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8 19:10최종 업데이트 21.05.28 19:10
  • 본문듣기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소인수 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해외 방문지로 미국을 택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전통적 한미관계의 재확인은 물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양국 관계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21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두 가지 함의점을 담고 있다.

첫 번째로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현재의 이익보다 앞으로 오게 될 미래의 잠재적 효과에 방점을 찍는 입장을 보였다. 두 번째로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래의 한미관계가 제로섬 게임(한쪽의 이익은 다른 쪽의 손해)이 아닌 윈윈전략(양쪽의 동시 이익 가능)을 전제로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미 관계의 전환점을 이룬 성과다.

새로운, 두 가지 함의

과거 오랜 시간 한미 양국관계를 통해 한국이 얻고자 했던 것은 원조와 보호였다. 그리고 한미관계는 본질적으로 일방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양국의 주고받기가 상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방적이었고, 복수의 선택지 없이 미국 일변도의 동맹관계였기 때문에 배타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대급부로 한국이 내줘야 하는 것들은 매우 불공정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다 미국은 트럼프 정권 때 안보 지원에 대한 대가로 갑작스럽고 터무니없는 고액 청구서를 들이밀었다. 자국의 이익 관계에 대한 고려나 불공정 조건에 대한 개선 노력은 없이 주한 미군 방위비 증액 요구에 막무가내였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그것은 '갈취'라면서 말렸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한미 관계가 원조에서 갈취로 전환된 시기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시간주의 포드 자동차 로슨빌 부품공장을 시찰하며 얼굴 가리개를 들어보고 있다. 2020.5.21 ⓒ 연합뉴스/AP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쟁국은 물론 동맹국까지 제압하려 들었던 트럼프 행정부와 차별성을 보여주고 싶은 바이든 행정부에게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큰 성과를 안겨 줬다. 바이든 행정부가 말하는 '미국의 귀환'이 어떤 모습인지 국제사회 특히 동맹국에 구체적 실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25일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의 비위를 공개적으로 맞추면서 미국의 외교, 기술 분야의 성과를 얻어냈다면서 그의 외교적 수완을 평가했다.

양국의 공동 이익이 국제 질서의 균형과 안정에 부합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과 새로운 동맹관계로 아시아에서 더 강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게 됐고, 한국은 국력에 걸맞은 국제적 영향력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갈 발판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국방력, 경제력에 비해 외교적 영향력은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익에 직접적이지 않은 이슈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안보의 필요성도 국지적에서 벗어나 글로벌화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정상회담 선언문에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이 언급된 것이 좋은 예다. 우리나라 수출의 절대량이 남중국해를 지나는 만큼 이 지역의 안정은 국익에 직접 부합한다.

이처럼 과거와 다른 모습들의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지켜본 주변국들은 그 영향이 어느 방향을 향할지, 어디까지 영향이 미칠지 예측에 공을 들이지만 아직은 뚜렷한 윤곽을 잡기가 쉽지 않은 눈치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일본도 아직 평가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 등 다른 지역도 미국의 동아시아 중심 전환 외교 전략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현재보다 미래의 담론에 관여된다고 봐야 한다. 동아시아 안보의 새 판 짜기에 한 발 더 깊이 발을 담근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외교 현안에 국제 문제 관련된 적극적 역할을 하나 더 부여했다.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에게도 마찬가지다. 1년 후 새 정부를 구성하고자 하는 모든 정치 세력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의제들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응답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대북 관련 문제와 인도 태평양 지역 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다.

[대북 이슈] 미국의 대북 행동지침 왜 안 나왔나

대북 관련 이슈는 매우 복합적이다. 그런데 해석은 대부분 부분적이고, 전체로는 균형을 이룬다 해도 사안별로는 모순되는 듯 보이는 것들도 많다. 그래서 더욱 종합적이고 거시적 판단이 필요하다. 대북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 의제 가운데 한국이 가장 못 챙겼다고 평가된 분야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미국의 대북 행동지침이 나오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결과는 그렇지 못했고 이에 대한 비판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 입장을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1년을 남기고 있지만 바이든 정부는 이제 막 문을 열었을 뿐이다. 아직 4년이 남았고 경우에 따라 4년이 추가로 남았다. 그나마 수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대북 정책 아웃라인이 예상보다 빨리 발표된 느낌마저 있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내용이지만,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합리적이라는 의미도 된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를 포함한 전통적 미국의 대북 정책과 트럼프 행정부의 그것을 비교해보면 답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 2000년대 이후 역대 미국 정권은 위기의식 속에서 비대칭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어온 북한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론을 가졌다.

막다른 동굴 속에서 먹을 것이 차단되면 스스로 걸어 나올 줄 알았지만, 북한은 계속 버텼다. 동굴 밖이 더 안전하다는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미국이 게을렀기 때문이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결과적으로 그랬다. 게으른 사냥꾼은 절박한 여우보다 먼저 지친다. 미국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 집중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1991년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 이후 한국은 미국에 충분한 기회를 줬지만 30년 동안 미국의 역대 정권은 북한이 비대칭 전력을 확장할 시간만 벌어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은 그 사이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했고 사실상 핵 보유국임을 선언했다. 북한 지역은 물론 한반도 비핵화에 협조적이었던 우리 입장에서는 통탄할 노릇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실행 과정을 볼 때 아쉬움은 더욱 크다. 당시 우리가 확인한 것은 북한은 미국이 뭔가 내줄 것이 있다고 확실히 판단되면 길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서툰 엇박자 외교팀에도 불구하고 그 점은 분명 우리가 확인했다.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과 6월 싱가포르 성명을 계승해줄 것을 요구한 한국 정부에 미국의 새 행정부가 응한 것도 같은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넘는 두 정상 27일 오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2018.4.27 ⓒ 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비록 한국의 현 정부 하에서는 촉박할지 몰라도 차기 정부가 연속성만 가진다면,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에 기대를 가져볼 희망이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큰 성과다. 이것 역시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현재의 가치보다 미래의 잠재적 효과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구체적 성과의 부재를 지적하는 비판자들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차기를 준비하는 여야의 여러 주자들에게 어떤 대북정책을 취할지 선택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공화-민주 두 정부에서 연속성을 증명했고 한국의 현 정부가 지지하고 있는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을 계승할지 다른 선택을 할지 밝히도록 해야 한다.

