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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이자 예술가로서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설계해주는 뮤지엄 건축가는 갈수록 심화하는 대중, 사회, 도시와의 소통 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당대 뮤지엄 건축가가 설계한 뮤지엄을 살펴보는 것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소통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관석 경희대 교수는 엔지니어로서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 현장을 경험한 후 건축 설계를 하고 싶어 잘 다니던 대기업 건설회사를 그만뒀다. 그렇게 떠난 유학길에서 파리벨빌건축대학 교수이자 뛰어난 건축가 앙리 시리아니를 만나 건축에 눈을 떴고 르코르뷔지에를 알게 됐다.

건축역사와 이론에도 관심이 많아 파리1대학교 예술사학 박사과정에서 근현대 건축사와 현대 뮤지엄 건축을 연구했다. 그 후 현대 뮤지엄 건축과 르코르뷔지에 건축을 주제로 한 책들과 인연을 맺어온 그가 이번에 근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들이 계획한 뮤지엄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 <뮤지엄, 공간의 탐구>를 출간했다.

필자는 <뮤지엄, 공간의 탐구>의 편집자이다. 본 책을 편집하면서 위대한 근현대 건축가들이 설계한 뮤지엄의 건축 철학에 대해 더 듣고 싶었다. 지난 7월 2일, 이관석 교수를 서면 인터뷰했다.
 
『뮤지엄, 공간의 탐구』 / 이관석 지음 /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 『뮤지엄, 공간의 탐구』 『뮤지엄, 공간의 탐구』 / 이관석 지음 /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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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뮤지엄은 별도의 예술작품으로서 방문자와 공간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옛 유물을 담는 전시공간'이라는 배경 역할만 해온 과거의 보수적인 뮤지엄 건축계를 근현대 건축가들이 변화시키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독 뮤지엄 건축 유형이 다른 건축 유형에 비해 발전이 뒤처졌던 이유지요. 근대건축이 만개했던 1930년대까지도 뮤지엄 건축은 19세기 건축 특성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예술작품을 위한 전당'이라는 고루한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앞만 보고 내닫기도 바빴던 근대주의자들에게 지난 시대의 산물을 애지중지하며 수집하고 보여주는 뮤지엄은 게으르고 시대착오적인 낭비로 여겨졌었죠.

그래서 뮤지엄 건축은 섣불리 접근하기 힘든 대상이었고, 결국 이 책에서 보여드리는 것처럼 근대건축의 거장들이 손수 매스를 들고 과감한 수술을 가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간단한 치료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으니까요."

- 이 책에 나오는 근현대 건축가 중 한 사람인 앙리 시리아니 교수님 밑에서 수학했다고 들었는데요. 앙리 시리아니 교수님과 관련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요?
"앙리 시리아니 교수님 강의를 듣고 졸업설계 지도를 받으며 몇 개월간 그분 설계사무실에서 연구 자료를 찾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어떤 에피소드를 말씀드려야 하나 망설여질 만큼 여러 사연이 있지요. 공적인 에피소드 하나만 말씀드리면, 제가 가까이 지켜본 5년 동안 그는 전 세계에서 부르는 곳이 많은 유명한 건축가였음에도 단 한 번도 강의를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2년간 살았던 리비아를 미국이 공습한 날 선생님은 학교에 오셨지만 한 시간가량 눈과 손을 비비며 괴로워하다가 '건축은 평화의 행위인데 오늘 같은 날 건축을 얘기하기 너무 힘들다. 이해해 달라'라고 양해를 구하고 학교를 떠나셨죠. 평소에는 90~100명이 한 학년에 재학하고 한 학년에 네댓 개의 설계 스튜디오가 열리는 학교에서 3학년 때는 혼자 70명 정도의 학생을 데리고, 피곤을 이겨내고자 각설탕을 수북이 쌓아놓고 하나씩 먹으며 학교 문을 닫을 때까지 수업을 진행했던 그분께는 이례적인 날이었지요.

나중에 제 졸업작품 발표 후 커피를 갖다 드리며 '설탕을 넣어드릴까요?' 물었더니 '당분이라면 충분히 섭취했네'라고 말씀하셔서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분은 언론에 대고 '나는 건축가이기 이전에 교육자다'라고 말씀하셨죠. 잘 나가는 교수 겸 건축가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는 말입니다.

자신의 박사논문 자료 수집을 위해 도와줄 수 있느냐는 파리1대학 교수님의 편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Tout mon accord)'는 회신과 함께, 아내와 직원 한 명 밖에 없고 외부인의 출입을 극도로 막는 설계사무실에서 필요한 모든 자료를 마음대로 찾아 복사해 가라고 몇 달간 맞아주셨죠. 교육에 대한 이런 열정은 저의 현재 모습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 르코르뷔지에에 정통한 국내 권위자로 교수님이 최고시라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르코르뷔지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프랑스 건축학교에서 현존 건축가 중 르코르뷔지에의 건축과 그 정신에 가장 충실한 시리아니 선생님으로부터 건축설계를 배운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파리에서 공부하면서 유럽에 있는 르코르뷔지에의 작품 대부분을 답사해 그 가치를 몸으로도 익혔습니다.

