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지난 20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이하 사장님 귀)는 매주 일요일 오후 시간대를 책임지는 KBS2의 주말 간판 예능 중 하나다. 지난 2년여 방영되는 동안 제목 그대로 사장님 또는 조직의 수장, 리더를 맡고 있는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등장해 그들의 일상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꾸준히 사랑받았다.  

​하지만 <사장님 귀>는 어느 순간부터 회사 또는 집단의 이야기 대신 '먹방' 등 엉뚱한 소재가 자주 강조되었고 이로 인해 프로그램의 본질이 흔들린다는 비판 또한 끊이지 않았다. 그러한 지적에 응답이라도 하듯 최근 <사장님 귀>는 새 인물을 내세워 조금씩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느새 연예계 경력 25년이 넘는 중견 연예인이면서 기획사를 운영중인 H.O.T 토니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직원보다 더 오랜 기간 몸 담은 무명 연기자​
 
 지난 20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지난 20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 KBS

 
올해로 엔터 사업 18년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토니안은 그동안 배우, 예능인, 아이돌 그룹 등 다양한 연예인을 거느린 회사 수장으로 일해 왔다. 하지만 사업가로서의 토니안은 지난해까지 꾸준히 적자 속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방송에서 고백할 만큼 성공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경영자였다. 토니안은 직접 촬영 현장에 나서는가 하면 지갑을 놓고 와서 연기자의 사비로 점심을 함께 하는 등 짠내 나는 일상으로 스튜디오 출연진으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20일 방송에선 배우의 꿈을 놓지 않고 있는 소속 연예인의 캐스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토사장'의 활약이 눈길을 끌었다. 박은혜, 엄현경, 윤소희 등 각종 드라마에서 맹활약 중인 대선배들과 달리 손수민은 8년 째 단역을 전전하며 활동하고 있지만 최근 1년 동안 공백기로 고생하고 있는 무명 연기자다. 지난 2015년 아이돌 그룹 어썸 베이비로 데뷔했지만 변변한 성과 없이 팀은 사라졌고 자의반 타의반 배우로 전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활동 공백기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를 두고 토니안은 '자신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란 표현을 하기도 했다.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토니안은 작은 역할 이라도 마련해주고자 캐스팅 홍보차 방송국 PD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소속 연예인 홍보​
 
 지난 20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지난 20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 KBS

 
막상 방문한 KBS 드라마국 사무실은 적막감만 흐를 만큼 인적이 드물었다. 몇명 안되는 PD들을 만나 직접 프로필 사진을 보여주며 소속 배우들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뾰족한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보다 못한 한 PD는 "요즘은 프로필만 들고 다니면 안 된다, 동영상을 들고 다니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가장 높은 직급 담당자인 드라마 센터장을 만나선 당황해 두서없이 이야기할 정도로 사장님으로서 토니안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데뷔작을 기획 중인 신입 PD가 있다"라는 센터장의 말로 어렵사리 기회를 부여 받게 된 그는 일말의 희망을 걸어 보지만, 현재 첫번째 단막극 캐스팅이 끝났다는 PD의 말에 낙담하고 만다. 하지만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두번째 작품에는 출연진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현장 오디션 자리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미리 준비한 연기를 선보인 손수민은 해당 PD와 스튜디오 패널들의 칭찬 속에 긍정적 분위기로 오디션을 끝마칠 수 있었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연기의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이름 석자와 더불어 좋은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제 위치로 돌아오기 시작한 <사장님 귀>
 
 지난 20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지난 20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 KBS

 
화면 속 내용만 놓고 보자면 이번 토니안 사장의 이야기는 마냥 자연스러운 장면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각 작품마다 캐스팅 디렉터가 존재하고 오디션 등을 통해 극중 여러 출연진을 발탁하는 게 일반적인 드라마와 영화 제작의 사전 준비 단계다.

직접 사장이 방송국을 찾아 프로필 자료 돌리고 즉석 오디션을 치른다는 건 요즘 시대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즉, 예능 속 내용을 만들기 위한 인위적 장치 설정이면서 무명 연기자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장님 귀>의 기본 틀을 감안하면 토니안의 발로 뛰는 영업은 자신을 믿고 여기까지 따라와 준 소속 연기자이자 후배에 대한 미안함의 발로였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수민이는 가족이다. 가족은 서로 안 풀린다고 해서 헤어지는 건 아니다. 저는 수민이를 믿는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노력하겠다."

​그간 먹방 같은 소재를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옆길로 빠져있었던 <사장님 귀>가 사장님 등 리더들이 어떻게 회사를 경영하고 이끌어 가는지를 담은 관찰 영상 중심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청자들이 바라던 <사장님 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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