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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에서 근로정신대로 동원됐다가 광복 72년만에 처음 만난 양금덕할머니가 사진 속에서 정신영 할머니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 아래 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정신영 할머니. 2017년 8월
 나주에서 근로정신대로 동원됐다가 광복 72년만에 처음 만난 양금덕할머니가 사진 속에서 정신영 할머니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 아래 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정신영 할머니. 2017년 8월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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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는 몇 살 자셨소?"
"구십 시살."
"그런디 이렇게 젊어? 오메 각시여~"


먼저 차에 오르신 정신영 할머니가 부러운 시선으로 주금용 할머니를 맞았습니다.

"아니 뭣이 젊어라? 허리를 다쳐갔고 걸음을 잘 못 걸은디."
"그만하면 젊제. 나도 다른데는 괜찮은디, 이렇게 허리가 꼬부라져븐께 당체 꼼짝도 못 하고…"
 

지난 14일 전남 나주에 계시는 정신영(92) 할머니와 주금용(93) 할머니를 모시고 식당으로 가는 길. 코로나에 꼼짝없이 댁에 갇혀 지낸 지도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오가던 경로당까지 문을 걸어 잠그다 보니 갑갑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며칠 전이 초복이었는데, 잠시나마 기분 전환이라도 하시도록 나주에 계신 할머니 몇 분을 점심 식사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정신영 할머니가 뒤늦게 차에 오른 이웃 마을 주금용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주위에 같은 피해자가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가까이 살면서도 그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나주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된 정 할머니는 2017년 8월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사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된 양금덕 할머니의 재판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은 직후였습니다.

뒤늦게 근로정신대 소송 나섰지만 재판 한 차례도 안 열려

정 할머니를 모시고 동행한 따님은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어머니가 무슨 일로 광주에 있는 이름도 낯선 사무실에 데려다 달라 하는지 영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 따님은 지금까지 자녀들한테는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았던 어머니의 10대 시절 얘기를 처음 듣게 됐습니다. 그 뒤 정 할머니는 2020년 1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참여했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72년 만에 만난 정신영 할머니와 양금덕할머니가 반가워 서로를 가리키며 옛 추억을 꺼내고 있는 모습
 일본에서 돌아온 후 72년 만에 만난 정신영 할머니와 양금덕할머니가 반가워 서로를 가리키며 옛 추억을 꺼내고 있는 모습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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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일본 도야마에 위치한 군수회사 후지코시로 동원된 주금용 할머니는 정 할머니보다 한 해 앞선 2019년 4월 후지코시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습니다. 두 할머니의 소송은 현재 광주지방법원에 접수돼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 측이 갖은 구실로 재판에 응하지 않고 시간을 지체시키고 있어, 정식 재판은 아직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오래돼 운치 있는 한옥집 식당에는 양금덕(93) 할머니, 이경자(78) 할머니가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모두 나주 출신으로 나주초등학교 선후배 사이입니다. 양금덕 할머니만 광주에 사시고, 세 할머니께서는 나주에 사시다 보니, 양금덕 할머니를 나주까지 모시게 된 것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시고모 위해 50년 넘게 제삿밥 차려온 조카며느리…

양금덕 할머니는 오랜 투쟁 끝에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습니다. 그러나 판결 2년 8개월째가 되도록 미쓰비시중공업은 배상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직접 당사자가 아닌데도 소송에 나선 이경자 할머니의 사연도 각별합니다.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지진에 죽은 시 고모의 한을 풀기 위해 소송에 나선 이경자 원고가 광주고등법원 승소 후 감격에 겨워하고 있는 모습. 2018년 12월.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지진에 죽은 시 고모의 한을 풀기 위해 소송에 나선 이경자 원고가 광주고등법원 승소 후 감격에 겨워하고 있는 모습. 2018년 12월.
ⓒ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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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와서 보니 시댁에 깊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1944년 12월 7일 동남해지진 당시 광주전남에서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어린 소녀들 6명이 무너지는 공장 건물더미에 갇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때 숨진 나주 출신 최정례가 시댁 할머니의 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경자 할머니 입장에서는 고인이 시댁 고모이자, 자신은 고인의 조카며느리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결혼하기 전의 일이라 고인과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입니다.
   
