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달에 딱 맞춤인 영화를 찾았다. 노르웨이 영화, 아릴 외스틴 오문센과 실리에 살로몬센 감독의 <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이다. 단출하게 떠난 가족캠핑에서 계곡 틈에 빠져버린 아빠를 구해야만 하는 어린 자매의 숲 속 모험 이야기라니, 이 얼마만의 흥미진진함인지!

모험심이 사라진 지 백만 년은 된 듯한 기분인데 이 영화 덕분에 다시 어린 시절 뛰놀던 뒷산으로 돌아간 듯 가슴이 뛴다. 모험심만 되살아난 게 아니라, 고난을 헤쳐나가는 어린 자매의 순수함이 녹아든 가족애도 느낄 수 있으니 온 가족이 함께 보길 강추한다. 
 
차분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9살 베가와 에너지 넘치고 제멋대로인 5살 빌리는 아픈 엄마를 병원에 남겨두고 아빠와 함께 캠핑을 떠난다. 엄마 없이도 어린아이들과 아빠가 캠핑을 떠날 수 있다니, 시작부터 놀랍다.  

아빠는 숲에서 딸들에게 뭐든 보여주려고 한다. 개울에서 맨 손으로 물고기를 잡는다며 물속으로 와락 빠져들기를 주저치 않고, 산너머로 지는 해를 보며 딸들과 숫자를 센다. 자녀들에게 자연과 어우러지며 경이로움을 선사할 줄 아는 어른이구나 싶어 반갑다.

딸들과 동화 같은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아빠는 계곡 가 바위 위에서 뒷걸음질을 치다 그만 틈새에 빠져버린다. 한쪽 다리까지 다쳐버려 도저히 혼자 힘으로 구멍 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고, 핸드폰마저 망가져 버린다. 이제 오직 어린 베가와 빌리만이 오던 길을 되돌아가 구조요청을 할 수 있다.
 
    베가와 빌리가 건너지 못한 계곡 위 나무다리

베가와 빌리가 건너지 못한 계곡 위 나무다리 ⓒ 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서둘러 거슬러 가던 자매는 어제 아빠와 함께 건넜던 계곡 위의 나무다리에 다다르자 아빠 없이는 도저히 무서워 못 건너겠다며 주저한다. '안 돼, 안 돼. 얘들아, 그대로 가야 금방 농장으로 갈 수 있어!'라고 나라도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쳐보지만 아이들은 결국 먼길로 돌아가기를 선택한다. 늘 그렇듯 모험은 정해진 길을 벗어난 이때부터 제대로 시작이다. 

드넓은 숲 속에서 베가가 앞장서 걸어가 보지만, 아무리 걸어도 이쪽에도 강, 저쪽에도 강밖에 보이지 않는다. 얕은 쪽으로 강을 건너고 아빠처럼 나무 위를 올라가 주변을 살펴도 아는 길이 나오지 않자 자매는 맥이 빠진다. 게다가 배고픈 빌리가 혼자서 남은 비스킷을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자매는 크게 다툰다. 베가는 빌리를 혼자 두고 떠나버리려 하지만 빌리가 사과를 하자 다행히 곧 돌아와 화해를 한다.

배가 고픈 베가는 아빠가 보여준 대로 강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다. 자매는 모닥불을 피워 나란히 앉아 물고기를 구워 먹는다. 어둑한 밤이 되어 무서워지자 숲 속 큰 바위 아래서 밤을 보낸다.

다음 날, 집으로 보내달라는 마법을 써보자며 둘이 눈을 감고 손을 꼭 잡아보지만 당연히 통할 리가 없다. 잠시 실망하던 자매는 금세 '토토리!'를 외치며 다시 씩씩하게 들판을 걷는다. '토토리'는 빌리가 자신에게 힘을 준다고 믿는 환상의 유니콘이다. 

자매의 숲 속 모험을 눈으로 좇으며 너무나 멋졌던 점은 아이들이 숲에서 길을 잃은 막막한 상황에서도 숲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키가 큰 풀밭에 서서 눈을 감고 두 팔 벌려 날리는 풀씨들을 느끼고, 잠자리가 날아다니면 잡아 손 위에 올려놓고 장난을 친다. 숲에서 힘이 빠질 때는 큰 소리로 '토토리'를 외치며 씩씩하게 걷는다.
 
    날리는 꽃씨들을 만끽하는 빌리

날리는 꽃씨들을 만끽하는 빌리 ⓒ 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누구라도 감당하기 벅찬 어려움에 갑자기 처하게 되면, 해결에만 집착하느라 평정심을 잃고 기어코 일을 악화시키기가 쉬운 법이다. 하지만, 자매는 길을 찾으려 노력하면서도 아이들만의 순수함으로 여정을 즐기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니 보는 내내 감탄스러울 수밖에 없다.

온갖 자극적인 어른들의 콘텐츠 더미 속에서 귀하게 만난 아이들의 청량함에 마음이 정화되어 맑아지는 것 같다. 아이들을 저리 키워야 하는데 싶다가, 어른인 나부터라도 과연 역경 속에서 저렇게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자문해 보니 영 자신이 없다. 

다시 길을 찾아 숲을 헤매던 자매는 높은 바위산을 만난다. 이번에는 우회하지 않고 그 바위산을 오르기로 한다. 손과 발을 뻗어 바위를 조심스럽게 타는데 어디서 저런 다부짐이 나오는지 신기하다. 힘겹게 오르던 베가가 발을 헛디뎠지만, 동생 빌리의 도움으로 떨어질 위기에서 벗어난다. 

세상에, 이건 목숨까지 건 진짜 모험이다. 자매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해 가까스로 바위산을 넘고, 정상에 앉아 한숨 돌리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제 저 자매가 인생에 넘지 못할 산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자매는 우연히 발견한 빈 오두막에서 또 하룻밤을 보낸 후,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할머니가 사는 농장에 도착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 자매를 도울 처지가 아니고, 전화선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베가와 빌리는 아빠를 직접 구조하기로 다짐하고 할머니가 알려 준 오래된 탄광을 통과해 아빠에게 간다. 결국 어른들의 도움 없이 온전히 자매의 지혜와 상상력으로 아빠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아빠를 구출한 베가와 빌리의 여름 모험은 대성공

아빠를 구출한 베가와 빌리의 여름 모험은 대성공 ⓒ 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틈에서 나온 아빠와 어린 딸들은 부둥켜안고 기쁨의 포옹을 나눈다. 아빠는 모든 역경을 이겨낸 아이들이 진정으로 기특했을 것이고, 용감한 아빠를 되찾은 아이들도 너무나 안도가 되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애를 태우며 기다렸을 엄마도 가족들을 다시 만나 얼마나 기뻤을까?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한다는 걸 다시금 진하게 깨닫게 되었으니 이 가족의 여름 모험은 대성공이다. 

늘 함께하는 가족이라 해도 일상에서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진심으로 느끼는 건 드문 일이다. 오히려 못 미덥고, 짜증나고, 야속할 때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려운 역경이 닥쳐왔을 때, 힘을 합해 꿋꿋이 함께 버텨내어 이겨낸다면, 그런 경험이야말로 가족을 더 끈끈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마법이 아닐까?

어쩌면 그런 마법을 일깨우고자 우리는 자꾸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가는지도 모른다. 마침 캠핑 가기에 좋은 계절이다. 먹을거리만 챙기지 말고, 자연을 즐길 마음을 챙겨 어디로든 가볍게 떠나보면 어떨까?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깨달을 기회가 바로 코앞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 가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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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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