을 따라 걸어보면서, 어린 눈으로 보았던 세상을 다시금 주워 올리는 추억의 시간을 즐겼다. 
 
군산여고 2학년필사봉사단 필사시화엽서제작에 나선 군산여고2학년 후배들
▲ 군산여고 2학년필사봉사단 필사시화엽서제작에 나선 군산여고2학년 후배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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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부터 시작한 봉사활동 사업인 '필사시화엽서나눔'을 이곳저곳으로 홍보하던 중, 지인들에게 고등학생들 여름방학 활동으로 제안했었다. 내가 이끄는 청소년 동아리에 고등학생들이 있는데,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들은 작년에만 빈 공간이 생기니, 오히려 걱정을 했다. 비대면시대, 학생들이 문학을 접할 수 있는 시화엽서필사활동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겠다라고 느꼈다. 첫 번째 학교로 나의 모교를 선택했다.

군산여고는 군산의 상징인 월명산의 품속에 있다. 이 학교 출신들을 향파인이라고도 하는데, 향파란 '향기로운 언덕'이란 뜻이다. 학교의 가운데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마치 월명산의 등성이들이 회전하면서 향기로운 빛을 학교 안으로 쏟아내는 것 같다. 교문을 들어서면 정중앙에 신사임당 조각상이 있지만 역사 시간에 사임당과 율곡에 대한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때의 배경용도로 사용했던 기억이 더 많다.
 
군산여고 정문에서 본 본관 신사임당  조각상의 고상한 면모는  변치 않았네
▲ 군산여고 정문에서 본 본관 신사임당 조각상의 고상한 면모는 변치 않았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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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을 지나가는데 40년 만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아침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전해주던 비뚤빼뚤한 돌계단은 사라지고 날렵한 시멘트계단이 있었다. 나는 고2때, 모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했던 교내백일장 대회에서 우수학생으로 뽑혔다. 그때의 글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시조부분에 응모, 제목도 '인생무상'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고2 인생이 무엇을 알았을까. 숫기가 없어서 친구들과의 소통도 약했던 내가 상을 받으러 그 돌계단을 올라가다 너무 떨려서 그만 넘어졌던 일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다. 마침 만나러 가는 학생들 역시 고2라고 해서 예전 내 모습이 떠올라 순간 움츠려들었다. 지금 지역에서 활동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나의 방문 목적을 소개했다. 140명이 이 활동에 참여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을 때, 학생들의 활동은 반가웠지만 행정 처리로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될 것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모교 후배들과의 인연을 접고 싶지 않았고, 지금 시필사 봉사자들의 수고를 덜 수 있을 것 같아서 대환영이라고 했다. 
 
필사시화엽서봉사활동상담가로 모교를 찾다 40여년만에 고등학교 후배들을 만나서 활동을 설명하다
▲ 필사시화엽서봉사활동상담가로 모교를 찾다 40여년만에 고등학교 후배들을 만나서 활동을 설명하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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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20여 분의 시간에, 5월부터 시작한 '필사시화엽서나눔'에 대해 설명하고, 엽서제작시, 꼭 지켜야 될 약속사항을 전했다.

"엽서를 받는 수혜자들이 노령인 점을 감안해서, 글씨는 예쁘게 포장하기보다는 정자체로 써주세요. 그림을 못 그려도 좋으니 스트레스 받지마세요. 반드시 시만 필사하는 게 아니라, 명언, 좋은 가사도 좋구요, 이왕이면 암기하면서 쓰면 공부에 도움이 되겠지요. 반드시 글의 출처를 밝혀주세요.

더불어, 여러분들의 활동이 단순히 봉사시간이나 부여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코로나로 인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 닫혀져 있잖아요.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마음을 열어주는 강력한 도구랍니다. 활동단체의 이름처럼, 여러분들이 만든 시화엽서는 민들레 홀씨되어 어느 곳에 떨어질지 몰라요. 어떤 희망의 씨앗이 움틀지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누군가는 기억할 거예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여러분이 만든 엽서를 보게 될지도 몰라요. 잘 부탁드려요."


설명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시 하나를 읽어주며, 시의 제목과 시인의 이름을 맞추면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낭송했다. 비록 선물을 받은 학생은 없었지만, 아마도 이번 기회가 훗날 고등학교의 추억으로 떠오를 좋은 활동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중략)


 
사무실에 돌아온 후, 곧 후배들이 엽서에 필사를 하는 사진 몇 장이 도착했다. 견본으로 몇 명의 학생들이 하고 있는 중이라는 교감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요즘 학생들이야말로 시청각에 뛰어난 재주가 있는 MZ(나만의 약어, Master Zoom)세대 아니던가.

무엇이든 빠르게 영리하게 습득하고 개별적이면서 종합적인 아이디어를 동시에 쏟아내는 청소년들. 모교의 후배이자 학생봉사자들이 만들어낼, 시화엽서에 대한 기대가 벌써부터 나를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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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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