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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 양주시 옥정호수공원에서 시바견과 아키타견을 산책시키던 50대 견주에게 공원 환경지킴이로 일하는 80대 노인이 '개를 벤치에 앉히지 말라', '입마개를 해라'라고 지적했다가 결국 개 앞에 불려가 사과했다는 보도가 나와 네티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 일로 온라인상에서는 '무개념 견주 때문에 죄 없는 80대 노인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며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5일, 양주시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80대 노인이 불려가 개 앞에서 사과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환경지킴이 노인의 폭언과 관련해 견주로부터 민원이 접수되었는데 이에 대해 사과를 권고한 적도, 당사자인 환경지킴이 노인이 직접 사과를 하러 나간 적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노인일자리 담당기관 담당자와 노인일자리 참여 대표 어르신 그리고 견주 총 3명이 만난 것은 사실"이라는 설명이다(관련 링크). 

입마개 요청이 죄냐고요?
 

시바견과 아키타견의 보호자인 50대 부부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80대 환경지킴이 노인이 갑질을 당했다'는 요지의 기사가 나간 뒤 지역 카페에 글을 올려 '여자인 아내가 개를 데리고 나가면 산책할 때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욕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경우를 겪는다'며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 미화 단체에 민원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여전히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견주를 만나 당사자인 동료 환경지킴이를 대신해 사과했다고 알려진 노인일자리 참여 대표 어르신(환경지킴이 팀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당사자인 환경지킴이 노인은 '잘못이 없고, 사과할 것도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하도 신고를 하니까. 우리가 이런 일을 하다보니까 약자가 되는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기도 했다.  

즉, 양주시까지 나서 해명자료를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양측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고, 사건 당시와 사과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사실관계를 떠나, 이 사건을 두고 먼저 견주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 건 일차적으로 혼란스러운 보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더해, 나는 일종의 사회적 편견도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 '환경지킴는 정당한 요청을 했을 것이고, 우리 개는 안 문다고 말하는 무개념 견주들이 흔하니 이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이들도 많은 것 같다.  

물론 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보호자에게 있고, 안전하게 목줄을 잡고 산책하고 배변을 깨끗하게 치우는 등 펫티켓을 지키는 것은 견주로서 당연한 책임이다. 이를 지키지 않거나 주변에 피해를 준다면 마땅히 비난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견주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결국 중대형견을 키우다 보면 '개가 커서 무서운데 입마개를 왜 안 하느냐'라는 시비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동물보호법에 의거한 맹견 8종에 한해 입마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도사견, 핏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마스티프 등으로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흔히 키우는 견종은 아니다. 물론 공격적이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맹견이 아니더라도 입마개를 착용하도록 권고한다.

혹은 교육이나 이물질 섭취를 막는 목적으로 입마개를 씌울 수도 있고, 입마개 훈련 자체도 기본적으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자발적인 선택 사항이며, 인식 변화를 위해 교육할 수는 있겠으나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입마개 요청이 죄?'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올라오는 등 입마개 요청을 정당한 것으로 보는 의견들이 많았다. 입마개 요청은 죄가 아니지만, 얌전히 산책하다가도 매번 '법적으로 입마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견종'이라고 해명해야 하는 것은 견주들의 몫이다.

입마개를 요청하는 것이 정당한 시민의 권리이며, 입마개를 착용하면 '개념 견주'라는 뉘앙스의 기사들이 매번 당연하게 쏟아지다 보니, 마치 사회적인 합의처럼 느껴지는 탓에 입마개 없이 개를 산책시키는 견주들은 무개념이라는 비난에 쉽게 휩싸인다.

특히 '공원 환경지킴이'라는 공식적인 책임을 수행하는 분들이, 공원을 이용하는 반려견들이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계시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반려견 목줄 착용이나 배변 처리 등 지적해야 할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환경지킴이 분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큰 개는 입마개를 해야 한다'는 등의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적하면, 견주들은 불필요한 해명을 반복해야만 한다. 이런 일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서로가 친절하게 요청하고 친절하게 해명하면 좋겠지만, 굳이 같은 대화가 수십 번, 수백 번씩 반복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대형견 산책하면 생기는 일
 

나도 대형견을 키운다. 대형견과 함께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커다란 글씨로 '애완견 목줄 착용', '배변 수거', '입마개 착용'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입마개 착용' 항목에는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동물보호법에 의거한 맹견'이라는 추가 설명이 작은 글씨로 보인다.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확인하기 어려울 듯하고, 노인들은 더더욱 지나치기 쉬울 것이다.

실제로 내게 '개가 입마개를 안 했다'거나 '개가 왜 잔디를 밟느냐'며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자주 마주친다. 노란 조끼를 입은 공원 환경지킴이 분들도 다가와서 '입마개를 해야죠'라고 지적한다. 그런 일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반복된다. 
 
펫티켓 관련 현수막
 펫티켓 관련 현수막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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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입마개 착용 의무인 맹견이 아니다'라며 나름대로 자세히 해명했지만 그런 말이나 호통을 열 번, 스무 번씩 듣다 보면 매번 이런 일을 당하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들을 탓하기보다는, 한쪽 입장에 치우쳐 누군가에게 다소 거칠게 입마개를 요청하는 것조차 합당하고 정당한 정의 구현인 것처럼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는 언론을 탓하고 싶다. 

반려견을 키운다는 이유로 주변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되겠지만,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불필요하게 지적받지 않는 일은 그만 겪고 싶다. '입마개 요청이 죄'는 아니지만, 반복적으로 당하는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인식이 쌓여 불필요한 갈등이 깊어질 수도 있다. 누구든 억울한 갑질을 당하지 않고, 일방적인 약자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다루는 좀 더 세심한 관점이 필요하다고 본다.  

태그:#양주, #반려견, #갑질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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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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