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5 17:23최종 업데이트 22.03.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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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기자말]
"숲은 자연이 만들고 사람은 도울 뿐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 단체는 인간 개입을 최소로 하여 '스스로 크는 숲', '함께 가는 숲'을 만들고자 합니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생활ESG행동 사무실에서 열린 '생활ESG행동 제2차 라운드 테이블'에 참가한 노을공원시민모임 강덕희 사무처장의 말이다.


2011년 8월 설립된 노을공원시민모임은 옛 난지도 땅의 생태적 생명을 되찾아주고 평화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쓰레기 대신 맑은 자연을, 아픔 대신 생명의 지혜와 평화를 전하고자 만들어진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노을공원시민모임을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활동가는 3명에 불과하지만 연평균 약 1만 2000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도시를 바꾸는 생태공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일어난 변화

노을공원시민모임의 주요 활동 장소는 쓰레기 더미 위다.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공원의 5개 테마공원 중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이 노을공원시민모임의 무대.

현재의 월드컵공원은 과거에는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였다. 1978년부터 약 15년간 서울 시민의 쓰레기를 이곳에 매립했다. 1993년 3월 쓰레기 매립 종료 시점의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는 난지도 전체 면적 82만 3000평(272만㎡) 가운데 57만 7000평(190만 7000㎡)을 차지했다. 매립지는 윗부분이 편편한 약 95m 높이 쓰레기 산 두 개의 모습이었다.

애초 계획한 매립 높이를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쓰레기가 쌓인 이유는 대체 매립지 확보가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녹지 아래 쌓인 쓰레기 양은 8.5t 트럭 1300만 대 분인 9197만 2000㎥에 이른다.

세계 최고 쓰레기 산이자 '파리, 먼지, 악취의 삼다도'로 불린 난지도는 1980년대 후반 포화를 넘어 과포화 상태를 겪다가 1991년 김포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가 조성되어서야 쓰레기 반입을 점차 줄일 수 있었고 1993년에 반입을 완전 중단하였다.

매립지 폐쇄 이후 서울시는 해당 구역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하고 쓰레기 산을 덮으며 공원 건설을 시작했다. 1996년부터 추진한 안정화 사업의 결과 다양한 동·식물이 살 수 있는 생명의 땅으로 복원되었고 2002년 5월 난지도는 월드컵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난지도 매립지 부지의 안정화 사업은 2021년에도 현재진행 중이다.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은 각각 과거 난지도 제1매립지와 제2매립지였다. 노을공원시민모임은 주로 두 공원의 사면에서 활동하며 시민이 가꿔나가는 도시공원, 생태공원으로서 도시공원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스스로 크는 숲, 함께 가는 숲

강 처장이 소개한 노을공원시민모임 활동 중 단연 눈에 띈 것은 '100개 숲 만들기'와 '1002숲 만들기'이다. 100개 숲 만들기는 쓰레기가 드러난 무입목지(나무를 심어 산림을 조성할 예정이나 현재는 나무가 서 있지 않은 지대)에 다양한 동·식물이 살게 하자는 취지로 2011년 단체 출범과 함께 시작했다.

현재까지 43권역 총 156개 숲이 만들어졌다. 심은 나무만 155종 11만 5246그루. 조성된 숲의 이름은 참여 기업의 이름과 동일하다. 이 활동이 기업의 후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후원과 활동가 및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노을공원은 점차 푸르게 변하고 있다.
 

나무를 심는 자원봉사자들 ⓒ 노을공원시민모임

 
100개 숲 만들기에 대해 강 처장은 "100개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이 활동을 시작할 때 100개 정도의 숲은 있어야 (사람들에게) 표가 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100개 숲 만들기로 알려지자 간혹 몇몇 기업이 전화해서 몇 개의 숲이 남았는지 물어본다"라고 말했다. 100개 숲 만들기의 숫자 100은 더 많은 숲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끝없이 숲을 만들어 나간다는 게 시민모임의 계획이다.

노을공원시민모임이 2020년 시작한 1002숲 만들기 활동은 100개 숲 만들기의 연장선에 있다. 무입목지를 포함하여 아까시나무 숲 전체에서 대체 입목을 꾀하여 숲을 바꾸는 천이(遷移,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군집의 변화)가 목표이다. 100개 숲 만들기가 양적 조림이라면 1002숲 만들기는 질적 조림이다.

강 처장은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사면에 아까시나무 숲 40만 평이 있는데 그 부지에 나무심기를 하고 있다. 주로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를 심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그 부지에 아까시나무가 너무 많아서 다른 나무나 생명체가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지만, 우리 단체의 확인 결과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아까시나무 외에 각종 다른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고 동물들이 이미 숲을 바꾸고 있었기에 "그 모습을 보고 우리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1002 숲 만들기를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도토리 노천 파종 ⓒ 노을공원시민모임

 
100개 숲 만들기와 1002숲 만들기는 씨앗부터 키우기를 원칙으로 한다. 과정을 소홀히 하지 않고 차근차근 정성껏 하려는 노을공원시민모임의 활동 방향이다. 강 처장은 "숲은 자연이 만들고 인간은 조금 도울 뿐"이라며 씨앗부터 키우기는 그러한 정신의 일환으로 인간의 개입을 최소로 하여 스스로 크는 숲, 함께 가는 숲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임을 강조했다.

