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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사람들은 여름에 배탈로 고생한 적이 거의 없다. 아버지가 손수 만든 약 덕분이다. 어렸을 적, 나와 동생들은 시장에서 파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에 빠져 있었다. 배탈에 시달리는 게 당연할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아버진 간장 색깔의 물을 갖다주었다. 신기하게도 이걸 마시고 나면 배앓이가 멈췄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에 단련된 입맛으론 이 한약 같은 물을 마시기가 쉽지 않았다. 혀를 살짝 갖다 대니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신맛이 났다. 레몬이 2~3개 들어간 맛이랄까. 어린 나와 동생들은 마시기 싫다며 떼를 썼다.

그러면 아버지가 거기에 꿀을 조금 타주었다. 여기에 얼음까지 넣으면 상쾌한 향이 감도는 음료수가 탄생한다. 처음엔 아릿한 신맛이 나지만, 곧 은은한 단맛이 혀에 맴돈다. 묘한 중독성도 있다. 나와 동생들은 여름이면 이 음료수를 하루에 한 잔씩 마셨다. 이 음료수가 바로 매실 엑기스다.

매실 엑기스의 맛에 슬슬 익숙해졌을 즈음, 나는 뜻밖의 술을 경험했다. 매실주였다. 헐거운 뚜껑을 열어 한 숟가락을 몰래 떠먹었다. 매실액에 꿀을 타면 훌륭한 음료수가 되지만, 소주를 타면 머리가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진 붉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곤 금세 알아차렸다. "아직 덜 익었어. 벌써부터 매실주에 욕심을 내?"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버지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게 분명하다.

매실 주스가 채워줄 수 없는 그 맛 

이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집에 더 이상 매실주는 없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선 매실 엑기스와 매실주를 담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나와 동생들도 언제부터인가 밥을 먹고 나면 매실 대신 오메가3나 홍삼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친숙했던 매실의 맛과 향이 이젠 어렴풋하다. 가끔 편의점에서 파는 매실 주스로 그리움을 달래보지만 역부족이다. 매실이 아닌 전혀 다른 음료처럼 느껴진다. 매실의 그 맛이 그립다. 그래서 아버지를 꼬셨다.

매실은 6월 말에서 7월 사이에 수확한 것이 제일 좋다. 맛은 물론 영양이 가장 많을 시기다. 매실에는 무기질(칼슘, 칼륨 등)과 비타민, 유기산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특히 유기산은 피로를 풀어주며, 위장의 소화 작용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해독 능력이 뛰어나 배탈이나 식중독을 치료할 때도 좋다. 매실의 짜릿한 신맛이 입맛을 돋우는 건 덤.
   
아버지는 과거에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탕제원에서 일했다. 당시 이웃이었던 에덴탕제원의 사장님이 추천해준 가게에서 매실을 샀다. 단단하고 색이 짙은 매실이 좋다.
▲ 매실을 확인하는 아버지의 손 아버지는 과거에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탕제원에서 일했다. 당시 이웃이었던 에덴탕제원의 사장님이 추천해준 가게에서 매실을 샀다. 단단하고 색이 짙은 매실이 좋다.
ⓒ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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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 청량리청과물시장으로 향했다. 전남 광양에서 올라온 싱싱한 매실을 골랐다. 수확한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진한 연둣빛을 띠고 있다. 그래서 이름이 청매(靑梅)다. 과육이 단단하고, 신맛이 특히 강하다. 장마철을 지나 7월이 되면 매실들이 익기 시작한다. 초록색이 점차 사라지고, 노란색이 감도는 황매(黃梅)가 된다.

