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3 07:14최종 업데이트 21.07.13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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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앞으로 우리가 2년 밖에 살지 못할 거래."

지난달 어느 늦은 밤 내게 도착한 문자의 내용이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종류와 상관없이 코로나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은 앞으로 길게 살아봐야 고작 2년이란 내용이었다. 출처는 '어느' 노벨화학상을 받은 사람이란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나 빼고 유일하게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보낸 문자였다.

기가 막혀서 "사람들은 다 죽어. 그러니 너무 걱정 마. 그리고 주사 맞은 사람들 2년 안에 다 죽는다면 차라리 남들 죽을 때 묻어서 같이 죽는 편이 훨씬 나을 거야. 시간 날 때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 한 번 읽어봐"라고, 다소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해부터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역병 창궐과 함께 이상한 뉴스들이 횡행하더니,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가끔 내게도 온 몸에 숟가락을 도배하듯 붙인 사진이 전달되는가 하면, 급기야 2년 밖에 못산다는 뉴스까지 도착하였다.

물론, 멕시코에서는 백신 접종에 대해 모두가 'Muchas Gracias!(대단히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으로, 혹여 자신들의 순서를 놓칠까봐 몇 날 며칠 길거리에서 날을 지새우며 줄을 섰지만 그 와중에도 이렇게 희한한 가짜뉴스들이 떠돌아다닌다. 생각해보면 백신 접종뿐 아니라 역병이 창궐한 이후 멕시코에서도 끊임없이 긴가민가 싶은 뉴스들이 시골 변방에 묻혀 살아가는 내 귀까지 들려왔다.
 

6월 21일 멕시코 과나후아토 주 살바티에라(Salva Tierra) 시 오토바이 상점에 난입한 총기 무장 세력에 의해 일곱 명이 살해되었다. 멕시코 공중파 뉴스들은 피살 현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 Imagen 뉴스 캡처

 
가짜뉴스보다 더 쇼킹한 진짜뉴스들

어느 날 멕시코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이 시골인 우리 마을은 물론이요 대도시까지 진출하여 그 곳에 줄 선 사람 아무에게나 생필품이 든 선물 상자를 돌렸다 하질 않나, 병원이 포화되어 당장 죽게 생겨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 하질 않나, 연말쯤 되니 멕시코 전역 어디에서도 산소를 구할 수가 없어 병원에 입원하지 못한 채 집에서 치료받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환자들이 숨을 쉬지 못한 채 죽어간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그 뿐이겠는가? 어느 지역에선 병원을 믿지 못한 환자의 가족들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이후 병원에 입원한 가족을 탈출시키고자 병원에 몰래 잠입해 환자를 빼내다 환자와 함께 추락해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코로나바이러스로 물건 유통에 차질을 빚게 된 멕시코 내 마약 카르텔들은 자신들의 화력을 과시하듯 수시로 SNS상에 무장 퍼레이드 영상을 띄워 올리며 그들 스스로 뉴스를 전했다. 연일 멕시코 각 도시 모 대형 마트를 털러 가자는 공지 또한 SNS를 타고 소문처럼 떠돌아다녔다.

하나 같이 믿지 못할 뉴스였다. 그러니 어쩌면 '가짜뉴스'일 것이라 여기기 충분했지만, 대부분의 믿지 못할 뉴스들은 '진짜뉴스'였다. 이 와중에 어쩌다 '가짜뉴스'라고 판명이 된 것들은 도무지 '진짜뉴스'가 주는 스릴 수위를 따라가기 한참 힘든 것들 뿐이었다.

지난해 5월 말 멕시코시티 시민안전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가짜뉴스를 확인해줬다. 내용을 보면 너무 시시해 감히 뉴스 축에도 끼지 못할 면면들이 대부분이다.
 

멕시코시티 시민안전청은 지난해 5월 말 항간에 떠도는 가짜뉴스들을 모아 팩트체크를 했다. ⓒ 멕시코 시민안전청

 
'밤 11시 이후 통행금지가 실시된다', '5월 23일 La Aguila 동네에서 집단면역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시민들이 모여 파티를 할 것이다', '시민안전청 소속 헬리콥터 다섯 대가 멕시코시티 상공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박멸하기 위해 소독약을 뿌릴 것이니 모월 모일 모시에 창문을 닫아라', 혹은 '시민안전청 소속 콘도르 헬기가 고공에서 질병 바이러스를 뿌릴 것이니 모두 외출을 삼가고 창문을 닫아걸어라' 등이다.

