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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여름이다. 자주 가는 뒷산 산책으로 나날이 녹음 짙어지는 여름 산의 정취를 즐긴 지는 한참 되었다. 하지만, 도시의 여름살이를 정작 실감했던 때는 날이 더워져 하루 종일 창문을 열고 지내면서이다. 시원한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들이기 위해 집의 전면, 후면 창문을 열자, 바깥의 잡다한 소리들이 바람과 함께 날아들어 속을 시끄럽게 했다. 
 
    창문을 열어놓자 본격적으로 실감한 도시의 여름살이
  창문을 열어놓자 본격적으로 실감한 도시의 여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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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쌓이는 만큼 신경이 예민해졌다. 창문을 닫고 지낼 때는 거슬리지 않았거나, 잘 인지하지 못했던 소리들이다. 막무가내로 들리는 그 소리들을 피할 곳이 없음을 절실히 느끼며 '아, 정말 여름살이가 시작되었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이다. 물론,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모두 소음인 것은 아니다. 이웃들의 일상이 묻어나는 정겨운 소리들도 자주 들린다. 

출근하는 엄마에게 "엄마, 안녕. 잘 갔다 와"라고 베란다에서 아쉬워하며 인사하는 대여섯 살 아이의 말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갓난쟁이의 여린 울음소리도 들린다. 뉘 집 할아버지인지 집이라도 날려 보낼 것 같은 재채기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어느 집 엄마의 아이들 꾸짖는 소리는, 아래층 어디선가 올라오는 고운 피아노 연주 소리나 마구잡이로 내려치는 '탕탕탕' 실로폰 소리에 덧입혀지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 밖 이웃들의 소리도 열린 베란다 창을 통해 들어온다. 길 건너 빌라 할아버지가 고물상에 가져갈 스테인리스 솥 같은 물건들을 망치로 뚜드락거리는 소리는 대개 이른 아침부터 나곤 한다. 참 부지런한 분이다. 우리 동네만의 특별한 소리도 있다. 주중 매일 오전 10시와 11시 사이에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는 민중가요 '단결투쟁가' 소리이다. 

철거민 차량의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인데, 협상이 잘 안 되었는지 거의 다 지어진 재건축 아파트 단지 주위를 늘 한 바퀴 돈다. 늦잠 자는 아들 녀석은 불만이지만, 나는 은근히 따라 부르며 오늘 하루도 잘 보내자고 괜한 전의를 다지곤 한다. 사람들 모여사는 곳이니 이런저런 소리들이 자연스럽고, 그렇게 함께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들이 있다. 바로 온갖 기계 소리들이다. 이사를 나가고 들어올 때 사다리차의 철커덩, 철커덩 오르내리는 소리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요즘 가장 참기 힘든 소리는 바로 옆 초등학교에서 들리는 큰 굉음의 에어 블로워 소리이다. 에어 블로워는 굵은 호스에서 나오는 강력한 바람으로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들이나 흙을 한쪽으로 이동시키는 기구이다. 편리한 줄은 나도 알지만, 조용한 아침 공기를 단번에 찢어놓는 그 엔진 소리는 정말 듣고 있기가 너무 힘들다. 

아마 에어 블로워 때문에 힘든 때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년 전 미국에서 잠시 살 때 특정 시간이 되면 아파트 단지 내 도로를 청소하는 에어 블로워 소리가 났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창문을 다 닫고, TV 볼륨을 아무리 높여도 잘 들리지 않았고, 가족들끼리 대화는커녕 이어폰으로 다른 소리를 들어도 그 엔진 소리는 어떻게든 고막을 침범해 들어왔다.

미국을 떠나며 이제 그 소리와는 영원히 이별이지 싶어 내심 반가웠는데, 바로 우리 동네에서 그 요란한 물건을 다시 만날 줄이야. 굉음 때문에 민원을 넣을까 싶다가도 누군가에게 비질하는 고생을 떠넘기게 될까 봐 못하겠다. 에어 블로워의 엔진 소리 저감장치나 어서 개발되기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접한 주택가의 건물 공사장에서도 많은 소음들이 수시로 난다. 패널이나 타일을 자르는 톱니바퀴 칼날의 '지... 잉' 소리라든가, 무게감 있는 철제봉이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챙, 챙' 소리, 콘크리트 바닥을 깨느라 연거푸 나는 둔탁한 '쿵, 쿵, 쿵, 쿵' 소리들도 있다. 거기다 아파트 옆 간선도로를 이용해 출근하는 차들의 경적소리까지 더하면 정말 온전한 정신을 챙기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 뚜렷하게 그 빈도가 늘었다고 느껴지는 소리도 있다. 119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이다. 분명 2, 3년 전만 해도 대로변에서나 가끔 듣던 소리였는데, 요즘은 하루 두세 번은 평균이고, 많을 때는 세네 번까지 우리 집에서 들린다. 코로나 때문에 위급상황이 많아져 그런가 혼자 근거 없는 추측을 해 본다.
 
    모든 소음을 일시에 멈추게 만드는 시원한 여름 '비'
  모든 소음을 일시에 멈추게 만드는 시원한 여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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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기계 소음에 지쳐 인내심을 잃어갈 때쯤 가끔 운이 좋으면, 이 모든 소리를 단번에 멈춰주는 소리가 나타난다. 바로 세차게 내리는 여름 '비' 소리이다. 천둥, 번개까지 동반할 때면, 오직 하늘과 땅 사이에 '비' 소리만 그득해진다. 한껏 요란했던 소음들은 사라지고, 부글거렸던 내 속은 차분히 가라앉혀 주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비 내리는 바깥을 잠시 응시하며 나도 정신을 다시 챙겨 본다. 

창문을 열어 놓고서야 참 많은 소리들 가운데서 살고 있구나 싶다. 천만이 사는 서울이니 고요 속에 하루를 지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애당초 과욕인지도 모른다. 문득 어린 시절에 들었던 여러 가지 여름 소리들이 간절히 다시 듣고 싶어진다. 

저녁 무렵만 되면 우렁차게 울어대던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 '솨~' 거리며 나뭇가지 이리저리 흔들어대던 뒷산의 바람소리, 소나기 빗물이 기와지붕 처마 끝에 맺혀 댓돌에 '똑똑똑똑' 부지런히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들이 그립다. 열린 창문에 턱 괴고 서서 무념무상으로 그런 소리들과 노을 지는 저녁 풍경을 눈에 담던 그때가 그리운 것도 같다. 

다행히 우리 동네에도 자연의 소리들이 있긴 하다. 소음 없는 조용한 이른 아침, 뒷산에서 고즈넉이 들리는 멧비둘기나 뻐꾸기, 박새, 까치 울음소리가 그것이다. 가끔 저녁나절 들리는 소쩍새 소리도 운치가 좋다. 번잡한 도시의 아파트 살이임에도 잠시나마 깊은 산중의 산사에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건 모두 그 새소리들 덕분이다. 

서울살이에 잘 적응해 왔다 생각했는데, 창문 넘어 들어오는 온갖 기계 소음들과 씨름하다 보니 문득 이사 생각이 난다. 조용한 교외에 마당 있는 조그만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는 것은 어떨지, 진지하게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올해 여름살이가 내게 주는 물음이다. 날이 선선해져 창문 닫고 살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잊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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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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