제철의 매실을 먹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매실주, 매실 엑기스, 매실청 등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우메보시'란 매실 장아찌를 먹기도 한다. 단, 덜 익은 매실을 그냥 물에 씻어서 먹는 건 좋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덜 익은 매실에는 시안화합물(청산 및 그와 관련된 모든 염류)이 있어 잘못 먹으면 어지러움과 두통, 구토, 두근거림 등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매실의 씨앗에는 독성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매실주와 매실 엑기스, 매실청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매실을 물로 깨끗이 씻는다. 흐르는 물에 하나하나 손으로 박박 문질렀다. 그 후 이쑤시개로 매실의 꼭지를 제거해야 한다. 매실의 꼭지는 불순물이다. 씻은 매실을 그대로 사용했다간 쓴맛이 우러나올 확률이 높다. 손질을 마친 매실은 물기가 마를 때까지 말린다.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면 충분하다.

단단하고 초록빛이 도는 매실을 골라냈다. 담금주와 매실청에 쓰려면 매실이 무엇보다 단단해야 한다. 그래야 맛이 좋다고 아버지는 강조했다. 상태가 좋지 않거나, 매실 향을 풀풀 풍기는 황매는 매실 엑기스로 사용했다.
 
매실 엑기스의 노란빛이 짙은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끓여주어야 한다. 이때 밑부분이 눌러 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주는 게 중요하다.
▲ 매실 엑기스를 만들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매실 엑기스의 노란빛이 짙은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끓여주어야 한다. 이때 밑부분이 눌러 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주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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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불량에 시달리거나 배탈이 났을 때 매실 엑기스를 물에 섞어 마시면 좋다. 매실의 신맛이 싫은 사람들에겐 꿀이나 설탕을 더해서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매실 엑기스를 만드는 방법은 비교적 까다롭다. 매실을 잘라 씨앗을 일일이 제거한 다음, 믹서기로 곱게 간다. 그리고 매실의 노란빛이 짙은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끓여주면 완성이다.

중간중간에 거품을 걷어주고, 바닥에 매실이 눌러 붙지 않도록 저어주어야 한다. 이때 불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한다. 강불로 시작해서 끓기 시작할 때쯤 중~약불로 바꿔준다. 강불로 계속하다간 눌러 붙기가 쉽고, 뜨거운 매실 엑기스가 이따금 냄비 밖으로 튈 수도 있다.

매실 엑기스가 약 3분의 1 정도로 줄어들면 짙은 간장 색깔을 띤다. 단맛을 더하고 싶다면 여기에 황설탕을 넣어주면 된다.
 
우리집의 매실주 레시피는 간단하다. 매실에 담금주용 소주를 붓기만 하면 끝이다.
▲ 매실에 소주 붓기 우리집의 매실주 레시피는 간단하다. 매실에 담금주용 소주를 붓기만 하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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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주, 기다림의 시간 

매실주는 그 독특한 향과 맛으로 유명하다. 애주가의 집에서 매실주 한 병 정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오랜 기간 숙성된 매실주에선 감칠맛이 난다. 뒷맛도 깔끔하다. 그냥 마셔도 맛있지만, 탄산수에 섞어 얼음과 함께 마셔보는 걸 추천한다.

대부분이 매실주를 만들 때 설탕이나 올리고당을 첨가하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선 오로지 매실과 술만을 이용한다. 아버진 "술에 무슨 설탕을 넣냐"며, "잘 닦은 매실에 술만 부으면 완성"이라고 이야기했다. 매실에 담금주용 소주를 붓고, 그늘진 곳에서 최소 세 달 이상 숙성시키면 된다.

매실주의 깊은 향과 맛을 느끼기 위해선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기다리는 편이 좋다. 주의할 점은 매실주를 담근 지 약 100일이 지나면, 과육을 걸러내고 액체만을 따로 남겨 숙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물러진 매실의 씨앗이 알코올과 반응하여 에틸카바메이트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에틸카바메이트는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발암추정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매실청은 매실주를 만드는 방법과 유사하다. 매실에 설탕을 1:1 비율로 부어주기만 하면 된다.
▲ 매실과 설탕의 비율은 1:1 매실청은 매실주를 만드는 방법과 유사하다. 매실에 설탕을 1:1 비율로 부어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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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청은 더운 여름에 후식으로 제격이다. 시원한 얼음물에 매실청을 조금 넣어 마시면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다. 잘 숙성된 매실청에선 신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매실 특유의 톡 쏘는 향과 설탕의 단맛만이 남아있다. 또, 아버지는 매실청이 효소(酵素)를 만드는 거라고 덧붙였다. 웬만한 소화제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위장에 좋다는 뜻이다.

