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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부터),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자료사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부터),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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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자료사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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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본인도 과거 판사 시절 피고인에게 증거 서류 일체 낭독을 허용하면서 재판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도 본인이 피고인인 재판에서 이를 주장하는 건 '자가당착'에 가깝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되레 피고인(임종헌)이 재판과 관련된 여러 절차적 권리들을 남용하고 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농단 사건의 '키맨'으로 불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난 15일자 재판을 두고 '자가당착', '권리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관련기사 : 한 트럭' 증거자료 전부 낭독해야 한다는 피고인... 재판장 '쩔쩔' http://omn.kr/1txtl)

임 전 차장은 지난 재판에서 재차 항의를 개진하며 재판을 사실상 파행시켰다. 소위 '한 트럭'에 달한다는 증거 서류 전부를 법정에서 하나하나 낭독할 것을 요구했고, 예정된 증거 조사에 대해서는 모두 '부동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럼에도 이날 재판장은 임 전 차장 측에 "재고해달라, 협조해달라"며 수세적인 모습을 보였다. 과연 일반 재판에서 가능한 일일까? 

"재판 자체를 방해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16일 헌법전공자인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임 전 차장 재판 진행 과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먼저 이종수 교수는 재판부와 임 전 차장 측 모두를 강하게 비판했다.
 
"헌법 11조가 말하는 '법 앞의 평등'이 지켜지고 있는지 강한 의문이 든다. 그동안 우리 재판부는 굉장히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는 평가가 강했는데, 정작 사법농단 재판부의 태도는 다르지 않은가. 임 전 차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피고인들의 방어권 행사는 일반 형사 사건에서 적용했던 것과 동일한 수준에서 부여돼야 한다. 물론, 법정에서의 재판부 태도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통상적인 재판과 달리, 유독 사법농단 재판부가 전·현직 고위직 법관을 앞에 두고 대단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서 "적극적인 지휘권 행사가 일반적인 모습이라면 이번 사건에서도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선택 교수 역시 "임 전 차장이 전직 고위 법관이라는 이유로 아주 엄격한 법 해석을 요구하면서 재판부를 압박하고 있다"라며 "통상 피고인들이 재판 과정에서 지연책을 쓰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그 범위를 상당히 넘어섰다. 재판 지연이 아니라 진행 자체를 방해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임 전 차장 변호인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김 교수는 "일반적으로 피고인 측 변호사는 재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대한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 변호인은 그렇지 않다"면서 "(피고인이 고위직 법관이 아닌 이상) 일반 재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라고 꼬집었다.

임 전 차장 측이 형사소송법 292조 1항을 근거로 증거 일체를 법정에서 낭독하도록 요구한 것도 지나치다고 평가했다. 이종수 교수는 "(임 전 차장 측에서) 인용한 형소법이나 형사소송 규칙은 소위 강행규정이 아니라 훈시 규정에 가깝게 이해돼 왔다"면서 "임 전 차장 또한 과거에 그렇게 재판을 운영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낭독 규정을 강행 규정처럼 주장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도 "증거 서류를 다 낭독하자는 건 사실상 재판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임 전 차장이) 전직 법관인 이상 재판부의 고충도, 법 해석에 재량의 여지가 있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텐데 이렇게 재판 진행을 막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해당 재판부의 문제점도 언급했다. 그는 "이들이 법전에 죽어있던 피고인의 권리를 살려낸 이상 원칙대로라면 다른 모든 재판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만약 실제로 모든 재판이 이렇게 진행되면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은 그날로 정지될 것"이라며 "당사자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자 재판장에게 소송지휘권이 부여된 건데, 정작 해당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끌려다니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장의 소송지휘권보다 앞서는 피고인의 권리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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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의 권리가 재판장의 '소송지휘권'보다 앞서는 이례적 풍경은 비단 임 전 차장 재판에서만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재판 또한 유사한 형태를 보이면서 '황제 재판'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들 재판부는 지난 2월 구성원 변경 이후 수회의 공판 동안 법정에서 과거 공판 녹음만 재생했다. 당시 검찰은 "녹음을 다 틀면 1년이 넘게 소요된다"며 반발했지만, 그럼에도 재판부는 피고인 측 요청을 받아들였다.

사법농단 피고인들의 재판에서 나타나는 법원의 이중적 잣대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를 전문적으로 심리하는 별도의 재판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종수 교수는 고위직 법관들의 비위를 보다 공정하게 심리하기 위해서는 독일과 같은 별도의 '직무 법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달리, 판사 개인이 사법행정권자로 인해 독립성이 침해됐다고 생각할 경우 '직무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법원장은 개별 판사를 견책할 권한만 있고, 나머지 징계는 모두 직무 법원에서 정한다.  (관련 기사 : 판사와 판사의 법정싸움, 그들이 주목받은 이유 http://omn.kr/1rg5e)

이 교수는 "독일이 이러한 법원을 만든 이유는 법관에 대한 징계 특수성 때문이다. 법관 직무상의 부적절성은 일반법원이 아니라 이처럼 독립성을 갖춘 별도의 법원에서 따로 다룰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태그:#사법농단 , #임종헌, #양승태, #박병대, #고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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