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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 Mother 어머니
ⓒ pixabay(상업적 무료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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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에 불러본 이름인가. 어머니 생전에도 '엄마'라고 부른 게 꽤 오래전이다. 아니 정확히는 어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는 어머니가 너무도 안쓰럽고, 어머니 당신께서 아들인 내게 가장 듣고 싶어 할 말 중 하나 일 것 같아서 '어머니' 대신 '엄마'라고 불러 드렸다. 하지만 부르는 내내 어색했고, 살갑게 부르지 못해서 늘 죄송스러웠다.

생각해보니 내가 어머니라고 부른 세월보다 '엄마'라고 부르며 살았던 세월이 더 길었다. 결혼 전에는 당연히 엄마라고 불렀었고, 결혼 후 한동안도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아이들의 교육을 핑계로, 아이를 키우는 다 큰 어른이 너무 철없는 자식 같다는 핑계로 그렇게 난 '엄마'라는 호칭을 버리고, '어머니'라고 불렀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런 핑계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결혼한 아들을 너무 '아들, 아들' 하며 여전히 어린 자식 대하듯이 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그땐 너무 싫었고, 조금은 어머니와 거리를 두고 싶었던 생각으로 그렇게 일방적으로 호칭 정리를 해버렸다.

어머니 평생이라고 해봤자 당신께서 날 낳으시고 고작 45년 밖에 듣지 못했을 말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모질게 끊어낸 스스로가 야속했고, 당신께서도 늘 그리웠을 것 같다. 어머니 당신께서 그리 원하셨던 것도 아닐 텐데 내가 그렇게 잘라낸 게 지금 생각해보면 늘 마음이 쓰이고, 아쉬움이 남는다.

작년 8월에 어머니를 모셔둔 추모관을 찾아뵙고, 정확히 9개월 만이다. 코로나를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룬 게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5월 어버이날 혼자 계신 아버지를 찾아뵙지 않은 것이 내내 신경도 쓰였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 생각이 요즘 부쩍 더 났다.

살아생전 보고 싶고, 그립다는 느낌이 많이 들지 않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문득문득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갖게 했다. 막상 그런 생각을 하니 시간을 내서 어머니께 한 번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내 눈치를 알아챘는지 아니면 혼자 계신 아버지가 걱정이 됐는지 아내가 주말 저녁 내게 먼저 말을 꺼냈다.

"다음 주에 시간 내서 아버님한테 한 번 다녀오는 거 어때요?"
"아버지가 한 번 왔다 가라고 하던가요?"
"아뇨, 혼자 계신데 자주 찾아뵙지도 못 하고, 그러지 말고 시간 내서 다녀와요. 좋아하실 거예요."
"다음 달이면 아버지 건강검진 때문에 올라오시는데 뭐하러요. 괜찮아요."
"그러지 말고 지수랑 다녀와요. 가서 엄마한테도 다녀오고요."


아내의 고마운 이런 권유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 내지는 않아도 아내는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를 문득문득 그리워한다는 것을. 갑작스러운 계획이지만, 딸아이와 함께 항상 마음으로 그리워하던 곳이었던 고향집으로 달려갔다.

미리부터 내려간다는 소식에 동생과 조카도 함께 가겠다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그렇게 삼대가 모였다. KTX를 타고 내려가 역을 빠져나올 때 아버지는 한달음에 마중을 나오셨다. '괜찮다', '뭐하러 내려와'를 연발하시던 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자식들과 손주들이 온 오늘이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지난주에도 어머니께 다녀왔다는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을 때마다 어머니가 생전에 즐겨하셨던 음식을 간소하게 차려 들고 우릴 마중 나오셨다. 항암 치료 때문에 매 끼니 식사가 불편하셨을 어머니를 위해 늘 밥상에 올리셨던 숭늉, 밥보다 더 자주 드시던 유산균 음료, 그리고 과일과 술까지.

생전에도 많이 드시지 않았던 식사 양을 고려해서인지 아버지는 딱 어머니가 드셨던 양으로 일부러 맞춘 것처럼 준비한 음식 양도 딱 그만큼이었다. 그렇게 우린 어머니를 모셔둔 곳으로 갔고, 오랜만에 난 어머니를 마주하게 됐다.

"엄마, 잘 계셨어요? 자주 못 와봐서 미안. 그래서 오늘은 동생하고, 손녀들까지 우리 삼대가 다 왔어요."
"그래. 네 엄마 오늘 호강하는 날이네. 아들, 딸에다 손녀들까지 왔으니. 기분 좋겠구나."


동생이 사 온 예쁜 카네이션도 붙여 드리고, 차려온 음식들을 올리고 오랜만에 어머니 사진에 눈도 맞췄다. 이렇게 마주한 어머니께 난 안부도 물었고, 어머니가 우리 가족 안부도 궁금해할 것 같아 아들과 아내 얘기도 해 드렸다.

이렇게 어머니와 마주해 이야기하는 나를 보시던 아버지가 조금은 울컥하셨는지 말을 꺼내다 잠시 어머니 납골묘 안 사진들로 시선을 옮기셨다. 그러고선 동생과 내게 엄마를 부르고, 이런저런 얘길 하는 우릴 보니 당신께서 그렇게 마음이 좋고, 기쁘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정작 난 정말 마음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는 꺼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 싶었다고, 그리웠다고.

그렇게 어머니와 인사를 마치고 어머니의 납골묘 문을 닫으며 한참을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봤다. 또 한동안 찾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쉬움과 그리움에 조용히 스마트폰을 꺼내 어머니 사진을 내 폰과 눈에 담았다. 생전에 많이 찍지 못했던 사진이어서 그런지 납골묘 안의 어머니 사진이 더 애틋해 보였다. 그렇게 돌아서며 난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인사를 건넸다.

"엄마, 또 올게요. 그땐 엄마 하나뿐인 며느리랑 손주까지 데리고 올게요. 그때까지 잘 계셔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태그:#엄마, #그리움, #고향,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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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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