매실청은 매실주를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다. 매실에 설탕을 1:1 비율로 부어주기만 하면 완성이다. 이때 내용물이 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뚜껑을 잘 닫아서 보관해야 한다. 곰팡이가 생길 염려가 있다. 매실청도 숙성한 지 100일이 지났을 때 매실 과육을 따로 걸러주는 편이 좋다. 숙성기간은 최소 3개월에서 1년이다.

뜨거운 매실 엑기스를 계속 국자로 저으며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동생들과 시장을 하루종일 뛰어놀다가 아버지의 가게로 돌아와 마시던 매실 한 잔. 뜨거운 탕제원에서 매실을 짜던 아버지와 냉장고의 얼음을 뒤적이시던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부채질. 과거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잠깐 스쳐 지나갔다.

하루종일 고생해 끓인 매실 엑기스의 맛은 새콤했다. 입안에 긴 여운이 남았다.
  
매실청과 매실주는 숙성이 필요하다. 매실청은 보통 3개월이면 완성이 되지만, 매실주는 길게 1년까지는 바라보아야 한다. 단, 숙성한 지 100일이 지나면 둘다 과육을 걸러주어야 한다.
▲ 3개월 뒤에 보자 매실청과 매실주는 숙성이 필요하다. 매실청은 보통 3개월이면 완성이 되지만, 매실주는 길게 1년까지는 바라보아야 한다. 단, 숙성한 지 100일이 지나면 둘다 과육을 걸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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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매실주와 매실청에 도전해보는 건 어떠한가. 내년 이맘때에 매실주의 뚜껑을 여는 상상을 해보라. 틈새로 흘러나오는 풍성한 매실 향이 당신을 지금의 추억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1. 매실 엑기스를 만드는 법
- 잘 씻은 매실을 잘라 씨앗을 제거한다.
- 매실을 최대한 곱게 간 후 끓인다. 강불로 시작해서 끓기 시작하면 중~약불로 바꾼다. 맨 밑부분이 타지 않게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 매실 3kg 기준, 3~4시간 정도 졸이면 간장 색깔로 변한다.
- 기호에 따라 꿀이나 설탕을 넣고 30분 정도 더 끓여준다.
- 완성된 매실 엑기스를 소독한 병에 옮겨 담아 식힌다.
- 별다른 숙성 기간 없이 시원한 물에 조금 섞어서 마시면 된다. 물 500ml에 작은 숟가락으로 한두 스푼 정도를 추천한다.

2. 매실청 만드는 법
- 매실을 물로 깨끗이 씻어낸 뒤, 물기가 날아갈 때까지 말린다.
- 열탕 소독한 병에 매실을 담고, 설탕을 1:1 비율로 부어준다.
- 내용물이 공기에 노출되지 않게끔 뚜껑을 잘 밀봉한다. 대충 닫았다간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다.
-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최소 3개월을 숙성시킨다. 설탕이 잘 녹지 않는다면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한 번 섞어준다.
- 3개월 뒤, 매실 과육을 걸러낸다.  

3. 매실주 담그는 법
- 초록빛이 감도는 단단한 매실을 사용하는 게 좋다.
- 뜨거운 물로 세척한 병에 매실 넣고 소주를 붓는다. 매실 3kg 기준 담금주 3.6L면 충분하다. 술은 알코올 도수가 25도~30도에 이르는 제품을 사용한다. 필자의 집은 예전부터 참이슬 담금주(30도)를 애용했다.
- 랩으로 입구를 한 번 감싸준 후에 뚜껑을 닫는다. 매실청과 마찬가지로 그늘진 곳에서 숙성시킨다.
- 숙성한 지 3개월이 지나면 매실 과육을 걸러내고, 액체만을 따로 숙성시킨다.

태그:#매실, #매실주 만드는 법, #매실엑기스 만드는 법, #매실청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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