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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는 제5회 임금차별 타파의 날을 맞이하여 코로나 위기 이후 1년, 여성노동자들의 오늘을 진단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지난 2020년 연재했던 <해고, 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 시리즈의 후속기사다.  우리는 지난해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여성노동자들이 2021년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본다. 본 기사는 지난해 시리즈에서 인터뷰이였던 콜센터노동자와 서울여성노동자회 활동가 여름의 대화를 재구성하여, 콜센터노동자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다.[기자말]
[이전 기사] 재택근무하자마자 월급 줄어... 콜센터상담원이 겪는 이중고(http://omn.kr/1nmll)

콜센터노동자 노동환경, 여전히 제자리걸음

2020년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위기에 콜센터에 갑작스레 쏟아진 관심, 감염병에 취약한 콜센터노동자의 업무환경이 집중 조명되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이야기가 매일 뉴스를 장식했다. 집단감염의 온상처럼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 불안에 떨고 편견에 맞서면서도 생계를 위한 노동은 지속되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자와 출근 근무를 하는 자 모두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감염병 위기에야 비로소 쏠린 관심에 희망을 가졌다. 이 위기가 기회가 되어 노동환경에 변화가 있기를.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노동환경은 얼마나 개선되었나?

콜센터상담원들(아래 상담원)은 회사가 재택근무를 도입하면서 노동환경 개선에 관심이 급격히 사그라든 것을 느꼈다고 한다. 아직도 콜센터 내 별도의 매뉴얼이나 지침이 생기지 않았다. 원청의 지시에 따라 매뉴얼이나 내규를 정하게 되는데, 그 내용도 '헤드셋 소독, 휴게실 폐쇄, 식사는 제자리에 앉아서 할 것' 등 상담원을 보호하기보다는 관리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콜센터 내 관리자로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오픈채팅방을 만들고, 익명 메시지를 받아 의견수렴을 시도해봤지만, 계속해서 같은 문제가 제기되고 해결은 되지 않아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코로나 이후 매일 자리를 옮겨 일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헤드셋의 볼륨이나 콜기계 설정 등을 날마다 다시 조정해야 하는 고충을 토로하며, 좁은 공간에 밀집해 일하는 게 문제인데 이석(자리 이동)이 방역과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다. 기업이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않으니, 기업이 할 고민을 상담원들이 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 자와 출근 근무를 하는 자 모두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감염병 위기에야 비로소 쏠린 관심에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콜센터상담원들은 회사가 재택근무를 도입하면서 노동환경 개선에 관심이 급격히 사그라든 것을 느꼈다고 한다.
 재택근무를 하는 자와 출근 근무를 하는 자 모두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감염병 위기에야 비로소 쏠린 관심에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콜센터상담원들은 회사가 재택근무를 도입하면서 노동환경 개선에 관심이 급격히 사그라든 것을 느꼈다고 한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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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원들은 시간마다 관리자가 돌아다니며 체온을 재는 것에도 고충을 호소했다. 콜이 밀려드는 바쁜 시간대에 체온을 재느라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센터별로 출입문에 카메라 체온감지기를 설치하여 드나들 때마다 자동으로 체온이 체크되게 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제대로 된 환기 시스템을 마련하여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역시 기업의 책임과 인식,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 부분이다. 또한 휴게공간은 필수적으로 운영하되 안전한 휴게실 환경을 조성하고, 이용 시에는 간격을 두도록 규칙을 정해 관리하는 등 상담사의 휴식을 보장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지자체 공무원이 직접 나와서 하는 방역점검도 별 의미가 없었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방역점검이 태반이다. 방문 전에 이미 방문사실이 전해지고, 그날은 '한순간도 절대 마스크를 벗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공무원이 상담원을 랜덤으로 불러 면담하는 방식으로 조사하고 점검한다지만, 센터에서 공지로 내려온 모범답안이 있어 그 내용대로 답해야 한다. 공무원이 방문한 시간대에 콜 응대를 하지 않고 그들이 머무는 방에 다녀온 상담원이 누구인지는 모를 수 없다.

일부 콜센터는 '익명신고함'을 운영했으나 관리자들이 글씨를 보고 신고자를 특정하는 등의 사건이 있어 신고함을 폐쇄했다고 한다. 센터 내 환경이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상담원, 혹은 관리자가 직접 신고할 수 있는 핫라인(직통전화, 앱 등)이 필요하다.

재택근무 시작했더니 월급부터 줄었다?
 

코로나 팬데믹 1년여. 두려움의 대상이던 코로나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상담원들은 유례없는 감염병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노동하며 1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냈다. 하지만 회사는 지난 1년간 애써 일한 노동자를 위해 무얼 했는지 묻고 싶다.

상담원을 대상으로 설문/면담 조사를 진행하여 불안 요소를 체크하고,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을 위한 기기나 시설을 마련하고, 방역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는 등의 투자가 이뤄졌다는 바람직한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재택근무 시작과 동시에 급여에서 교통비와 식대를 삭감해 급여를 줄이는 꼼꼼함은 잊지 않았다.
  
