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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이직이 확정되고 제주시로 근무지가 정해졌다. 버스와 승용차의 길을 살피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부르면서 1시간짜리 아침저녁 버스 여행이 시작되었다.

자가운전을 하면 40분, 버스정류장마다 서서 필요한 사람들을 하나둘 태우고, 내려주며 가면 60분이 걸리는 출퇴근 교통수단을 버스로 결정하고 괜히 설레기까지 했던 첫 출근 전날 밤.

제주도의 대중교통은 면적에 비해 그 수가 적은 편이어서 배차 간격이 길고, 또 혹시나 하는 변수를 염두에 둬서 2시간 일찍 나왔다. 그랬더니 1시간이나 일찍 출근해 괜히 커피 한 잔 하고 사무실로 올라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아침에 부리는 여유라니 바깥 풍경이 모두 아름다워 보였다.
  
매일 하는 식사메뉴 고민엔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이 최고고, 운전도 역시 '남이 해주는 운전'이 좋다. 평소 시간 쪼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1시간의 버스 여행 동안 시간을 열심히 쪼개며 회사로, 집으로 향하는 길이 무척 적성에 맞고, 즐겁다.
 
출퇴근 버스에게 애칭을 정해줬다. 푸릇푸릇 이파리
▲ 매일 버스여행 시켜주는 고마운 이파리(282번 버스 애칭) 출퇴근 버스에게 애칭을 정해줬다. 푸릇푸릇 이파리
ⓒ 김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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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출근길의 루틴은 이렇다. 친절하고도 똑똑한 버스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을 하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매일 거의 정확하게 도착하는 282번 버스에 기분 좋게 몸을 싣는다.

최대한 편한 자세로 널브러져야 하기에 2자리가 연속해서 빈자리를 찾아 안전띠를 꼭 하고,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아 취한다(서귀포시→제주시, 다행히 특별한 날 아니고서는 보통 앉아가는 편이다).

두 번째 스텝은 밤 사이 올라온 SNS 속 이웃들 소식 둘러보기. 그리고 내 소식도 한 장 업로드 하며 안부 전하기.

세 번째 스텝은 전자책 어플을 열어 오디오북을 연다. 장르도 주제도 그날 그날 당기는 카테고리로 들어가 부담없이 클릭해 열어준다. 혼자인 듯 혼자 아닌 듯 좋은 목소리로 읽어주는 책과 함께 '버스 출근길이 꽤나 효율적이야'라고 뿌듯해하며 처음엔 열심히 귀 기울이고, 중간부터는 깊은 잠 속으로 갑자기 들어간다(책은 잘못이 없다. 아침이라 졸릴 뿐).

그리고는 최첨단으로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의 한 정거장 알람에 깜짝 놀라 눈을 뜬다. 버스 벨을 누르고, 회사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 착지한다. 작은 여행을 마친 터라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다.

스무 걸음쯤 걸어 아메리카노는 진한 원두로 따뜻하게, 포장 구매로 주문하고, 커피와 함께 8층 사무실을 두 계단씩 걸어 올라간다.
 
▲ 매일 보는 풍경도 선물이 된다.
ⓒ 김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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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회사가 가까워져 갈수록 막히는 교통체증과 주차 눈치 게임으로부터 해방되고, 정확한 시간에 나를 하차시켜주기까지 해 하루하루가 상쾌하다.

그리고 퇴근길 버스 여행의 루틴은 이렇다. 아침과 같은 버스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버스 타이밍에 맞춰 엘리베이터를 잡고, 정확히 탑승한다. 탑승 성공의 기쁨과 함께 꿀잠을 시작한다. 애플리케이션의 친절한 알람으로 제때 잘 내린다.

평일마다 나는 하루 두 번 작은 여행을 한다. 운전하면 놓치기 쉬운 바깥 풍경을 자유로이 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버스 안 나만의 루틴을 차곡차곡 밟아가는 재미도 이 작은 여행의 참맛이다.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출퇴근길일 수 있겠지만 조금만 시각을 바꾸고, 아예 시간을 앞당겨 그 안에 '여유'를 조금 넣어주면 어떨까. 월요병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태그:#버스여행 , #제주여행, #직장인공감, #출퇴근, #출퇴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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