노을공원시민모임은 나무를 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환경에 부담이 적은 방식으로 나무를 가꾸기도 한다. '빗물이 보물이다' 활동이 그것이다. 2011년부터 꾸준히 진행하는 이 활동은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의 기존 배수로를 통해 한강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빗물을 활용하려고 한다.

빗물을 안전하게 모으기 위해 공원 내에 취수부, 급수관, 빗물통 등을 설치하였다. 88m 높이의 취수부 두 곳에 모인 빗물은 중간관리도로에 설치된 총 5km에 달하는 급수관을 통해 전달된다. 자연압력을 통해 빗물이 이동하기 때문에 별도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급수가 가능하다. 또한 5t짜리 빗물통을 31개소에 설치하여 여름이나 가을 등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 빗물을 받아 저장하고 비가 적게 오는 시기에 저장한 빗물을 사용한다.

 

빗물 취수부 ⓒ 노을공원시민모임

 

새로운 방식의 숲 만들기

강 처장은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무심기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 수나 후원금 등이 현저하게 줄었다"라며 코로나 여파로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고충을 토로했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고안한 새로운 활동이 '집씨통'이다.

지난해 4월 어느 기업에서 "직원들이 집에서 싹을 내어 공원으로 가져가 다시 심을 테니 도토리를 달라"고 요청했다. 요청을 받아들여 도토리를 배송하다 보니 배송 과정에 너무 많은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집씨통'이라는 씨앗 키우는 통나무를 만들어 최소한의 쓰레기만 발생하도록 하면서 씨앗에서 묘목을 키울 수 있는 방식을 고안했다. 집씨통으로 씨앗을 전달하고 싹 틔운 집씨통을 돌려받아 숲에 심어 비대면으로 숲을 조성하려는 활동이다.

노을공원시민모임 카페에는 집씨통이 만들어지는 과정뿐만 아니라 싹을 틔운 집씨통을 다시 돌려줄 때 어떻게 포장해야 쓰레기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지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강 처장은 "처음 집씨통을 돌려받을 때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포장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좋아지고 있다. (포장이나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중요한 숙제이다"고 말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된 코로나 국면에서 비대면 숲 만들기, 집씨통 활동이 발굴한 새로운 가치를 강 처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집씨통 활동으로 심는 나무는 전체 활동으로 심는 나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집씨통을 정성껏 관리해서 싹을 틔우는 과정이 개인에게 의미 있는 것 같다. 집씨통을 받아 본 분들이 그런 부분을 좋아하고 그래서 호응이 높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과 함께 조성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추모 공원 및 석면 피해자 추모 숲은 사회적 참사 피해자와 연대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새로운 형태의 숲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숲은 2016년 조성에 들어갔고 최근 석면 피해자 추모 숲을 만들고 있다.

강 처장은 "가습기 피해자 분들이 서로 위로하고 하소연 할 사무실이나 장소가 없다고 들었다. 그래서 피해자와 당사자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이자 피해자를 추모하는 장소로써 숲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나 당사자가 추모 숲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무를 심으면서 추모숲이 가진 치유의 가능성이 발현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지구상의 동물이나 다른 생명체는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얻고 쓰는데, 사람은 과도하게 써요. 나무를 심는 것은 이것을 보상하는 활동이라고 봅니다. 나무를 심는 것 말고도 각자 개개인의 생활 태도에서 자신이 쓰는 물건, 먹는 먹거리가 자연을 해치며 나에게 온 것이 아닌가 물어보고 고민했으면 합니다. 과도하게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삶의 태도나 생활 면에서 각자 자신을 돌아보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 처장이 생각하는 일상의 생태적 삶의 태도이다. 씨앗의 싹을 틔우고 나무를 심는 일은 임박한 거대 위기에 비해 사소한 일처럼 보이고 이런 활동을 통해 생태를 복원하겠다는 결심은 너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이지 않으면 숲은 형성되지 않는다. 누군가 혁신적이고 시급한 처방으로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에 대응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느리지만 '정통적인' 방식으로 자연과 대화해야 하지 않을까. 강 처장이 강조했듯 숲은 자연이 만들고 우리 인간이 해야할 몫은 이 자연적인 흐름에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줄여나가는 것이 아닐까.



- 안치용 ESG연구소장 겸 '생활ESG행동' 시민본부장
- 노수빈 바람저널리스트

사진

노을공원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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