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강릉고등학교 선수들이 최재호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제75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강릉고등학교 선수들이 최재호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 박장식

 
지난해 황금사자기 우승을 눈 앞에서 놓치며 울음을 삼켜야 했던 김진욱(당시 강릉고등학교, 현 롯데 자이언츠)의 한을 후배들이 풀어줬다. 

14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5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전국대회 결승전에서 강릉고등학교가 대구고등학교를 꺾고 꿈에 그리던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다. 경기 초반 대량득점을 발판으로 앞서나간 강릉고는 13-4의 압도적인 스코어로 대구고를 누르며 두 번째 전국대회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날 경기의 승리 투수가 된 최지민은 지난해 아쉬움을 털어내고 마음껏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지난해 우승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했던 학부모들도 관중석에서, 그리고 그라운드에서 자녀들의 우승을 축하했다. 

4회에서 7회까지 열 두점 몰아쳤다

이날 결승전에 나선 대구고와 강릉고는 각각 선발투수로 2학년 이로운, 3학년 이전재를 내보냈다. 경기 초반엔 두 학교의 탐색전이 이어졌다. 대구고가 1회초 이동민의 적시타로 한 점을 따내며 강릉고 이전재를 강판시켰고, 강릉고 역시 1회말 김세민의 내야안타로 한 점을 뒤따랐다. 

경기의 균형추가 무너진 것은 경기 중반인 4회였다. 강릉고가 본격적으로 대구고의 마운드를 공략하기 시작한 것. 가장 먼저 김세민이 출루한 뒤 도루로 밥상을 차렸다. 이어 정승우가 2루타를 쳐내며 한 점을 달아났고, 안방마님 차동영은 빠른 발을 바탕으로 적시 3루타를 쳐내며 앞서나갔다. 
 
 제75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전국대회 결승전에서 강릉고 김백산 선수가 역투하고 있다.

제75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전국대회 결승전에서 강릉고 김백산 선수가 역투하고 있다. ⓒ 박장식

 
이어 강릉고는 김륜휘의 출루, 허인재가 터뜨린 싹쓸이 3루타 등에 힘입어 4회에만 5점의 득점을 올리며 스코어를 6-1로 벌렸다. 강릉고는 5회에도 차동영, 정승우, 허인재의 활약에 힘입어 석 점을 더 달아난 뒤, 6회와 7회에도 두 점씩을 더 달아나며 13점을 올렸다. 

6회부터는 강릉고의 안방마님 차동영의 투혼이 돋보였다. 상대 선수의 방망이가 헛돌며 차동영 선수의 머리를 가격한 것. 머리에 가해진 갑작스러운 충격에 한동안 고통을 호소하던 차 선수는 다시 일어나 포수 마스크를 쓰며 투지를 불살랐다.

대구고등학교는 마운드의 아쉬움 속에 점수를 상당수 내줬지만 반격의 불씨를 재차 살려내려 애썼다. 하지만 상대의 수비진을 공략해 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대구고는 6회 김규민이 적시 2루타를 만들며 한 점을 따라가는 데 성공했지만, 추가 득점에는 실패했다. 

강릉고의 마운드는 역시 탄탄했다. 경기 초반 강판된 이전재에 이어 오른 조경민이 3과 3분의 2이닝 동안 두 개의 삼진과 무사사구를 곁들여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에이스 최지민이 등판해 4.1이닝을 1개의 실점으로만 책임지며 강릉고의 수비를 책임졌다.

특히 8회에는 무사 1,2루 상황에 맞딱드린 최지민이 웃음꽃을 피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위기 상황 상대 타자가 쳐낸 타구가 3루 베이스 앞에 그대로 가며 3루수에서 2루, 그리고 1루를 거치는 트리플 플레이가 나온 것.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받아낸 1루수 김예준과 최지민은 삼중살의 순간 함께 환호하며 이닝을 끝마쳤다. 

끝까지 따라갔던 대구고... 우승의 순간에도 박수로 화답
 
 결승전 패배의 상황에서도 스포츠맨십을 보여주었던 대구고등학교 선수들.

결승전 패배의 상황에서도 스포츠맨십을 보여주었던 대구고등학교 선수들. ⓒ 박장식

 
13-2로 밀려난 뒤 맞이한 마지막 공격 순간인 9회, 경기가 크게 기울어져 힘이 빠질 만도 한 상황이었지만, 대구고 선수들의 눈이 빛났다. 선수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자며 기합을 넣었고, 바뀐 상대 투수 김백산을 흔들며 막판 득점까지 얻어내는 등 스포츠 정신을 발휘했다.

9회 대구고 공격의 시작은 전영준의 안타였다. 이어 김규민이 2루타를 쳐내며 한 점을 따라갔고, 최원대 역시 적시타에 성공하며 13-4까지 따라갔다. 대구고 선수들은 득점하고 들어온 선수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고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경기의 마지막을 더욱 빛냈다. 

