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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중에는 심각성을 모르거나 가해 사실이 분명한데도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중에는 심각성을 모르거나 가해 사실이 분명한데도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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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신고를 받고 관련 학생 면담을 통해 사실 확인을 하는 일. 그리고 학부모에게 연락해 간단한 사안 설명 후 학교 방문을 요청하는 일 그리고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를 만나 면담하는 일 하나하나가 어렵고 힘든 일이다.

조사하다 보면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중에는 심각성을 모르거나 가해 사실이 분명한데도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피해 학생의 입장에서 그것이 왜 심각한 폭력인지 설명하고, 사실을 인정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잘못은 순순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듯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여 다행이다 싶었는데, 추후 조사에서 잘못을 일부만 이야기한 것으로 밝혀져 어쩔 수 없이 밀려드는 배신감에 맥이 풀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학부모 역시 자식의 잘못은 바로 인정하는 경우보다는 "뭐 그 정도 갖고 그러세요? 아이들 다 그렇죠" 하거나 피해 학생 편만 든다고 불만을 터뜨리거나, 학교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녹음을 하는 경우, 수 없는 말 중에서 말 한마디를 문제 삼아 교사가 아니라고 하거나, 아이가 받을 상처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나쁜 사람이라는 등의 말로 모멸감을 주는 경우도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그런 부모님들일수록 학교에서 뭐한 게 있냐고 따지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무도 학교폭력 담당부장이나 책임 교사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현재 학교 현실이기도 하다.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노력하다 학부모들에게서 선생님들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나, 선생님들이 아이를 위해서 말하고 행동한다는 믿음이 점점 없어져 간다는 것을 느낄 때면 '내가 지금 뭐 하나?' 싶은 자괴감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물론 아직은 선생님들이나 학교에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더 많기는 하다.

며칠 동안 쏟아지는 학교폭력 신고와 그에 따른 조사와 면담으로 정신 차리기 어려웠다. 학생과 학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대한 객관적 태도로 사실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타협의 여지를 발견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고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서너 건이 동시에 발생하고, 관련 학생들이 많은 경우는 특히 그랬다.

그렇다고 대충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늘도 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 집중하고 달래고 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오해의 소지 없도록 학부모에게 이야기하다 보니 7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그래도 해결의 희망이 보이면 힘든지 모를 텐데, 오늘처럼 서너 건 모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경우는 없었는데... 너무 힘들고 피곤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담임 선생님의 눈물

육체적, 정신적 피곤함에 멍하니 있는데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학생의 담임선생님이 핼쑥한 얼굴로 찾아왔다.

"선생님, 잠깐 시간 좀 있으세요?"
"네. 선생님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선생님 뵙고 ○○이 조사 결과 듣고 가려고요."


선생님에게 조사 내용 중 ○○이와 관련된 부분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전 정말 제가 맡은 반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이런 일 벌어질까 봐 걱정돼 심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일매일 이야기하고 했는데... 솔직히 아이들에게 배신감도 들어요. 그러다가 또 제가 게을러서, 능력이 없어서 벌어진 일 같기도 하고요."
"선생님, 물론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 벌어진 건 맞지만, 그게 어떻게 선생님 탓이에요. 그리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잘 모르고 한 일이에요. 아직 애들이잖아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좀 더 세심하게 점검하고 살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죠. 몇몇 선생님들이 담임이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생기냐고 하시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선생님, 전 이런 일이 벌어지면 혹시 내가 놓친 게 없나 점검하고 반성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내 탓이라고 과도할 정도로 자책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선생님을 잘 모르지만,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는 건 알아요. 선생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신 분들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분들이 자기가 맡은 반에 최선을 다하는 분이라면,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모르니까 그런 말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 그분들 이야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어떻게 했는지 다 알 거예요."


갑자기 선생님이 울기 시작했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버린 것 같았다. 애써 눈물을 감추시는 모습이 더 안타까웠다. 그리고 너무 부끄러웠다. 나에게 이 훌륭한 선생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위로하고 싶었다.

"선생님, 전 언젠가부터 흠 잡히지 않을 일만 해요. 그리고 아이들이 불쌍해 보이지도 않아요. 그저 정해진 매뉴얼 대로만 할 뿐이에요. 그리고는 교사를 믿지 않는 풍조에서 어쩔 수 없는, 현명한 처신이라고,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열심히 아이를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 자신 때문이라고, 내가 중학교 교사로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시는데... 그런 선생님을 보니 제가 너무 부끄러워요.

선생님은 저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이고 정말 교사다운 분이에요. 그러니 이번 일을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면서 혹시 놓친 부분이 있나 점검하는 정도로만 생각하셨으면 해요. 절대로 자책하지 마시고요. 지금까지 잘해오셨듯 앞으로도 분명 잘하실 거예요."

"아니에요. 제가 뭘. 아무튼 감사해요. 선생님."


힘없이 돌아가는 선생님을 보며 '저런 분이 있어 그나마 학교가 유지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동안 쏟아지는 학교폭력 문제 처리로 투덜댔던 내게 선생님은 큰 가르침을 주셨다. 선생님을 내가 위로해 드린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나를 위로해 주셨다.

내일 또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행동에 또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동안 선생님 덕분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아이와 학부모를 대할 것 같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희망입니다."

태그:#학교폭력, #교사의 눈물, #학교 불신, #희망,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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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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