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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발생한 지 2년째인 2021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거의 집안에 틀어박혀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이제 동네 공원이나 가까운 바닷가라도 가서는 외국에 여행 온 기분을 내보려고 안간힘이다.

역시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나는 방구석에서 '세계테마기행'부터 '한국기행', 동네한바퀴', '백반기행', 건축탐구 집', '나는 자연인이다' 여행 관련 메뉴를 돌려가며 티비와 씨름 중이다.

언제나 자유롭게 여행을 한단 말이냐. 티비 속 마스크 안 쓴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보곤 문득 '저기가 어딘데 마스크를 안 썼지?' 하다가 몇 년 전 재방송인 걸 뒤늦게 알아채고 실소를 머금는다. '아 옛날이여~'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 Homo Ludens', '이야기하는 인간 Homo Narrans'로 정의한다. 거기에 나는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을 더하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늘 자기가 있는 곳에서 다른 곳을 동경하고 산다.

놀이와 이야기도 새로운 것을 전제로 한다. 사람은 맨날 똑같은 놀이를 하지 않는다. 지겹다.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사람들에게 매번 하면 잔소리이다. 새로운 놀이와 이야깃거리가 있는 곳 그것은 공간과 시간의 여행지이다.
 
생과 사가 공존하는 시공간
▲ 아 바라나시 바라나시 생과 사가 공존하는 시공간
ⓒ 정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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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여년 전 인도 바라나시 아주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밤새 한 일본 아저씨의 인생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가 자기 동생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 이후로 그는 중장비 기술자가 되어 중동으로 떠났다.

돈을 벌면 인도 바라나시로 와서 화장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지내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중동으로 일하러 가는 일을 반복하며 산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오랜 울림을 주었다.

난생 처음 만난 동양인인 나에게 자기 인생을 이토록 서리서리 풀어놓을 줄은 그 사람도 몰랐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여행마다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같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 비밀 이야기를 들었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살던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다른 별에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다. 말도 새로 배워야 하고 먹고 자고 입는 것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 별의 말을 배우고 그 별에서 통용되는 문화를 익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여행 하면 흔히 내가 살던 공간을 떠나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시간 여행의 의미가 더 크다. 인도나 아시아로 떠나면 수십 년 전 내가 살던 풍경들과 오버랩될 때가 많다.

내 할머니들에게서 느꼈던 따듯하고 푸근한 정서로 여행자를 신이 보낸 손님으로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마음씨. 없는 살림에 아낌없이 퍼주는 음식이며 떠날 때 진심으로 섭섭해하며 남은 여행과 나의 건강을 신께 축원하던 모습들을 보면 마치 내가 살았던 것같은 전생이나 과거 어린 시절로 여행을 온 것만 같다.

그들도 이방인인 나에게 여러 질문을 한다. 특히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모두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1950년대 한국전쟁을 치른 나라가 갑자기 어떻게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됐느냐고 묻는다. 글쎄 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곰곰 생각하면 우리는 최소한 그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았다. 낮에 일하고 밤에 더 중요한 일, 놀이와 이야기하는 모임을 한다. 중요한 일은 모두 저녁에 만나 밥먹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 외국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저녁 문화가 별로 없는 그들의 나라에서 외로움이 사무쳤다.

우리는 놀이하고 이야기하며 그것을 즐기는 민족이다. 그러나 이 팬데믹 시대에는 달려온 만큼 잠시 숨을 고르고 '여행하는 인간'으로 전열을 가다듬으면 어떨까. 그리고 궁극적인 인생 여행지 나에게로 여행을 떠나보는 거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던가. 우리는 이제 그 기회의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경상일보 경상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여행하는인간, #시간여행자, #인도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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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정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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