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한겨레>에 실린 <스포츠혁신위 권고 2년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기사를 읽고 스포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아직 왜곡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글의 요지는 스포츠혁신위원회(아래 혁신위)의 스포츠 패러다임 전환 권고가 '이상'이었으며 '현실'과의 차이를 드러내 결국 "절반의 성공 정도만 거뒀다고 볼 수 있다"라는 것이다.
 
2019년 초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발족한 혁신위 권고안의 기조는 스포츠 패러다임의 전면적인 전환이었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등 실행기관에서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으며 현장 또한 변화하지 못했다. 그런 사이 고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사건을 일어났음에도 실행기관의 구태를 탓하지 않고, 혁신위 권고내용과 그 과정을 문제 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혁신위는 소년체전 폐지가 아닌 '발전적 전환'을 권고

첫째,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소년체전 폐지'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소년체전 폐지'라는 말은 권고안 어디에도 없다. 혁신위가 '학생스포츠축전'으로 발전적 전환을 권고한 것은, 중등부와 고등부를 통합하고, 전체 학생의 60%가 넘는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학교스포츠클럽 대회와 통합을 통해, 고사 위기에 처한 학교운동부를 일으키고,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스포츠 천재 발굴을 위한 축제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특히 전국체전 기간 고등부 학생선수들은 일반 성인 선수와의 합동훈련과 대회 중 함께 합숙하는 과정에서 매우 비교육적인 사각지대에 노출되고 있다. 사실 전국체전에 고등부가 분리되지 않은 이유는 교육적인 고려가 아닌, 경기력과 진학‧진로 관련 등의 고려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기자의 주장처럼 2025년까지 '전국체전 개최 장소가 결정돼' 있고, '고교 학생선수를 빼면 대회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전국체전에 고등부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은 학생선수를 운동선수로만 이해한 판단이다.
 
스포츠인권전담기구는 권고대로 즉시 설치했어야

둘째, 스포츠윤리센터의 설치는 혁신위가 2019년 5월 7일 가장 먼저 권고한 내용이다.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스포츠 현장의 변화를 위해 즉시 설치과정을 밟았어야 했으나, 역시 실행기관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이듬해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설치에 착수하였으나, 권고내용의 핵심인 독립성, 전문성, 신뢰성을 갖추기 위한 인력과 예산을 갖추지 못하며 진통 끝에 초대 이사장이 사임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주중대회 관행을 개선하지 않는 이유

셋째, '학생선수들의 학기 중 주중 대회의 주말 대회 전환이 사실상 답보상태'인 것은 경기단체에서 수십 년간 학생선수의 교육 권리를 무시하며 주중 대회를 운영해온 관행을 깨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선수, 지도자, 학부모의 태도나 관성은 대회 개최 권한을 가진 경기단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종속변수에 불과하다. 대회 수를 대폭 축소하지 않고도 주말과 휴일 및 방학 기간 등에 대회를 개최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의 본질은 학생들이 수업해야 할 시간에 훈련에 참여하고 대회에 나가는 것 자체가 당연한 것처럼 수십년간 관행으로 굳어져 온 부분이다. 수십 년간 이어온 주중 대회 관행으로 인해 소위 '운동도 공부'라는 잘못된 인식이 만들고 아예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주말 대회 전환 과정이 다소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어른들이 감수해야 할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넷째, 엘리트스포츠 시스템의 혁신이 입시제도 등과 연결돼 있어서 어렵다는 것 또한 시대변화를 직시하지 못한 판단이다. 대회 수는 주말 대회를 통해서 전혀 축소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대회를 전국규모로 개최하는 경기단체의 관행에서 벗어나, 미국과 일본의 사례처럼 학생선수 대회를 주관하는 별도 기구 설립을 통해 대교경기가 지역별 규모와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또한 대입 체육특기자 정원은 이미 많은 대학에서 축소하는 추세이고 '공부하며 운동하는' 학생선수를 선발하는 다양한 전형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또한 일선 학교에서는 이러한 전형방식에 발맞춰서 입상실적에 매몰된 과거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진정한 혁신은 본체를 바꿔내는 의지와 실천

스포츠 혁신의 필요성은 너무나 불합리한 '현실'이 만연하고 있는 현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때마다 '현실'적으로 시행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현장의 '현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적이라는 이유로 개혁의 요구를 회피해 왔다. 그렇게 회피하고 외면하는 사이 우리의 학교운동부 현장과 스포츠 현장은 폭력과 인권 침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혁신이란 거죽을 홀랑 벗긴 뒤 태어나는 어려운 일"임에 동의한다. 그러나 선수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상황에 눈감는 것이 어찌 혁신을 위한 '지혜'일 수 있는가. 애초에 '선과 악'을 구분한 것은 혁신을 '현상 유지'의 시선에서 바라본 자들의 이유였다. 권고 이후 2년이 지난 현재도 인권유린 '현상'이 '현장'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본체를 혁신해내려는 의지와 실천 없이, 일회성 제스처로 적당히 시간에 묻히기를 바라는 것이 스포츠 혁신의 의지일 수 있겠는가.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스포츠혁신위원회 혁신위 스포츠혁신 스포츠개혁 소년체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스포츠 분야와 학교체육, 그리고 학교운동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상과 그 배후의 구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언젠가는 변화해야 하고 또 변화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비판적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