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4 20:48최종 업데이트 21.07.04 20:48
  • 본문듣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권력기관 개혁 과정에서 윤석열 현상이 돌출했다. 검찰·경찰·국가정보원 같은 권력기관들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보수·수구세력의 스타로 떠오른 윤석열을 두고 일부 언론은 흥미 위주의 보도들을 내기도 하지만, 이 현상은 상당히 무서운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 현상을 낳은 근저에는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반작용이 자리하고 있다. 권력기관의 통제와 억압을 막으려는 국민적 열망에 대한 반작용이 이 현상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다.


2018년에 열린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보다 권력기관 개혁에 훨씬 강한 저항이 일어났다. 남북 정상이 한 해에 세 번이나 만나는 것은 냉전 수구세력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일이다. 이에 대한 저항보다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저항이 훨씬 강했다는 것은 한반도 평화 조성 못지않게 대중적 자유의 확산도 수구·보수세력이 견제하는 대상임을 보여준다.

최근의 개혁으로 권력기관들은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과거로 돌아가려는 게 권력기관들이다. 

음습하고 무서운 곳
 

평화박물관 입구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서울 구로구 온수동의 평화박물관(스페이스 99)에서 8월 11일까지 진행되는 '무색사회: 중앙정보부 60' 전시회에 나온 작품들 중에 주용성 작가의 '석관동 중앙정보부'가 있다. 1962년에 중앙정보부 본청이 들어선 석관동 중앙정보부 터는 서울지하철 6호선 상월곡역·돌곶이역과 1호선 신이문역·외대앞역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주변은 본래 서글픈 곳이었다. 이곳에는 장희빈과 숙종의 아들로서 1720년에 32세 나이로 왕이 됐다가 4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경종의 무덤이 있다. 경종과 그 어머니 둘 다 기득권 세력의 압박을 받다가 불우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랬던 이곳이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음습하고 무서운 곳이 되었다. 이곳 청사의 비좁은 창문은 여기서 취급된 정보가 어떤 것들이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정보화'라는 말에서는 개방성이나 역동성이 느껴지지만, 중앙'정보'부에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주용성 작가의 사진 작품들은 '정보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앙정보부의 부정적인 면들을 드러낸다. 전시회를 주관한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이 배포한 안내 팸플릿은 '석관동 중앙정보부'를 이렇게 해설한다.
 
연행자들이 들어가는 건물의 뒷문, 몇 층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든 나선형 계단, 복도를 따라 마주보는 방의 어긋난 출입문, 약간의 빛만 허락하는 극단적인 좁은 창, 조도 장치. 테이블의 위치 등 정교하게 계산한 건축물의 주도면밀함은 폭력의 다른 얼굴이다. 
 

주용성 작가의 ‘석관동 중앙정보부.’ ⓒ 김종성

 

‘석관동 중앙정보부.’ ⓒ 김종성

 
양복들 사이 망령과도 같은 박정희

그런 음습한 데서 '대국민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그 폭력은 단순히 육체만 가격하는 게 아니라 정신과 영혼마저 타격하는 것이었다. 육체를 가두는 감옥의 기능에 더해 정신을 감금하는 또 다른 기능까지 겸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공안사건 중 하나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의 피해자 중에 1948년 생인 이철 전 국회의원이 있다. 그는 <기억과 전망> 2003년 가을호에 기고한 '그때 그 자리: 남산 중앙정보부-그 암흑의 현장'에서 중앙정보부 남산 청사에서 받은 고문을 육체적 고통 그 이상의 것으로 회고했다.

조사받는 도중에 그는 수사관으로부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슬프고 기가 막힌 전갈을 받았다. 그런데 그 부고는 수사 기법의 일환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그는 심한 아픔을 겪었다.
 
이들은 나의 정신적인 기를 꺾고자 아버지의 거짓 죽음을 알리기도 했다. 초반에 나의 기를 꺾어 순순히 자백을 받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술책이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터무니없는 거짓이었음을 알았을 때 나는 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오히려 신체적으로 가해지는 고문보다 더 심한 치욕감이었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자식에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거짓말까지 거침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그들은 더없이 야비하고 비인간적이었다.
 
그런 중앙정보부가 지배했던 한국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무색사회: 중앙정보부 60'전의 노원희 작가는 '말의 시작', '거리벽화 연습1-심리전의 심리', '출몰 무대' 같은 작품들로 표현했다.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출몰 무대'에 관해 위 팸플릿은 이렇게 해설한다.
 
그림에서 배경인 연극 무대는 덩그렇게 남아 있고 사람이 없는 거대한 양복들이 무대를 채우고 있다. 그 양복들 사이에서 우리는 망령과도 같은 박정희의 모습을 어둠 속에서 얼핏 마주친다. (입과 얼굴 없는 양복 셋으로 인해) 소리가 제거된 것처럼 보이는 연극 무대에서 우리는 권력에 대해 어떤 소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노원희 작가의 ‘말의 시작.’ ⓒ 김종성

 

노원희 작가의 ‘거리벽화 연습1-심리전의 심리.’ ⓒ 김종성

 

노원희 작가의 ‘출몰무대.’ ⓒ 김종성

 
국민들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멍들게 하면서 독재권력에 봉사했던 중앙정보부는 오늘날 국정원으로 바뀌었고, 이 정보기관의 국내 수사 및 정치개입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졌다.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이런 제도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정보와 공권력을 가진 기관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다시 힘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권용주 작가의 ‘우리는 We are···.' ⓒ 김종성

  
보수정권 정보부의 어두운 이미지

그런 위험을 막으려고 권력기관에 대해 항상 깨어 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품이 권용주 작가의 '우리는 We are···' 다. 돌비석 모양으로 된 이 작품은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의 부훈을 담고 있다. 

관람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 작품을 보고 중앙정보부 부훈의 변천사를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박정희 정권 때 나온 이 부훈은 김대중 정권 때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뀌었다가 이명박 정권 때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바뀌고, 박근혜 정권 때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바뀌었다. 이를 근거로 팸플릿은 이런 해설을 내놓는다.
 
작가는 중앙정보부를 만든 보수파의 정권이 오히려 원훈에서 '음지', '무명', '소리 없는'과 같은 부정적인 면을 드러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원훈의 변천사를 보면, '음지'라는 단어를 김대중 정권 당시 '양지'로 돌려놨다면, 이명박 정권에서 '무명'이라는 음지로 다시 되돌리는 것이다.
 
'무명의 헌신'과 '소리 없는 헌신'은 그 자체로는 좋은 말이지만, '무명'이나 '소리 없는' 같은 활달하지 않은 이미지는 '음지에서 일하고'와 통하는 대목이 있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역대 보수정권하의 정보기관들이 어두운 이미지를 띤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해석이다.

보수정권하에서는 부훈 혹은 원훈만 바뀐 게 아니라 정보기관의 부정적 활동도 상대적으로 더 많아졌다.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의 감시를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권력기관 개혁 도중에 윤석열 현상이 돌출했다는 사실은 권력기관 개혁을 원치 않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음을 웅변한다.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만이 검찰·경찰·국정원 같은 권력기관들의 과거 회귀를 막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