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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22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기간 중에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소수자, 인권, 평등에 대한 감각, 차별, 대항표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칩니다. 불빛을 따라 자신만의 노트를 써가고 있는 문화·예술인 6인의 글을 릴레이 기고 "불빛과 노트들"을 통해 소개합니다.[편집자말]
"경제적인 고립은 단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만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아니다.
점차 웃을 일이 사라지고 굳어버리는 얼굴 속에 마음은 늘 누군가를 향해 날카로움을 품기가 쉬워진다.

그게 나 자신일지라도. 가게에서 책을 읽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거울 속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고." (책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이라는 제목이 무섭다. 그러다 글 내용을 보면 그 시선이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가하고 싶은 것이어서 제목과는 다른 서늘함이 느껴진다. 사회의 바깥으로 내몰린 자들의 낮은 자존감과 자기 파괴적인 충동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의 언어는 부재한다.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이들이 가난할 확률과 자살률이 높다는 통계는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도처에 있는 혐오 속에서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 장치가 없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입법자들은 관심이 없고 인권은 비이성과 폭력의 세력 앞에서 흔들리고 쉽게 꺾인다.

2005년 여름, 나는 열아홉의 나이로 퀴어 문화 축제의 퍼레이드에 처음 참여했다. 퍼레이드 참여자들이 행진을 시작하자 종묘광장에 모여 있던 노인들의 눈길에, 인도를 지나가던 시민들의 눈길에 어린 호기심의 시선들이 생각난다. 

그날 나는 행진의 대열이 성소수자들의 척박한 인권에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긍지와 그 변화에 함께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퀴어 문화 축제는 열린 광장에서 늘어난 참가자들로 커진 규모를 자랑하지만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아직도 변하지 못한 것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혐오의 말들과 시선으로부터 사라져간 친구들이 있었고 지금도 누군가는 삶에서 밀려 나가 부재의 자리로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2021년 3월 3일. 변희수 전 하사가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변희수 전 하사를 비난했고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위로의 말 한마디보다는-'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식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녀의 선택과 싸움에 적극적인 관심과 응원을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누군가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에 '사회적 용인, 분위기, 합당함' 등을 이유로 자신의 생각을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주관적인 관점으로 누군가의 삶에 대해 이치를 따지며 말하지만 결론은 자기 자신이 어떤 대상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거나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말하지만 그건 포용력이 부족한 자의 타인과 사회를 인식하는 일방적인 사고일 뿐이다." (책 <여섯 개의 폭력> 중에서) 

드러나지 못하고 사라져간 죽음들도 있다.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건 그런 죽음들을 더 자주 목도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난 작년에만 트랜스젠더 분들의 네 번의 부고 소식을 들어야 했다. 한 분은 고독사로 발견되었고 한 분은 사고사로 떠나보냈으며 다른 두 분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모두 외롭고 쓸쓸한, 고독한 죽음이었다.

"떠난 사람들을 생각해요. 사회에서 호명되지 못하는 죽음들을요. 밤에 일한다는 건 그런 죽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일이기도 해요. 전 올해에만 벌써 네 번의 부고를 들었어요. 하나는 언덕 위에서 일하시던 분이 며칠간 보이지 않고 연락이 없어서 집에 찾아갔더니 죽어 있더래요. 고독한 죽음이에요. 다른 하나는 어떤 가게에서 일하던 아가씨인데 자살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알던 동생이 갑자기 떠났어요. 한동안 밤일을 그만두고 미용실에서 일한다고 해서 축하한다고, 잘됐다고 말했었는데.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 제게 오빠라고 부르며 인사해줬던 동생이에요. 미용 일을 그만두고 전의 가게로 다시 돌아가 일하고 있더라고요. 그 동생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확한 사인은 모르겠지만 약을 먹은 게 잘못된 거 같다는 얘기만 들었어요. 

차마 장례식장에 가보지 못하겠더라고요. 슬프기도 했지만 동생의 죽음이 외롭다고 느껴졌어요. 다른 친구는 저희 가게로 일하러 왔던 어떤 동생이에요. 제가 일을 시작하기 한참 전에 짧은 시간 일하다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갔었다고 들었어요. 키는 작고 얼굴이 통통해서 둥근 인상의 친구였어요. 피부는 하얗고 신은 구두의 굽이 너무 높아서 서툰 걸음이었어요. 첫날을 보내고 그 다음날 손님과 문제가 생겨서 일을 그만뒀는데 그 친구가 지갑을 두고 간 거예요. 코발트블루의 카드 지갑이었어요. 지갑을 술 진열하는 선반 한쪽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한 달 뒤에 그 동생이 자살했다는 거예요. 사장님이 지갑을 버리라고 해서 가게 밖으로 나가 골목에 주차된 화물차의 짐칸에 내려놓았어요.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지갑에 꽂혀 있던 신분증을 봤어요.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이십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가버리다니 안타깝다는 생각만 했던 거 같아요." (책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마음도 비어져 가는 것 같다. 말한다는 것에 점점 피로감을 느끼고 삶의 중압감에 쉽게 지쳐버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 이유만으로 위협을 받아 떠나는 이들이 사라지는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퀴어 문화 축제는 우리 곁에서 떠나보낸 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정식 : 시각예술가. 텍스트를 쓴 후 이를 출판, 영상, 설치 작업 등으로 제작한다. <넥스트코드 2020. 대전시립미술관>, <이정식. d/p>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여섯 개의 폭력 - 학교폭력 피해와 그 흔적의 나날들

이은혜, 황예솔, 임지영, 조희정, 이모르, 김효진 (지은이), 글항아리(2021)


태그:#문화, #예술, #사회적소수자, #인권,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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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문화축제(Seoul Queer Culture Festival, SQCF)”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어우러져 즐기는 장을 만드는 것”을 비전으로 삼아 매해 여름 서울에서 개최되는 복합/공개/문화행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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