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 전, 친정아버지 제삿날이었다. 6월 초입인데 날이 한여름처럼 덥다. 아마도 지구의 온난화 탓도 있으리라 본다. 친정아버지는 36년 전 단오날이 오기 이틀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로 여태껏 큰아들인 남동생네 집에서만 제사를 지내왔다. 친정집은 딸 넷에 아들이 삼 형제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데 큰아들이라는 이름 때문에 오랫동안 당연한 듯 아버지 제사를 지내왔다. 동생의 댁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는 몸이 아프다.

그러니 제삿날이 오면 본인도 힘들지만 빨리 와서 도와주지 않는 다른 가족에게 서운함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제삿날은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며느리 한 사람은 고인이 됐고 다른 한 사람도 일을 한다. 사정이 그러니 큰동생 댁이 힘들다. 항상 옆에 사는 동생과 내가 가서 도와주어야 했다.

작년에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나서야 형제들은 의견을 모아 친정집 제사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동생의 댁 몸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머니 제사까지 맡길 순 없는 일이다. 그간 불만을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는 큰 동생 부부에게 나는 항상 고마웠다.

서로 힘들고 불만이 있으면 사람 관계는 불편해진다. 이제 제사는 누구 한 사람 몫이 아니다. 모두가 같이 참여해서 부모님을 추억하며 형제의 정도 나누는 제사로 방법을 바꾸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형제들은 의논 끝에 일곱 남매가 매월 회비를 모아 남매들 통장을 만들었다. 모두가 공평해야 한다. 제사 비용이랑 기타 형제들에게 힘든 상황이 생기면 도움을 주는 것도 회비에서 쓴다. 이제는 불편함이 없다.

이제는 제삿날이 오면 간결하게 과일과 음식을 준비해서 부모님 산소가 있는 산에서 모인다. 인천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 둘과 군산에서 전주에서 모두 정해진 시간에 간편한 복장을 하고 소풍을 가듯 부모님 산소에서 만나서 제사를 지낸다.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는 돌아가신 분들과 가까이서 호흡하는 듯한 느낌이다. 집에서는 일이 많지만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는 일이 없다. 다 같이 즐거워 하니 마음도 가볍다.

어제 큰동생 댁이  말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제물 준비해온 동생과 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형님, 저 사람들에게 마구 자랑했어요". 그 말을 듣는 내가 더 마음이 가볍다. 사랑이란 서로 무거운 짐을 나누어져야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동생들에게 짐을 덜어주고 싶다. 어릴 적 고생하고 살아왔던 동생들을 보면 더 애틋하다. 지금은 내가 가장 한가한 사람이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고 활동하기 자유로운 여름철이라서 좋다. 사실 제사란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그분들과의 추억을 돌이켜 보며 가족 간의 따뜻한 정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형제들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막내만 빼고는 다 60세가 넘은 세대들이다. 산소에 가져가는 준비물을 우리 집 옆에 사는 여동생과 내가 준비한다.

산소는 전주에서 차로 30분 정도 들어가는 시골 소용 마을에 있다. 그곳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큰집이 살았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고향 같은 곳이다.  나는 웬일인지 어릴 적에 큰집엘 많이 드나들었다.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추억이 많은 곳이 산소가 있는 동네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지냈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때론 가슴이 아릿하니 그 시절이 그립다.

요즈음 밤꽃이 산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어쩜 신은 인간에게 계절에 맞는 꽃을 피워 즐거움을 주는지,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산소 가는 길을 분홍 달맞이꽃이 피어 있고 개망초도 흐드려지게 피어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바라보는 재미가 즐겁다. 꽃들은 우리를 반긴다. 산소를 찾아가는 산길을 걸어가면 뻐꾸기 소리가 우리를 따라 산길을 같이 오른다. 

산골 여기저기 추억이 있다. 할아버지가 고구마를 밭에서 몇 개 캐다가 주었던 기억도 떠올라 마음이 울컥 해진다. 사촌언니 따라 밭으로 돌아다녔던 기억, 큰댁 윗집 새댁 손잡고 돌아다니며 명자꽃 따다가 머리에 꽂아 주었던 기억... 많은 추억이 이 산골짜기에 숨어있다.

차는 산길 아래에 주차하고 걸어가는 그 길이 나는 재미있고 즐겁다. 길가에 피어 있는 꽃도 보고 산딸기도 보고 눈에 보이는 여러 나무들 조차 정겹고 좋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큰 집 논이 있었고 밭이 있던 자리도 눈 여겨 기억을 더듬어 본다. 마치 옛 살던 고향에 소풍 나온 기분이다.

한참을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부모님이 누워 계시는 선산이 나온다. 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동생들은 벌써 도착해서 매실을 따고 있다. 산소는 산 중턱쯤에 있어 올라가야 한다. 산 봉우리 가가운 곳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있다.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서 인사를 한다.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제사음식
▲ 아버지 어머니 묘소 앞에 차린 음식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제사음식
ⓒ 이숙자

관련사진보기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가서 준비해온 음식과 과일을 상석 돌 위에 차려 놓은 다음 제사를 지낸다. 산소 아버지 묘 옆에는 용설란꽃이 활짝 피어 우리를 반기는 듯하다. 모두가 서서 제사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괜히 코가 시큰해진다. 아직은 일곱 형제가 그대로 살아 있어 아버지 어머니 산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흐뭇하고 기쁘다.

제사를 지낸 다음 그늘에 자리를 깔고 음식도 나누어 먹고 산소 아래 매실나무에서 매실도 줍고 꼭 소풍 나온 듯 즐기며 담소를 한다. 산을 내려와 동네 맛집에 가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옥정호 옆 멋지고 아늑한 한옥 카페가 갔다. 그곳에서 차 한잔 하면서 사진도 찍고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여유로움을 즐긴다. 외진 시골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산다는 것은 예술이다.   

제사라고 집에서 복작거리고 여자들 힘들게 살 필요가 없다. 일에서 해방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모두가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순간 지나가는 짧은 인생, 삶을 여행하듯 즐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마다의 삶의 속도에 맞추어 소중한 삶을 살아야 한다. 존중받으면서. 누구나 각자의 삶은 소중하다. 이제 며느리도 제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세상이 변해 가고 있다. 변화에 맞추어 이제는 제사 방법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친정집은 제사 지내는 방법을 바꾸고 서로가 힘들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인생을 소풍이라고 말한 천상병 시인의 말이 떠오르는 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제사 , #산소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