"시할머니를 모시게 됐는데 시집 올 때 해 온 새 이불을 드려도 한겨울에도 덮지 않아요. 왜 날도 추운데 이불을 덮지 않는지 내심 서운한 맘도 들었죠. 그런데 시할머니 말씀이 어린 자식을 타지에서 먼저 보냈는데 내가 어떻게 편히 이불을 덮고 자겠느냐며 마다 하시는 거예요."

어린 딸을 그리워하다 숨진 시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본 이 할머니는 그로부터 50여년 넘게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시고모를 위해 매년 설과 추석 명절에 대문 밖에 음식을 차려놓고 고인의 영혼을 위로해 왔습니다.

"밖에서 죽은 귀신은 안으로 못 들어온다고 하니, 소쿠리에다 국하고 밥 정도 대문 밖에 차려놓는 정도이죠. 시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음식 장만할 것은 없고, 국하고 밥 한 그릇만 차려놔 달라고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하시는데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이 할머니는 시할머니의 말씀이 잊히지 않아 지난 2015년 시댁을 대표해 소송에 나섰습니다. 고인과는 촌수가 멀어 소송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금액도 많지 않았습니다. 청구액이라야 고작 360만 원밖에 안 됐습니다. "억울한 한이라도 풀자고 나선 것이지, 그까짓 돈이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 이 할머니의 말씀입니다. 이 소송은 현재 2018년 12월 광주고등법원에서 승소한 뒤 현재 2년 7개월째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시 고모를 위해 소송에 나선 이경자 할머니가 광주지방법원에서 승소한 후, 일본 지원단체 '나고야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소송을지웒사는모임' 다카하시 대표님과 함께 시할머니 묘소 찾아 술을 올리고 있다. 2017년 8월 8일.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시 고모를 위해 소송에 나선 이경자 할머니가 광주지방법원에서 승소한 후, 일본 지원단체 "나고야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소송을지웒사는모임" 다카하시 대표님과 함께 시할머니 묘소 찾아 술을 올리고 있다. 2017년 8월 8일.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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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대단하시오. 제사까지 다 모셔 주시고. 보통 정성이 아니그만."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할머니들도 조카며느리의 각별한 정성을 다시 한 번 칭찬했습니다.

배고픔과 강제노역, 눈물로 밥을 삼기도

지난해 넘어져 허리를 크게 다친 주금용 할머니는 입맛이 없으신지 식사를 많이 못하셨습니다.

"14살에 후지코시 도야마현으로 가서 공장에서 선반 기계 깎는 일만 했어요. 해방되고 집으로 보내달라고 해서, 해방된 지 넉 달 만에 집으로 왔어요. 하도 어려서 가서 아무 세상 물정도 모르고 날마다 눈물로 밥을 삼고…"

모처럼 지난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우리는 학교 다니다 6학년에 끌려갔소. 다른 것은 놔두고 우선 밥이나 많이 주면 좋겄어. 자기들이 먹다 남은 것 주워서 먹으려고 했더니, 그것마저 못 먹게 발로 지근지근 밟아버려. 그것이 지금도 제일 원망스러워."

양금덕 할머니도 일본에서의 아픈 기억으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나주가 고향인 할머니들이 오랜 만에 만나 이야기르 나누고 있다. 선후배들인 할머니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길고 긴 소송에 나서고 있다.
 나주가 고향인 할머니들이 오랜 만에 만나 이야기르 나누고 있다. 선후배들인 할머니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길고 긴 소송에 나서고 있다.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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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TV만 보시다 보니, 대통령 선거에 나선 각 후보들 동향에 대해서도 쫙 꿰고 계셨습니다. 특별히 더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할머니들에 의해 한 차례씩 자근자근 씹힌 뒤, 이어 화제는 현재 진행 중인 소송 얘기로 모아졌습니다.

