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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잘 지냈어?"
"잘 지내는디, 사는 것이 귀찮어 죽겄어. 밥을 한 열흘만 굶으면 죽는다는디."

"요즘 속상한 일 있었어?"
"그냥 저냥 살어. 다섯을 땅에 놓기도 아까워하며 키웠는디. 같이 살자는 자식이 하나도 없어야."
"......"

"이것들이 나를 요양원에 넣어놓고 만고강산이여"
"......"


가늘고 퉁명한 목소리가 기운 없이 툭! 떨어졌다. 평소 안 하던 말까지 하는 엄마의 날씨는 먹구름. 심사가 많이 뒤틀린 말투까지 나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자칫하면 삼천포로 빠져서 서로 맘 상할 수 있을 것 같아 말을 아꼈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강도 높은 말을 연타로 던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하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같이 살고 싶어? 불편해서 싫다고 해놓고는."

옹색한 답변을 하며 부드럽게 엄마의 기분을 살폈다. 엄마도 잠시 말이 없었다. 요양원에서 5년째. 코로나로 얼굴 본 지가 1년 반을 넘어서는 자식도 있고, 가까이 사는 자식도 달랑 15분 면회 후, 바람같이 가버리니 살맛이 날 리 없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연습도 지루했을 터.

자식들 보고 싶은 96세 엄마 마음
 
 요양병원·시설 입소자나 면회객 중 어느 한쪽이라도 코로나 19 예방접종 완료자(2차 접종 후 2주경과)인 경우 대면 면회가 가능해진 1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경희재활요양병원에서 아내 이모씨(89세)와 입소자인 남편 김모씨(88세)가 대면 면회에서 두 손을 맞잡고 있다.
 요양병원·시설 입소자나 면회객 중 어느 한쪽이라도 코로나 19 예방접종 완료자(2차 접종 후 2주경과)인 경우 대면 면회가 가능해진 6월 1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경희재활요양병원에서 아내 이모씨(89세)와 입소자인 남편 김모씨(88세)가 대면 면회에서 두 손을 맞잡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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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엄마의 목소리에 회한이 가득했다. 자식들 보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오르다 때마침 걸려온 전화에 섭섭함이 쏟아졌음을 이내 알아차렸다.

막내딸인 나는 결혼을 해서도 친정에서 걸을 수 있는 거리에 살았다. 출가했다기보다 분가한 기분이 들 만큼 엄마는 모든 일에 관여하려 했다. "딸 시집 보낸 거 맞아?"

적당히 숨기고 싶은 일도 어림짐작 알아차렸다. 엄마는 집에서도 내 동선을 그렸고, 나는 부담스러워 했다. 오십 중반에 혼자되어 겪었을 엄마의 외로움에 대해 이해 못했던 때였다.

아이들 셋 육아도 엄마와 함께 했다. 손주도 사랑스러웠겠지만 딸의 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거다. 아이들 때문에 속상해하면 손주 편보다는 "엄마 힘들게 왜 그러냐"며 내 대신 나무랐다. 막내를 낳고 이사한 곳은 엄마네 집 길 건너 아파트였다. 엄마의 출근은 더 잦아졌고, 잠자는 것만 빼면 한 집에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엄마, 엄마는 어떻게 할머니 사이즈를 알아?" 딸이 신기한 듯 물었다. 내가 입어보고 작은 듯하면 그것이 엄마에게 맞는 사이즈였고, 신발도 마찬가지로 신어보면 알 수 있었다. 숫자로 사이즈를 찾는 것보다 그게 더 정확했다. 할머니 물건을 사러 동행한 딸이 엄마의 구매 방법을 보고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오래 같이 있으면 저절로 알게 돼."

올해 96세인 엄마는 대화가 통할 만큼 청력과 기억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릎 때문에 휠체어에 의지하지만 웬만한 것은 혼자 해결했다. 요양원에 들어간 지 몇 달 만에 기저귀를 빼고 화장실을 사용하게 된 일은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었다. 꾸준한 연습으로 몸이 회복되었던 일은 이십여 년 전에도 있었다.

척추수술로 입·퇴원을 반복할 즈음, 엄마는 단 몇 미터 걷는 것도 힘들어 했다.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을 돌려면 대여섯 번도 넘게 쉬어야 가능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마침내 한 바퀴를 쉬지 않고 걷게 되었을 때, 우리 자녀들은 엄마의 의지에 박수를 보냈다. 몸 관리만큼은 엄마에게 배워야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까 내가 한 말은 싹 내버려라"

반복하는 레퍼토리지만 오늘처럼 우울한 엄마에겐 상장과도 같은 격려와 사랑이 약이 된다. 엄마 덕으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 백신 맞았으니 곧 외출 외박도 가능할 거다, 치매 안 걸리고 이렇게 통화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일도 오늘 만큼만 살면 된다, 정신 줄 놓으면 안 된다, 나도 엄마처럼 늙어갈 거다 등등.

엄마는 설득 반, 응원 반 섞어진 잔소리를 고분고분 들으셨다. 모르는 바 아닐 테지만 자식이 그리웠던 엄마에게는 무슨 말이든 좋은 모양이었다. 엄마 푸념도 듣고, 오래 살까봐 걱정하는 마음도 이해되었다. 통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엄마의 목소리가 말랑말랑하게 전해져왔다.

"야야, 아까 내가 한 말은 싹 내버려라. 감사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닌디."

애써 마음을 돌렸다 해도, 자식을 향한 갈증이 해소될 리 없었다. 열 마디 말보다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웃고 떠드는 것만 하랴. 엄마의 먹구름이 걷히는 듯해서 한숨 돌리지만, 미안하고 죄송해서 가슴이 짠했다.

엄마는 며칠 전 백신 2차까지 접종을 마쳤다. 부작용 없이 거뜬하게 넘어갔다며 자랑도 했다.

"엄마, 먹고 싶은 거 다 적어 놔. 외박 나와서 하나씩하나씩 다 사먹게. 조금만 힘내셔." 
"알겄어. 그렇게 헐테니 너도 어서 밥 먹고 쉬어라."

 

덧붙이는 글 | 블로그 및 브런치에 개재할 예정입니다.


태그:#엄마,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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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육십부터.. 올해 한살이 된 주부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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