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0 18:24최종 업데이트 21.06.10 18:24
  • 본문듣기
취임 64일만인 지난 3월 25일, 바이든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다른 대통령보다 늦은 첫 언론과의 질의응답에서 바이든은 확산세가 꺾인 코로나 상황이나 예상보다 빠른 백신 접종 속도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관심 사항은 달랐다. 

"당신의 친 이민정책이 밀입국자를 급증하게 한 것 아닙니까?"
"부모 없이 수용되어 있는 어린이 이민 시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식 회견을 중계하는 NBC 방송 갈무리. ⓒ NBC

 
기자들의 관심은 멕시코와 과테말라 국경지대로 밀려드는 이민자들 문제에 집중됐다. 

"트럼프를 제외한 어떤 정부도 그런 어린이들이 굶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전 대통령과 차별화된 획기적인 정책이 있을 수 없는 밀입국 문제에 바이든 대통령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회견 하루 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국경 난민 문제 책임자로 임명하며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었지만 말이다.

"들여보내 줘(Let Us In)"

3월 2일 새벽 6시 15분, 남 캘리포니아 국도에서 13명이 숨지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교차로에 진입하던 포드 익스페디션 SUV 차량이 대형 굴착기와 충돌해 차량에 타고 있던 25명 중 운전사 포함 13명이 사망한 것. 15~53세의 승객 대부분은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상태였고 운전사는 멕시코 멕시칼리 출신의 28살 남성이었다. 멕시코 정부는 사망자 중 최소 10명이 멕시코 국적자라고 밝혔다. 

사고가 난 지역은 멕시코 국경에서 16킬로미터 떨어진 임페리얼 밸리. "전 세계 당근의 수도"라 불리는 곡창지대다. 참외, 상추, 나물 농사가 성해 매일 6000여 명의 일용직이 국경을 넘어 일하러 오는 곳으로, 불법 이민자들의 통로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미 국경 순찰대는 사고 당한 이들 대부분은 멕시코에서 몰래 입국한 불법 밀입국자들이라고 했다. 

3월 31일, <에이비시뉴스>(ABC NEWS)는 뉴멕시코 지역 국경 장벽을 찍은 야간 카메라 영상을 공개했다. 4.3m 높이의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장벽 건너에서 두 명의 어린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었다. 떨어진 아이들을 버려둔 성인 남성들은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갔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아이들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장면을 지켜본 국경수비대에 의해 구조된 어린이들은 에콰도르 출신의 3살, 5살 여아였다. 수비대에 발견되지 않았으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광활한 사막 한복판이었다. 
 

어린 소녀가 국경 너머로 버려지는 장면 ⓒ Telemundo 뉴스 캡처

 
이렇듯 불법 이민자 문제는 바이든 정부가 해결할 난제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공화당을 비롯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격이 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6월 8일, 미국 정치매체 <악시오스>는 멕시코 국경을 넘어 비합법적으로 미국 땅에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가 2020년 10월 1일부터 올해 5월 31일까지 90만 명에 가깝다고 전한다. 미 관세국경보호청(CBP) 데이터에 의하면 이는 2006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지난 3, 4월 적발된 17만 건은 20년 만에 최고이기도 하다. 이들 중 40% 이상은 멕시코 국적이지만,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도 적지 않다.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쿠바, 아이티 출신도 늘고 있다. 애리조나주 유마에서만 1만 3천 명의 브라질 출신 불법 이민자가 검거됐다. 에콰도르 사람도 3만 2000명이 넘었다. 돌려보내진 이들이 다시 월경을 시도해 중복 집계도 적지 않지만 작년 10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의 숫자가 이 정도다.

바이든 정부 들어 급증한 이민자 숫자에 공화당은 바이든의 안이한 대처로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공격한다. 반대로 민주당은 이들에 대한 합법적이고 인도적인 수용을 주장한다. 코로나 이후 더욱 악화되고 있는 중남미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캐러반(난민, caravans)의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있다. 

"오지 마(Do Not Come)"

6월 7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취임 후 첫 외국을 방문했다. 미국으로 오는 캐러반들의 주요 길목인 과테말라와 멕시코를 방문한 것. 본인 자신도 인도와 자메이카 이민자의 딸인 부통령은 두 나라 대통령들을 만나 난민 문제를 논의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지 마십시오. 미국-멕시코 국경으로 위험한 여행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분명히 얘기합니다. 오지 마십시오."

불법 입국자는 모두 쫓겨날 것이니 국경을 통한 밀입국은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대신 합법 이민의 문호를 열어놓고 이들 국가의 문제 해결을 돕기로 약속했다. 상황이 심각한 중남미 국가들에 식량 문제 해결과 난민 지원 등을 위해 3억 1천 달러를 지원할 것이란 기존의 발표를 재확인했고, 백신 제공도 약속했다. 과테말라엔 50만 회분, 멕시코엔 100만 회분의 백신을 공급할 예정이다. 거기에 중남미 국가들의 고질적 병폐인 부패 척결에 힘쓰고 인신매매, 마약 밀거래 단속을 위한 부서 신설도 발표했다. 

경제적 인적 지원을 통해 중남미의 빈곤, 질병, 범죄,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도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이에 대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냐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패 척결에 함께 할 현 중남미 정부들이 부정부패 당사자로 국민 심판을 받고 있는데다가 당장 주민들의 삶을 변화시켜주기엔 미흡하다는 비난 등이다. 난민 인터내셔널 단체는 해리스 부통령의 발언은 미국법에 따른 망명 권리 훼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같은 날, 미국 연방대법원은 불법으로 미국에 입국한 자에게 영주권 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1990년대 미국에 불법 입국해 인도적 보호(TPS)를 받은 엘살바도르 출신 부부의 영주권 신청을 최종 기각하며 내린 판결이다. 12개국에서 온 40만 명의 사람들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미국서 멕시코로 추방되는 중미 이민자들 ⓒ 연합뉴스

 
미국의 업보

"미국은 십 수 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의 민주적 정권을 주저앉게 했고 불안하게 했습니다. 집에 불이 나서 도망치는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해리슨 부통령으로 대변되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의견을 낸 사람은 같은 민주당 신예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다. 그는 먼저 십 수 년간 이루어졌던 미국의 중남미 정책을 반성하라고 요구한다. 국민들의 선거로 세운 민주 정부를 붕괴시킨 과테말라, 니카라과, 엘살바도르의 독재 정권을 미국이 비밀리에 또는 공개적으로 지원한 사례들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이 중남미 지역을 불안정하게 하고 민주 정권 붕괴를 도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앞으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미국의 외교, 무역, 기후, 국경 정책을 만든다면 지금의 대규모 이동 문제와 이주 원인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2선의 30대 하원의원 비난에 해리스 부통령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그것이 제 바로 제 관심사이기도 하고요."

미국 내 보수와 진보가 싸우는 전통적인 문제들 : 낙태, 총기, 동성결혼과 더불어 이젠 이민도 이제 그 한편을 차지하는 분위기다. 민주주의가 무너진 나라에서 밀려오는 난민 문제는 십 수 년간 지속됐던 미국의 중남미 정책에 대한 업보이다. 가난과 독재와 부정부패 속에 전염병까지 창궐하는 이때, 어린아이를 국경 담장 아래로 던지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바이든-해리스 정부의 난민 정책은 전과 다르길 바란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