물론 열 한 점 차의 점수를 한 이닝에 뒤집을 수는 없었다. 김백산 역시 이닝 첫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마무리한 뒤, 마지막 순간 병살타를 유도해내며 강릉고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세 개의 아웃카운트를 완성했다. 강릉고등학교가 2020년에 들지 못한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이 되며 1년의 한을 푸는 순간이었다.

강릉고 선수들이 모두 달려나와 우승을 만끽하는 순간에도 대구고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나와 박수를 치며 상대 선수들을 축하했고, 이어 열린 시상식에서 강릉고 최재호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할 때 대구고 손경호 감독이 꽃다발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스포츠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한편 강릉고는 '두 번째 우승' 덕분인지 색다른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관심을 끌기도 했다. 마운드 위에 동그랗게 모여든 선수들이 최지민 선수의 '토르 망치 세리머니'에 맞춰 모두 넘어진 것. '야구 불모지' 강원도의 두 번째 전국대회 우승을 이뤄낸 선수들이 '이제 강릉은 야구의 새로운 중심지'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우승 비결 없다... 선수들 잘 따라온 덕분"
 
 제75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전국대회에서 감독상을 수상받은 강릉고 최재호 감독에게 대구고 손경호 감독이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제75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전국대회에서 감독상을 수상받은 강릉고 최재호 감독에게 대구고 손경호 감독이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 박장식

 
강릉고등학교의 두 번째 전국대회 우승을 이끈 최재호 감독은 "선수들이 고생한 보람을 찾아서 감독으로서 기분 좋다. 첫 게임부터 어렵다고 생각했음에도 행운이 따라줬다"라며 "한 게임 한 게임 이기기 쉽지 않은 팀이지만, 기본기를 쌓아온 덕분에 잘 풀어온 것 같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나머지 선수들을 발굴해 기량을 펼치게 하는 것'이 잘 되었다는 최재호 감독은 우승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따로 우승의 비결은 없다. 선수들이 시키는 것에 잘 따라와주었고, 힘든 부분도 따라와 준 덕분에 잘 되었다"라며 특히 차동영, 최지민 등 이번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을 칭찬했다. 

최 감독은 9월로 예정된 플로리다 U-18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감독으로도 나선다. 이에 대해 그는 "대표 선수 선발하는 데 전력을 다 해야 할 것"이라면서, "대표팀 감독으로서 부담도 많다. 선수들이 선발된 후에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강릉고등학교의 우승의 주역이 된 최지민 선수는 최우수선수상과 우수투수상을 함께 석권했다. 그는 "지금까지 열심히 훈련해왔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좋다"면서, "아쉬운 점 없이, 이번 대회는 후회없이 잘 던진 것 같다. 지난해 역전 볼넷으로 패배한 아쉬움을 털어내 좋다"라고 밝혔다. 

프로에서 만나고 싶은 선수로 선배 김진욱을 꼽은 최지민은 "형이 여기 없어도 우리가 잘 올라와 우승했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진욱이 형과 프로에서 선발 맞대결을 펼쳐 꼭 승리하고 싶다"라며 웃었다. 이어 "앞으로 팬들에게 잘 알려진 선수가 되고 싶다. 변화구를 더욱 잘 다듬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제75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강릉고 선수들이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있다.

제75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강릉고 선수들이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있다. ⓒ 박장식

 
부상 투혼을 펼친 차동영 선수도 "동계 훈련 때부터 팀원 모두가 고생했기에,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부상에도 끝까지 배터리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해 "참으면서 팀원들을 생각했다. 다행히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라며 웃었다.  

이어 "김필중 배터리 코치님이나, 곽정훈 코치님, 이창열 코치님들이 도움을 많이 주셨다. 특히 코치님들께서 '너는 손목 힘과 허리가 좋아서 여유있게 공을 봐도 된다고 말씀해주신 덕분에 타격이 좋아진 것 같다"라고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제물포고를 거쳐 삼성으로 향한 이병헌, 유신고를 거쳐 kt에 입단한 강현우 선수가 롤모델이라는 차동영 선수는 "형들 보면서 꿈을 키워왔다. 앞으로 남은 대회에서도 우승 거두어 지명된 뒤 프로에 가고 싶다"라며 "형들처럼 프로에 가서 투수들에게 믿음을 주고 신뢰를 주는 포수가 되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번 대회의 개인상 수상자는 최우수선수상과 우수투수상에 강릉고 최지민, 타격상과 최다안타상에 타율 5할 5푼 11안타의 강릉고 차동영, 최다타점상에 신동준(서울컨벤션고, 10타점) 최다득점 및 홈런상에 서울고 조세진(7득점, 1홈런), 최다도루상에 서울컨벤션고 조원빈(5개)이 올랐다. 감독상은 강릉고 최재호 감독, 공로상과 지도상은 최종선 강릉고 교장과 민성민 강릉고 부장이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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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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