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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여순사건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습니다. 지금껏 여덟 차례나 발의되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는데 이번에는 여야가 거의 만장일치로 법안 제정에 찬성하였습니다. 비극적인 여순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의 길이 무려 73년 만에 열린 것입니다. 이번 특별법 제정에 대한 여수와 순천 등 피해 지역민들의 기대감이 상당합니다.
 
저는 여순사건 진실규명은 과거 정부가 왜곡·날조한 여순사건에 대한 기억을 바로 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여순사건도 5.18 광주민중항쟁 못지않게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거짓 선동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공공연한 기만행위는 소름끼칠 지경입니다. 여순사건으로 1만 5천 명 이상의 희생자가 생겨난 데에는 이승만 정권의 비뚤어진 상황 인식과 흑백논리, 거짓말이 크게 한 몫 한 것으로 보입니다.
 
1948년 11월 5일자 평화신문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 담화문
▲ 평화신문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 담화문 1948년 11월 5일자 평화신문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 담화문
ⓒ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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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이승만 대통령은 여순사건이 발생한 지 17일 지난 1948년 11월 5일 담화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이 담화에서 '공산분자들'에 의해 "여수, 순천 등지에서 통곡할만한 동족상잔이 발생하였다"고 말합니다. 이어 "그중에 제일 놀랍고 참혹한 것은 어린 아이들이 앞잡이가 되어 총과 다른 군기(軍器)를 가지고 살인충천(殺人衝天)"하고 "여학생들이 심악(甚惡: 몹시 악함)하게 한 것과 살해 파괴를 위주하고 사생(死生)을 모르는 듯 덤비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뒤 "정부는...각 학교와 정부기관의 모든 지도자 이하로 남녀아동까지라도 일제히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고 조직을 엄밀히 해서 반역적 사상이 만연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합니다. 이어 "앞으로 어떠한 법령이 혹 발표되더라도 전민중이 절대 복종해서 이런 만행이 다시는 없도록 방비해야 될 것"이라 덧붙입니다(1948. 1. 5. 평화일보).
 
마산일보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 담화문(1960. 4. 16)
▲ 이승만 대통령 담화문 마산일보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 담화문(1960. 4. 16)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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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5일,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 시위가 사흘간이나 이어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또 하나의 담화문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이 담화에서 "몰지각한 사람들이 공산당의 선동에 속아 난동을 하다가 이러한 불상사를 만들어 놓았다"며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을러멥니다. 내용에는 '여순사건' 관련 언급도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과거 전남 여수에서 공산당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많이 죽였을 때에 외국기자들이 많이 가서 조사하였다"고 말합니다.
 
이어 "조그만 아이들이 일어나서 수류탄을 가지고 저의 부모들에게까지 던지는 이런 불상사는 공산당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그 외국 기자들이 자신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공산당이라는 것은 부모도 어른도 아이도 모르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오히려 잘하는 줄로 알고 있는 것"이라며, 마산 시위는 "폭동을 일으켜서 결국 공산당에게 좋은 기회를 주려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 말합니다(1960. 4. 15. 마산일보).
 
이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 시민들을 "공산분자에게 속은 몰지각한 사람들"이라 공공연히 비난하고 여순사건 관련 사실조차 날조한 것입니다. 물론 마산시위는 공산당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또한 여순사건 발생은 공산당의 지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군 14연대가 제주 4.3 학살 진압을 거부하는 '항명'을 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어린아이나 여학생들이 총기를 들고 살해 파괴를 일삼은 일은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제 부모에게 수류탄을 던진 사건도 전혀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외국 기자들이 조사해 보고 자신에게 전하였다고 말하지만 외국 언론에 해당 기사가 실린 적은 없습니다. 이 대통령은 외국 기자들에게 여순사건 상황을 들었다는데 실제로 현지 조사를 한 외국 기자들이 그를 만나 여순사건 상황을 말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여순사건을 깊이 연구한 김득중 박사는 "여수에서 어린아이가 자기의 부모에게 수류탄을 던졌다는 사실이 언급된 것은 이승만의 이 담화가 처음인데, 이렇게 이승만은 자기 입맛에 맞는 역사를 창조했다"고 썼습니다(<빨갱이의 탄생>, 215쪽). 이승만 대통령은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을 혼자 상상해 실제로 여수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인 것처럼 담화문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들은 이 같은 담화를 검증도 없이 '받아쓰기' 하였습니다.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난 뒤에도 반성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거짓 선동과 역사 날조, 언론의 검증 없는 받아쓰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이고 불행하게 만들었을지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여순사건 관련 잘못 알려진 역사적 진실을 낱낱이 밝히고 바로 잡는 꾸준한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평화일보>, <마산일보>, 김득중 저 <빨갱이의 탄생> (2019, 선인)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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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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