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코로나 시대의 육아를 누군가는 기록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 막이 내릴 시대이지만 안 그래도 힘든 육아에 이 시국이 무언가로 고통을 주는지 알리고 공유하며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항상 말미에 적는 글이지만 아기를 양육하고 계시는 이 시대의 모든 부모님들께 위로와 응원 너머의 존경을 보내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기자말]
카카오 톡 캡처 안 읽은 메시지 숫자가 보인다.
▲ 카카오 톡 캡처 안 읽은 메시지 숫자가 보인다.
ⓒ 최원석

관련사진보기



아기가 태어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렇다. 휴대전화는 집에 들어갈 때 진동으로 설정하고 바로바로 울리는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는다. '급한 일이면 전화를 주시겠지'라고 생각하는 알량한 배짱도 이런 여유에 한몫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자주 울리던 단체 채팅방의 알람을 해제했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필자에게 실망하신 분들도 많았으리라. 원래라면 댓글을 실시간으로 달고 모임에는 무조건 참석하며 알림에는 바로 반응했다. '티키타카를 중시하는 원팀의 정신'으로 사람들이랑 그렇게 섞이는 것을 좋아했기에 갑자기 실종(?)한 모습에 당연히 서운했을 거다.

'왜냐고? 왜 그랬냐고?'

사람은 그렇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라는 불변의 이치처럼, 알림을 보거나 공지를 보거나 하면 사람들과 연락을 할 것 같았다. 연락을 하면 만나고 싶어질 것 같았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은 어쩔 수 없어도 나 하나 좋자고 만나는 사람들과 약속들은 줄여야 했다.

만일 나 하나를 위해 모임에 갔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아기 엄마와 채 돌도 안된 아기에게 전염시키는 것은 스스로 상상할 수도, 용서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 그래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알림을 해제하고 퇴근하면 되도록 휴대전화와 멀어지려 애썼다. 처음에는 매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컴퓨터를 썼다. 휴대전화와 그렇게 멀어졌다.

오후의 일이다. 동료들과 우르르 몰려나오다 '점심을 뭘 먹을까'하며 두리번거리는 척을 하며 한쪽 길로 새며 무리에서 자연스레 이탈하는 데 성공했다. 비로소 '메뉴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천천히 먹을 수 있다'라는 생각에 기분 좋게 걷는데, 배고픈 하이에나 앞에 불쑥 누가 나타났다.

"어이쿠 진짜 오랜만이에요. 안 본 지 꽤 됐네. 요새 왜 활동 안 하세요. 혹시 탈퇴하신 건 아니시죠?

단체 채팅방의 일원이자 지인이었다. '그냥 바빴다고, 그냥 그랬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몸을 배배 꼬면서 핑곗거리를 찾던 아까의 모습이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일 많은 지인들이 가입한 단체 채팅방에는 아기의 출산을 아는 사람이 없다. '이 시기에, 이른 출산이라 정신이 없었다'라는 핑계 이외에도 '만나지도 못할 텐데 글을 올려서 뭐 하나'라는 회의감이 커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결국 식사를 망쳤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오만 생각을 하며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문득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휴대전화에 메신저의 안 읽은 글 개수를 확인했다.

 
밴드 캡처 읽으려면 1000개의 글을 읽어야 한다.
▲ 밴드 캡처 읽으려면 1000개의 글을 읽어야 한다.
ⓒ 최원석

관련사진보기

 
밴드와 카카오톡의 알림 문구가 마치 '1500개의 메시지가 고객님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처럼 읽혔다. 

분명 지난번에 여러 번 정리했었는데 그 후 시간 내서 읽어야지 하며 미뤄 두며 넘긴 밴드 글이 1000여 개, 카카오톡 글이 500여 개에 달했다. 그 숫자를 보고 있으려니 짜증과 원통함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보지 않고 넘기면 '나중에 사람들과 만났을 때, 대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읽지 않은 글은 없었다. 이름 모를 지루한 프랑스 영화를 끝까지 볼 때처럼, 의지의 마음으로 글들을 다 읽었다. 다만 사람들에게 관련된 연락을 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읽으면서 연락을 하고 싶어 심장이 요동치고 몸이 달아오르며 용이 승천하듯 날고 화가 잔뜩 난 범이 내려온 것은 안 비밀(?)이다.

정치 관련한 모임, 음식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모임, 자영업자들의 모임...

열거하다 보니 많다. 병이 또 도지는 듯하다. 문득 육아를 하는 아빠 모임이 있겠지라는 아찔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는 선인들의 말씀. 참 틀린 말이 아니다. 나만 봐도 그렇다.

이 시대, 알림을 끄고 얻은 것(?)과 잃은 것

누가 부고를 올리면 쏜살같이 달려가서 조의를 표하고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얼마 전 필자의 할머니의 장례식 때, 나는 부고를 아무 데도 올리지 않았다. 너무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한몫하긴 했지만 결국에는 올리지 않았다. 올릴 수도 없었다. 많이 망설이다 시간이 흘렀다. 이 일로 인해 한 발 더 단체 채팅방과 메신저에서 멀어졌다.

아기의 출산과 100일을 맞이했을 때, 한정적이고 단조로운 축하를 받을 때는 솔직히 많이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코로나 이전 필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아기들의 출산, 100일이나 돌 등에 선물과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내 아이에게 다른 아기들에게 준 선물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축하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밴드나 단체 카카오톡에 '우리 집에서 조촐하게 100일을 준비합니다'라고 궁색하게 떠들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조용하다가 기념일이라고 나타나 그냥 자기 일상을 툭, 하고 던지는 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돌아올 반응도 싫었다. 그렇게 그냥 또 지나갔다. 물론 축하를 해 주시고 진심으로 아기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 줄 지인들이 계실 테다. 하지만 그 지인들 찾자고 수천 명에 달하는 밴드나 메신저에 글을 올릴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러다 지금 이 사태까지 온 것이다.

퇴근길,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부를 확인하고 근황을 물어보는 형식적인 인사가 오갔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오늘의 이런 푸념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지인이 오랜 침묵 후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딸은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귀가 너무 예민해져서 집에만 가면 군대에서 배운 포복을 복습하고 있어요. 나도 알림 같은 거 끈 지 오래됐어요. 그냥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날 때까지는 포기하려고요."

전화를 끊고서 '아빠들의 입장에서 사회생활 이외의 최소한의 만남조차 사치인 걸까?'라는 생각에 깊이 빠졌다. 그렇다. 지인의 마음도 나와 같았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말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더 조심하고 희생하려는 것이다.

주위에 '연락 안 되는, 연락 안 하는 아기 아빠들'이 있으면 이해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격려와 위로의 전화'를 한 통 부탁드린다. 

알람을 끄고 집에서의 오랜 생활에 한참 예민해진 아기를 위해 포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인을 포함한 아빠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그럼에도 오늘, 아기의 발달을 위해 각자의 휴대전화를 던지고, 아기를 양육하고 계실 이 시대 모든 부모님들께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따끈따끈하고 반짝이는 존경도 함께 보낸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에 나오는 말을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

'어린이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가장 헌신적으로 협조한 집단이다.'

'이 시대의 어린이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어른들은 알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에 브런치와 블로그에 올라갈 예정입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랫동안 자영업자님들을 컨설팅하며 요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는 콘텐츠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TV에 출연할 정도로 특별한 아기 필립이를 '밀레니얼 라테 파파'를 지향하며 '감성적인 얼리어답터 엄마'와 하필 이 미칠 코로나 시대에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와 관련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