상공에서 소독약 혹은 바이러스가 쏟아져 내릴 것이란, 이런 뉴스가 시민들의 관심을 화끈하게 끌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멕시코에서는 상공의 헬기에서 주거지 한복판에 기총 소사는 물론이요 시체도 쏟아져 내린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마약 카르텔이 연루된 사건이었고, 헬기에서 내던져진 세 구의 시체 중 한 구는 도심 종합병원 옥상으로 떨어져 병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숱한 사람들이 그 모습을 그대로 목격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인근에 떨어진 시신 두 구는 당국이 접근하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수습되어 증거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던 터다.

그러니 상공의 헬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이 소독약이라면, 혹 바이러스라 할지라도, 기존 뉴스에 비해 아무래도 약하다. 이런 뉴스들은 아무리 떠돌아도 사람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 공공기관에서 일일이 확인해주지 않아도 '가짜 뉴스'가 제대로 설 자리가 없는 셈이다.

SNS를 통해 정해진 날짜와 정해진 장소에서 실제로 수백 명이 대형 슈퍼마켓을 부수고 들어가 물건들을 약탈하고 도심 한복판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수십 명이 죽어 나가는 장면이 그대로 공중파 뉴스를 타고 전파되는 상황에서, 집단 면역을 위해 어느 곳에 대규모 군중이 모여 파티를 열겠다는 '가짜뉴스'는 왠지 귀엽기까지 하다. 종종 마약 카르텔이 공권력을 조롱하고 시민들에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상공에 뜬 헬기에서 시신을 던지거나, 군 병력 헬기에 고성능 대물저격총 수백 발을 난사해 추락시키는 모습이 그대로 생방송으로 공중파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상황을 상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때론, 군 병력이 매복하고 있던 마약 카르텔에 기습 공격을 받는 장면이 그대로 뉴스 중에 전해지기도 한다. 요즘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 중에는 '촬영전담'이 따로 있는 것인지, 거의 모든 작전을 실시간으로 SNS 상에 생중계한다.

멕시코에서라면, 어느 채널을 통해서든 뉴스가 시작되자마자 길게는 5~6분가량 이어지는 쌍방 간 총격전을 보는 일이 흔하다. 가짜뉴스들에 대한 뷰는 많아야 20만을 겨우 넘어서는데, 이런 뉴스들의 뷰는 100만을 훌쩍 넘어선다.

'가짜뉴스'들을 바이러스라 가정한다면, 그들에게 숙주가 되는 것은 해당 뉴스들에 열광하고 또한 열심히 퍼 날라주는 사람들일 텐데, 진짜뉴스를 따라갈 수 없는 심드렁한 뉴스들이 제 역할을 성실히 해 줄 수 있는 숙주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이 멕시코에서 가짜뉴스가 혹세무민하며 히트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가짜뉴스보다 더 가짜 같은 진짜뉴스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셈이다.

가짜뉴스, 여기에선 맥 못춘다

게다가 이곳 멕시코 사회는 한국만큼 동질적이지 않다. 우스갯소리로 '멕시코 사람들이 더불어 멕시코인임을 깨닫게 되는 유일한 순간은 국제 A매치 축구경기를 할 때 뿐'이라는 말이 있듯이, 멕시코 사회에서 사람들의 동일 관심사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어떤 내용이든 가짜뉴스가 자신들에게 충실히 숙주 노릇을 해줄 수 있는 군집을 찾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일 것이다.

그 뿐이겠는가?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 대부분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모바일 폰을 중심으로 퍼지는 점을 감안한다면, 핸드폰 보급률뿐 아니라 인터넷에 대한 접근율도 현저히 떨어지는 멕시코는 사실상 가짜뉴스가 퍼지기에 썩 좋은 환경이 아니다. 문맹률 또한 가짜뉴스 기획자들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다. 유일한 이점이라면 이미 여러 기관 보고서에서 내 놓은 대로 사람들의 '무지함'이 될 수 있겠지만, 그 무지함이라도 무관심에 앞에선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역병의 와중이나 선거철이면 때는 이때다 싶은 듯 매번 가짜뉴스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2018년 대선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퍼졌던 가짜뉴스라면 당시 후보였던 현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가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의 지원을 받고 있다거나 혹은 러시아 푸틴과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그의 부인인 베아트리스 구티에레스(Beatriz Gutiérrez)가 독일 나치당 고위 간부의 손녀라는 소문도 선거 기간 내내 떠돌았다.