[국제 이슈]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하지 않는 전략

국제문제와 관련한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의미는 더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 한국이라는 지원군을 확보했다. 대북 문제가 한국 측의 주요 관심 의제였다면 인도 태평양 전략과 관련 한국의 지지를 얻어내야 하는 것이 이번 정상회담을 앞둔 미국의 과제였다.

미국은 한국의 신남방정책을 지지, 협조하는 방식으로 인도 태평양 전략에 한국을 동참시켰다. 미국으로서는 기발한 아이디어였고 한국 역시 아세안 지역의 미래 가치에 대한 전략에 미국의 지지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남중국해 및 아세안 지역에 대한 적극적 관여에 대해 중국의 반발과 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 과거 사드(THAAD) 설치에 대한 보복이라는 선례가 있지만 그것은 역방향의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즉 중국 입장에서의 선례라는 의미다.

중국은 미국의 한반도 사드 설치에 대해 무역과 문화 차원의 보복을 가했지만 그 결과는 중국의 실패로 귀결됐다. 구체적으로 공공외교 차원의 재앙에 준하는 실패였다. 공공외교란 정부 대상이 아닌 민간 대상의 외교를 말하는데 소프트 외교, 문화 외교라고도 불리지만 전략적으로 그리 '소프트'하지만은 않다.

한 국가의 이미지를 대상국 국민들에게 긍정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이 필수인데 시간,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인내와 치밀함이 필요하다. 반면 한번 이미지가 악화되면 이를 다시 회복하는데 전통 외교보다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된다.

미국의 사드 설치는 한국의 대다수 일반 국민들의 일상에 구체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대의명분과 추상적, 거대 담론적 차원의 반발이 있었을 뿐이다. 반면 이에 대한 중국의 무역, 여행, 문화 분야의 보복은 많은 일반 국민들의 삶에 구체적인 해악을 입혔다. 한국인들의 반중 감정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를 기해서다.
 

한국자영업자총연대를 비롯한 300여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단체 대표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은 사드(THAAD)와 관련한 무차별적인 모든 보복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2017.3.17 ⓒ 최윤석

 
한국은 중국과 달리 일반 국민의 투표로 정권을 선택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유권자에게 중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는 결국 대중국 정책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한국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실제 정상회담 이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반등한 것도 사실이다.

합리적 판단을 하는 중국이라면 '사드 보복'의 득실 관계, 그리고 최종적으로 한국을 미국 동아시아 정책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도록 놓친 외교적 실패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중국이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당시 한국을 상대로 보복만 하지 않았어도 한중관계가 지금과 같았을까?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온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도 결국은 중국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다. 중국은 미사일 지침 종료에 대해 '한국의 자주성 회복'보다 '미국과 더 가까워진 한국'으로 이해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 확장을 지지하며 동아시아에서의 역할 분담을 도모하듯이 한국의 미사일 주권을 지지하는 모양새로 동아시아의 안보 파트너로 견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바라보는 한국은 일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의 외교안보 전략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다고 중국은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을 견인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반면 한국 외교안보 전략의 핵심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지 않고 역내 평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중국 국제문제연구원 국제전략연구소 쑤햐오훼이(苏晓晖) 부소장이 한 방송에서 언급한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그러한 중국의 인식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동북아시아 안보 전략은 일본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정학적으로 그렇고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일본은 분명히 대륙세력 vs. 해양세력 구도 하에서 대미 전략과 한반도 전략을 세우고 있다. 쿼드(Quad) 구상도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다. 일본과 미국의 외교적 접점은 그 전제에서 이뤄진다. 

반면 한국은 역사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충돌을 늘 겪어 왔다. 한민족의 생존전략은 양대 세력에 경우에 따라 저항하거나 중재하는 데 역점을 둬왔다. 이것은 모든 반도 국가의 지정학적 조건이기도 하면서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의 안보 전략 핵심은 중재 협상(Negociation)에 있었고 궁극적 목적은 지역 평화였다. 한국과 미국의 외교적 접점은 따라서 그 전제에서 이뤄져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한국은 동북아 지역 평화를 원할 뿐이다. 이점을 중국도 잘 알고 있다. 한국은 세간에서 보듯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동맹이면서 중국의 우방일 수 있다. 중국도 이번 한미 정상회담 이후 그 기대를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어쨌든 한국과 미국은 20년만에 상대적 진보를 표방하는 정권이 만났고 전례 없는 정상회담의 결과를 도출했다. 미국의 의도가 한국에 득이 되며 한국의 바람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할 때 두 나라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많다. 네고시에이터(Negotiator, 협상가)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1년을 기대해 본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