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태국은 천국의 동의어야!"

10년 전 캄보디아에서 봉사단원으로 일할 때였다. 치열하고도 고되던 시간을 버티게 한 일등 공신은 일하는 보람이었다… 고 하고 싶지만, 업무가 과중했던 그때 내 정신적 지주는 딱 한 번 주어지는 2주간의 휴가였다. 20대 중반을 갓 넘긴 친구와 나는 두 팔을 파닥거리며 여행 계획을 짰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을 한 번에 도는 야심 찬 일정. 여행 첫날,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던 때 나는 신문물의 자극에 정신을 못 차렸다. 처음 보는 음식도 입에 착착 붙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첫 여행지에서 이미 중간 예산을 초과했다. 애초에 예산이 너무 빠듯했던 것이다.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식당에서 메뉴판을 폈는데, 캄보디아에 있다가 한국 같은 물가 수준을 보니 더더욱 고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거 먹고 싶어, 이것도, 이것도!!'라 울부짖는 욕망에게 '제정신이냐!!!'고 내적으로 사자후를 내지르고, 제일 싼 만두를 시켜 친구와 나눠먹었다. 만두 몇 개가 위장을 스쳐 갔다. 배가 고팠다. 체류 기간이 짧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2011년 싱가포르의 패스트푸드점 사진 폴더를 뒤져보면 싱가포르 폴더에만 음식 사진이 없다. 정말 못 먹긴 못 먹었나 보다.
▲ 2011년 싱가포르의 패스트푸드점 사진 폴더를 뒤져보면 싱가포르 폴더에만 음식 사진이 없다. 정말 못 먹긴 못 먹었나 보다.
ⓒ 김나라

관련사진보기

 
단돈 천 원에 천국을 맛봤다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도착한 태국. 태국이 우리를 살렸다. 방콕 도심 한가운데, 한국의 토스트 노점 같은 곳에서 쌀국수를 볶고 있었다. 팟타이(pad-thai)였다. 노점 앞에 붙은 30바트라는 숫자에 순간 어깨가 쫙 펴졌다. 우리 돈으로 단돈 천 원!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값을 지불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여행 중 가장 여유로웠다.
 
방콕 노점의 팟타이1 2011년 방콕 노점에서 볶음쌀국수를 기다리던 순간. 재료들이 신선해 보였다.
▲ 방콕 노점의 팟타이1 2011년 방콕 노점에서 볶음쌀국수를 기다리던 순간. 재료들이 신선해 보였다.
ⓒ 김나라

관련사진보기

 
노점 옆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먹는 길거리 팟타이는 소박했다. 갈색으로 물든 면은 자유분방하게 부서진 달걀과 자기주장 있는 숙주들, 튼튼한 레몬그라스 잎을 껴안고 기름으로 적당히 빛나고 있었다. 화려하고 정성스러운 맛은 아니었으나 희한하게 신선하고 감칠맛이 났다.

피시소스의 짭짤하고 비릿한 맛, 타마린드 즙의 시큼한 맛, 레몬그라스 잎의 상큼함에 어우러지는 땅콩가루의 고소함, 느끼함을 잡아주는 숙주의 식감. 여행에서 같은 음식을 두 번 안 먹는 나인데, 5일 동안 팟타이를 4번 정도 먹은 듯하다.
 
방콕 노점의 팟타이2 레몬그라스, 땅콩가루, 숙주, 고춧가루, 라임. 꽤 푸짐하다
▲ 방콕 노점의 팟타이2 레몬그라스, 땅콩가루, 숙주, 고춧가루, 라임. 꽤 푸짐하다
ⓒ 김나라

관련사진보기

 
나중에 알았지만 태국 사람들도 번듯한 식당보다 노점에서 먹는 팟타이가 더 맛있다고 한단다. 태국어에서 '팟(pad)'은 '볶음', '타이(thai)'는 '태국'이라는 뜻이다. 화교 문화를 태국 문화에 녹여내려는 노력으로, 중국식 볶음 쌀국수에 태국적 요소를 더해 '태국식 볶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1940년대 피분 송크람(Phibun Songkram) 총리가 노점의 팟타이 판매를 독려했고, 태국 전역에 팟타이 취급 식당 수천 개가 생겨나며 태국 사람들의 '국민 요리'가 되었다고. 그러니 팟타이는 오히려 소박하고 단출한 게 '정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통통한 새우가 들어가고 수북한 숙주 등을 곁들여 나오는 고급 식당 스타일보다 말이다.

어쩐지. 값이 싸기도 했지만, 털털한 여행 친구 같은 느낌이라 더 좋았달까. 타국에서 모르는 이가 볶아준 쌀국수가 입속에서 춤추며 말하는 듯했다.

"뭐가 됐든 원 없이 해 보고 있네. 그거면 되지, 인생 별 거 있간?"

'한국 가정식 비건' 팟타이(?), 그래도 뭐 어떤가

한국에서 입맛이 떨어질 때도 팟타이를 즐겨 먹는다. 천 원에 사 먹던 것을 식당에서 만 원에 먹으려면 아깝기도 하여 집에서 만들곤 한다. 한국에는 레몬그라스와 타마린드 즙이 없지만 한국식 재료로 만든 팟타이도 맛있다. 레몬그라스는 부추로, 타마린드 즙은 레몬즙이나 식초, 매실청으로 대체 가능하다.

중국식 볶음국수에서 온 팟타이를 한국 가정식으로 만들면 이건 국적 불명인가? 그래도 뭐 어떤가. 저렴한 식재료로 휘리릭 볶아 먹는 친근함과 입맛을 돋우는 감칠맛은 그대로다.