물론 이 모든 내용들이 가짜뉴스임이 판명되었고, 각 뉴스마다 20만 뷰를 넘겨 BBC에 의해 2018년 대선에서 가장 주목받은 가짜 뉴스로 선정되었지만, 사실 선거판에서 이런 가짜 뉴스가 얼마나 충실히 그들이 바라던 역할을 수행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나라 대선처럼 후보들의 정책토론에 온 국민이 열광하고 가족 간에도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싸우기도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든 나라에서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최근에도 공중파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들이 영 심상치가 않다. 지난 6월 21일 공중파 방송의 뉴스를 재생해주는 유튜브 동영상 첫 화면에는 "이 영상의 일부 화면은 보는 이의 연령대에 따라 매우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보시겠습니까?"라는 안내 자막이 떴다. 통상적으로 아주 잔인한 동영상에 대해 안내되는 문구가 멕시코 공중파 방송 뉴스 첫 화면에 뜬 것이다.
 

멕시코 공중파 방송 중 하나인 Imagen 채널의 Ciro Gomez Leyva가 진행하는 메인 뉴스를 재생해주는 6월 21일자 YouTube 동영상 첫 화면. '이 동영상 시청은 일부 사람들에게 적절치 않을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자막을 띄우고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만 아래 이어지는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보기를 원합니다'라는 옵션을 선택하여 시청하도록 했다. ⓒ YouTube

 
그렇게 시작된 뉴스는 첫 장면부터 피살된 후 수습되지 않은 채 길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방송국 카메라가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다가가 비춘다. 지난 6월 19일 미국 텍사스 주 맥알렌(McAllen)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접해 있는 멕시코 레이노사(Reynosa) 시에서 세 대의 콘보이 차량을 타고 나타난 무장 괴한들이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고한 시민들을 조준 사격하여 사살했다는 내용이다. 총 15명이 사살되었다.
 

지난 6월 19일 멕시코 국경도시 레이노사에서 무장 괴한들이 시내 각 곳을 돌며 15명의 시민들을 조준 사격하여 사살했다. 연방 검찰은 이 참극을 두고 '레이노사 살육'이라 명하였고 주지사는 이들의 폭력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레이노사는 미국 텍사스 주 맥알렌과 연결되는 국경도시다. 멕시코 동부에서 가장 큰 국경도시이기도 하다. ⓒ Las estrellas 화면 캡처

 
주말인 토요일 한 낮(12시 30분경)에 공권력 감시가 촘촘한 국경 도시 중 하나이고, 타마울리파스(Tamaulipas)주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연방 검찰은 '살육'이라 명하고 군 병력을 투입한 채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사고 이후 닷새 흐른 24일까지도 살육을 자행한 세력과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성과도 없이 각 부처 간 추측만 분분하다. 물론, 그들이 마약 카르텔이란 사실엔 그 어떤 이견도 없다. 게다가 주지사는 살육을 자행한 세력에 대해 '맹공'을 퍼붓겠다고 기자회견까지 하고 나섰으니, 이 도시의 향후 안녕이 심히 걱정스럽다.

'레이노사 살육' 뉴스가 한참 진행되다 이어진 뉴스는 그날 과나후아토 주 살바티에라(Salva Tierra)시에서 벌어진 또 다른 '살육'이다. 역시나 어느 오토바이 상점에 무장 괴한들이 들이닥쳐 그 곳에 있던 사람들 일곱 명을 사살하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뉴스다. 화면 곳곳에서 피 흘린 채 죽어 널브러진 시체들이 보임에도 앞서 전해진 뉴스에 비해 스케일이 작아서인지 단신으로 처리된다.

멕시코의 상황이 대략 이렇다. 지상에서 대물저격포로 공중의 군 병력 헬기를 떨어뜨리질 않나, 상공에서 마약 카르텔 은거지로 추정되는 곳에 기총 소사가 쏟아지질 않나, 연일 이곳 뉴스에선 여느 영화 못지않은 장면들이 펼쳐진다. 도무지 진짜뉴스라 믿기 어려운 소식들이다. 이러니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어디 가짜 뉴스가 파고들 틈이 있겠는가?
 

지난 6월 19일 '레이노사 살육'이라 불리는 사건 발생 이후 국토방위군을 비롯하여 해군 무장 병력이 레이노사에 투입되었지만 여전히 사건 관련 용의자 색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Las estrellas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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