2019년도 3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진행한 기자회견. 생계에 성별은 없다는 슬로건을 통해 남성 정규직 : 여성 비정규직간의 임금차별을 드러냈다.
 2019년도 3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진행한 기자회견. 생계에 성별은 없다는 슬로건을 통해 남성 정규직 : 여성 비정규직간의 임금차별을 드러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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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재택근무 시행 후 상담원들이 미묘한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눈에 띈다. 상담원들은 출근과 동시에 분주히 돌아가는 시스템, 많은 인원이 뿜어내는 에너지, 줄지어 늘어선 책상을 보며 피로와 갑갑함을 느끼면서도 내심 '회사라는 공간이 잘 돌아가고 있긴 하나 보다' 생각한다. 그런데 한동안 재택근무를 하다가 재계약이나 서류 제출 등을 위해 오랜만에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낯선 환경과 마주하게 된다.

출근근무자가 줄어 휑한 공간에 들어설 때, 컴퓨터와 전화 장비가 뽑혀버린 책상을 보면서, 불안감이 훅 밀려드는 것이다. 재택근무가 장기간 이어진 콜센터의 경우 사무실을 없애버렸다는 소식이 들리고, '누가 재계약에 실패해 퇴사했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인원 감축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금세 확산된다.

이는 근거 없는 불안이 아니다. 올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재택근무 경험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실태 조사 '성평등 생활사전 재택노동 편' 결과를 발표했다.

총 712명의 여성노동자가 참여한 이 조사에서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고용과 관련한 어려움이 있냐'는 질문에 75명(9.2%)이 '고용 형태가 변화'했다고 답했으며, 이 중 67명(91.8%)이 '비정규직화'라고 답했다. 나머지 답변으로 사직 및 사직 권유, 프리랜서화 등이 있었다.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비정규직화 혹은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기업의 움직임이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기류는 콜센터에서도 포착되고 있다.

소규모 회사들 중 재택근무 시행 후 기존의 정규직/파견직의 형태가 아닌 위촉직 프리랜서 고용을 하는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콜을 받으면 해당 건을 해결하고 건당 급여를 받는 식으로 일하게 된다. '일한 만큼 급여를 주는' 프리랜서 고용이 왜 문제냐고?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큰 문제는 기약 없는 업무 대기가 필수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콜이 없을 때는 급여를 받을 수가 없음에도 일정 시간 이상을 대기할 수밖에 없고, 대기가 무한정 이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기본급조차 보장받지 못하기에 상황이 좋지 않으면 생계를 보장할 수 없는 수준의 급여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콜이 밀려드는 날에는 더 많은 콜을 쳐내기 위해 휴식 시간은 물론 식사마저 챙기지 못하고 일해야 할 것이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고정적인 급여가 보장되지 않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회사에의 의무는 있고,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부리기 좋고 버리기는 더 좋은 노동자'. 그들이 말하는 프리랜서 고용의 실체이다.

또 다른 우려도 있다.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에 돌입하며 노동 현장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사람을 채용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적응시키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투여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노동 현장에 감을 잃고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관리자로 일하며 내가 겪고 느낀바, 기업은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 별 관심도 없다. 지금도 코로나를 핑계로 비용 절감에만 골몰하고 있다. 최근 상담원들의 연봉협상을 위해 원청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야간에 근무하는 상담원에게는 택시비를 지급하고 있었는데, 원래 거리에 따라 지급하던 택시비를 '직선거리'로 계산해 주거나 '주간요금' 기준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행태를 보면 '어느 시점에 프리랜서 고용을 시작해야 욕을 덜 먹을까' 눈치 게임을 하고 있을 거라는 추측이 억측은 아닐 것이다.

현 기준보다 인센티브의 기준을 확 올려버릴 수도 있다(현재는 콜품질과 콜수만 평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오류 여부는 평가 기준이 아니나, 세 가지를 만족하지 못하면 인센티브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중). 인센티브가 줄면 상담원들은 이직을 고민하게 되고, 적은 임금을 받고 출퇴근하느니 프리랜서로 일하며 콜수대로 돈을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또 이들의 퇴사를 방어하지 못하는 관리자의 급여도 깎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와 내 동료들은 기본급도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게 될 것이란 불안이 솟는다.  
  
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해고 0순위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려냈다.
 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해고 0순위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려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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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프리랜서 채용 방식을 도입한 콜센터가 많지는 않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이름난 업체는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기본급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 기업이 있고, 대기업 중에도 서로 눈치를 살피며 누가 먼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 곳이 있을 것이다. 기업은 상담원을 많이 뽑아놓고, 콜수대로 돈을 주는 경영방식에서 손해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선제적 규제가 필요하다. 마냥 손 놓고 있다가 콜센터상담원은 생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이것이 비단 콜센터상담원만의 문제일까? 지금 불안정한 고용,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을 버티고 있는, 우리 사회 여성노동자 모두의 문제이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1970년대 YH무역에 대항해 노동운동을 하다 국가폭력에 의해 사망한 여공, 고 김경숙씨의 이야기를 보았다. 김경숙씨의 말씀 중 '신문을 볼 때, 큰 타이틀의 기사를 보지 말고, 저 밑에 있는 조그만 뉴스를 보라. 조그마한 보도를 보면 숨어 있는 진짜가 있다'는 것이 가슴을 쳤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 목소리, 쉽게 묻힐 수 있는 목소리, 여성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여름 시민기자는 서울여성노동자회 활동가입니다.


태그:#임금차별타파의날, #코로나19 1년 후, #콜센터, #프리랜서, #여성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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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여성노동운동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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