새우와 달걀을 빼도 맛에 큰 영향이 없으니 채식인이 만들어 먹기에도 좋다. 그래서, 막간을 이용해 소개하는 '한국 가정식 비건 팟타이' 요리법(홍석천, 백종원 님 등의 요리법을 참고하여 만든 요리법이다).
 
팟타이 재료 새우와 달걀 없이도 맛있다. 달걀을 넣고 싶다면 부추와 숙주를 넣기 전 단계에서 재료를 팬 한 쪽으로 밀어놓고, 남은 한 쪽에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 섞으면 된다.
▲ 팟타이 재료 새우와 달걀 없이도 맛있다. 달걀을 넣고 싶다면 부추와 숙주를 넣기 전 단계에서 재료를 팬 한 쪽으로 밀어놓고, 남은 한 쪽에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 섞으면 된다.
ⓒ 김나라

관련사진보기

 
- 재료: 쌀국수 약 60g, 숙주 1컵 반, 두부 1/3모(얼렸다가 녹인 두부 추천), 양파 1/3개, 버섯 한 줌(표고버섯 제외), 부추 한 줌, 홍고추 1개, 땅콩이나 다른 견과류 분태 1/4컵, 통마늘 4개, 현미유.
*소스: 물 2큰술, 진간장 1큰술, 레몬즙 또는 식초 1큰술, 올리고당 또는 설탕 1큰술

- 만드는 법: 쌀국수를 물에 불리는 동안 부추, 양파, 고추, 버섯, 두부를 적당히 썰고 통마늘은 으깬다. 소스 재료를 섞어 둔다. 기름을 달군 프라이팬에 마늘과 고추를 넣고 강불에 볶는다. 양파와 두부, 버섯을 넣고 튀기듯 볶다가 소스를 넣는다.

투명하던 쌀국수가 하얗게 되면 건져서 물기를 빼고 프라이팬에 함께 볶는다. 면이 부드러워지면 숙주를 넣고 숨이 죽기 전까지만 볶는다. 불을 끄고 부추, 으깬 땅콩을 넣고 섞는다. 입맛에 따라 레몬즙을 추가로 뿌려 맛있게 먹는다.

 
집구석 팟타이 완성 신 맛을 좋아한다면 레몬을 많이 짜서 먹어도 맛나다. 사진의 팟타이는 땅콩가루도 듬뿍. 당근은 찬조출연.
▲ 집구석 팟타이 완성 신 맛을 좋아한다면 레몬을 많이 짜서 먹어도 맛나다. 사진의 팟타이는 땅콩가루도 듬뿍. 당근은 찬조출연.
ⓒ 김나라

관련사진보기

 
숙주와 부추의 숨을 살려두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 재료도 없다면 또 임기응변이다. 나는 숙주 대신 콩나물도 넣고, 부추가 없으면 파슬리 가루라도 팍팍 뿌리고, 땅콩이 없어 땅콩강정을 갈아 넣기도 했다. 그래도 새콤 단짠한 맛에 견과류의 고소함이 들어간다면 얼추 만족스러운 맛이 난다.

너무 막 바꾸나 싶지만, 이렇게 구멍 나면 땜질하면서, 없으면 있는 것으로 끼워 맞추면서 사는 거 아닌가. 그때 태국 여행이 끝까지 임기응변이었듯이 말이다.

비행기를 놓쳤다
 
망연자실 특가항공권은 발권이 일찍 마감되는 걸 몰랐고, 택시를 타고 오다 택시비 때문에 지상철로 갈아탔고... 원인은 많았지만 아.무.튼. 비행기는 떠났다. 그 덕분에 배웠다. 계획은 늘 계획일 뿐. 최선책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된다.
▲ 망연자실 특가항공권은 발권이 일찍 마감되는 걸 몰랐고, 택시를 타고 오다 택시비 때문에 지상철로 갈아탔고... 원인은 많았지만 아.무.튼. 비행기는 떠났다. 그 덕분에 배웠다. 계획은 늘 계획일 뿐. 최선책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된다.
ⓒ pixabay(JESHOOTS-com)

관련사진보기

 
"표를 다시 사셔야 해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일정을 뿌듯하게 마치고 공항으로 갔는데, 2분이 늦어 발권을 거부당했다. 비행기를 놓친 기분은 버스나 기차를 놓친 기분과는 성질이 달랐다.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돈이 없던 우리가 5회의 비행을 10만 원에 퉁친 특가 여행이었지만, 친구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통해 10만 원씩을 더 내고 다음 날 비행기표를 샀다. 

숙소로는 어찌어찌 갔으나, 그날 저녁 나는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있었다. 다음날 공항에 갈 차비였다. 민망함에 몸을 떨었다. '내가…?' 민폐 끼치는 걸 극도로 꺼리던 나였기에 지질함으로 메달이라도 딴 기분이었다(돈은 후에 배로 갚았다). 우울함에 절어 태국을 떠날 때 했던 생각. '하루 늦게 갈 거면 팟타이라도 한 번 더 먹을 걸.'

지금 생각은 이렇다. 사람이 살면서 비행기도 한 번 놓쳐 봐야지. 원 없이 덤벼 봤다는 생각은 포만감처럼, 살아가는 데 든든한 힘이 된다. 아, 아직 남은 '원'이 있다. 팬데믹이 물러가면 태국에 가서 그때 못 먹은 팟타이를 먹어야지. 이번에는 아예 임기응변의 맛을 기대하며 떠나리라. 그러고 보면, 여행과 인생과 요리의 핵심은 통해 있는지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의 브런치 페이지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꼭 단단해지지 않아도 좋다는 단단함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