귀국해서는 어느 출판사에서 르코르뷔지에가 쓴 책 중 가장 중요하다고 인정받는 <건축을 향하여>의 번역을 의뢰받으면서 그 후 몇 권의 중요한 책들을 더 번역하게 됐고, 그 외 구하기 힘든 그의 책들도 찾아 읽게 됐죠. 그러면서 지금까지 르코르뷔지에에 대해 우리가 몰랐거나 잘못 알았던 여러 면을 발견하게 되고 관련 논문과 책들을 쓰다 보니 그런 평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 일본의 정신과 자연관을 기반으로 모더니즘 정신을 수정 계승한 건축가로 인정받는 안도 다다오는 역대 건축가 중 뮤지엄을 가장 많이 설계했는데요, 그의 뮤지엄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가 있을까요?
"무엇보다 그의 작품이 건축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잘생겼다,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지요. 우리 안에서 진동하는 공명판이 함께 울리는 것이죠. 서로 다른 생각으로 계획됐어도 좋은 건물은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안도의 건축은 일본의 정신과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도, 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공감이 되기 때문에 전 세계에 많이 지어진 것입니다. 요즘은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으로 잘 먹혀요. 안도 건축의 단순 기하학성, 빛과 그림자의 유희, 노출콘크리트라는 재료의 원시성과 일관성 등은 현대인들의 세련된 기호에 잘 들어맞습니다. 진정한 재료와 순수한 기하학, 자연이 통합되어 건축이 힘을 얻은 것이죠."

- 애플의 슬로건 "Think different" 광고에 같이 얼굴이 실릴 정도로 현대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상식을 파괴한 실험정신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독창성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게리가 받은 교육과 주요 활동 무대인 로스앤젤레스의 독특한 도시 환경, 예술과 현대 철학에의 관심 등이 어우러진 결과지요. 인종적인 다원주의와 도시적 무상성이 불러온 끊임없는 변화 덕분에 로스앤젤레스가 규준에서 자유로워진 비규준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게리가 영구한 탈바꿈의 상태에서 어떠한 고정된 기준이 없는 다양성의 도시에 살면서 주변 환경의 틀 속에 갇히지 않고 유형학적 범주를 넘어서서 한시성, 무상성을 표출하게 됐다는 모네오의 지적은 게리도 인정하는, 상당히 정확한 진단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바탕에 게리가 활발하게 작업하던 시기에 유행한 건축에서의 해체주의 정신에 게리가 동조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뮤지엄, 공간의 탐구』 저자 이관석 교수
▲ 『뮤지엄, 공간의 탐구』 저자 이관석 교수 『뮤지엄, 공간의 탐구』 저자 이관석 교수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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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건축의 방향과 미래에 대해 조언을 한마디 해주신다면?
"우리나라 건축도 최근 들어 상당한 발전을 이뤄가고 있지만, 건축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들과 건축의 중요성에 대한 미흡한 사회적 인식은 개선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건축에서 '중요한' 것과 '좋은' 것은 다릅니다. 근대건축 거장들의 뮤지엄 제안이 적잖은 갈등을 일으켰고 어렵게 수용된 것은 그들의 작품들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전과 뭔가 다른 근본적인 것들을 두드린 것입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자신의 건축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달라도 정수는 통하는 법이므로 각자의 정수를 향해 불굴의 의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앞에서 안도 다다오를 얘기했지만, 우리 건축도 세계적이 되려면 이런 건축 자체의 수준 고양과 함께 한국적인 것을 부단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도 서양건축의 정수를 연구하지만, 우리 건축도 그것에 조금도 꿀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있는 고건축물들에서 뛰어난 서양건축 못지않은 높은 건축적 질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은 과거의 답습이 아닌 혁신적인 것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태로서 미래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가장 믿음직한 지침입니다. 과거에 얽매인 고착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화되는 변화입니다. 그 속에 내재된 정신적 가치를 든든한 기반으로 삼고 시대기술을 반영해 발전된 건축을 해야 합니다."

뮤지엄, 공간의 탐구 - 근현대 건축가 11인의 뮤지엄과 건축 정신

이관석 (지은이),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2021)


태그:#뮤지엄공간의탐구, #이관석경희대교수, #르코르뷔지에전문가, #근현대건축가, #프랭크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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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화, 맛집 탐방 등 문화를 사랑하며, 소소한 삶에서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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