재판에 이긴 분들이나 재판을 이제 시작한 분들이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라 저마다 하시고 싶은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일본은 말할 것이 없지만, 답답한 심정에 정부에 대한 서운함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채찍을 해도 될까 말까 하는 판에… 우리 죽기만 바라나"

"괜히 시간 낭비만 한 것 같다"는 이경자 할머니는 "정부가 채찍을 해도 될까 말까 하는 판에 정부가 채찍을 안 하니까 이런 것 아니냐"며,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정부 책임을 거론했습니다.

"죽을 때까지는 꼴 영영 못 볼 모양이여. 일본은 박정희 때 다 줘버렸다고만 하고 저렇게 발 뻗고 있으니…"

1994년 관부재판 원고로 나선 것을 시작으로 27년째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는 작년부터 올해 사이에 살이 부쩍 빠지셨습니다. 도통 입맛을 찾지 못하고 계시는 양 할머니는 "우리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며 "우린 복이 없으니까 그런다 생각해야지"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는 서둘러 보고 죽어야제. 억지로는 할 수 없고, 하는 데까지 해보다 안 되면 다음 대통령이라도 기대해 봐야지 어쩌겠소. 더 기다려봅시다."

정신영 할머니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지 않느냐고 두 분을 애써 달랬습니다.

"천만의 말씀이랑께. 어느 누가 서둘러야 말이제. 서두른 사람도 없고, 다들 눈 감고 있당께. 보쑈. 우리 죽기만 기다리고 있잖아요. 인자 우리 죽으면 끝나!"

이 할머니는 이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은 듯했습니다.

"그 전에 뉴스 들으니까 미쓰비시는 줄 맘도 있는 것 같든디, 아베가 주지 말라고 하드만…."
"아, 모른 소리여. 그것도 아니여. 미쓰비시도 줄 맘은 전혀 없어."


거동 불편해도 세상 쫙 꿰고 있는 할머니들...누가 무지한 것일까?

"대통령도 우리 노인들만 생각하면 당차게 일어서서 하지만, 한국도 일본으로 수출도 해야 하고 일본도 한국 물건 써야 하고 다 그리 안하요. 일본과 대화하려다 보면 서로 비위도 맞춰야 하고 그런 것도 있겄제, 원인은 너무 늦게 서두른 거여. 그때가 언제라고. 이제 너무 늦어 버렸어."

대통령도 마음대로 안 되는 처지를 이해할만 하다는 정 할머니. 그러나 정 할머니 역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대통령 선거 하니라고 정신들 없는데, 이런 것 신경이나 쓰겄소. 늙은이들 어서 죽어버려라 그런 것이제."
 
 코로나로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한 할머니들이 오랜만에 나주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어느새 부쩍 야위어지신 할머니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코로나로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한 할머니들이 오랜만에 나주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어느새 부쩍 야위어지신 할머니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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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말씀에 끼어들 틈도 없고, 굳이 끼어들 면목도 없었습니다. 설령 할머니들 얘기가 조금 빗나간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 말에 더 보태고 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광복 76년이 지나도록 기다려 온 할머니들 앞에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좀처럼 그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거동이 불편할 뿐, 할머니들이 세상 이치나 물정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누구보다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모르고 있는 것은 어쩌면 피해자들이 나이 들어 이제 아무 것도 모를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우리 정부가 더 미워. 재판에서 이기면 뭐해. 어렵게 고생해서 보석을 캐줘도 왜 가공을 못 하느냐 말이오. 안 그러요?"

이 말 앞에 고개를 들기 어려웠던 것은 저 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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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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