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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학년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준다. 정신없이 바쁜 월요일 아침에도 읽어주고,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는 온라인 학습날에도 줌수업을 통해 읽어준다. 내가 읽어주는 책은 얇은 책이 아니라 글밥이 꽤 되는 두꺼운 이야기책이다. 지난달 우리는 240쪽이나 되는 책을 읽었다.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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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읽은 책은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이다. 이 책의 주인공 오로르는 11살로 우리반 아이들과 나이가 같다. 말하는 것을 어려워해 태블릿에 글자를 적어 보여주며 소통하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다. 이 아이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달 동안 '내가 하는 일은 뭐든 모험'이라고 말하는 오로르와 만났다.

학습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책읽기

나는 아이들에게 날마다 5~10분 정도씩 책을 읽어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모여 50쪽, 100쪽, 결국 240쪽 모두를 읽어냈다. 가끔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읽은 쪽수를 말해주면 아이들은 우리가 벌써 그만큼이나 읽었냐면서 새삼 놀라곤 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나서는 책을 바로 덮지 않았다. 그날 읽었던 부분에서 특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을 함께 찾아 적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었다.
 
-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마법 같은 일이야.
- 친구는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 잿빛인 날이 많기 때문에 푸르른 날을 더 아름답게 느낄 수 있어. 밝고 행복한 날만 계속될 수는 없어. 잿빛도 삶의 일부야.
 
매일 우리는 '오늘의 책문장'을 적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학습을 목적으로 질문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한 사람의 독자가 되어 편하게 수다를 떨 듯 말했다.

"얘들아. 잿빛인 날이… 이 문장 너무 좋지 않니? 어른인 선생님도 오로르 말에 위로를 받게 된다."
"오로르 말이 맞아요. 계속 놀기만 하면 그것도 좀 지겨워요. 공부, 숙제 다 하고 놀아야 꿀잼이죠."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는 '삶'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책을 통해 이야기로서 전하는 것이 아이들 마음 속에 더 깊이 오랫동안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 읽어주는 것이 매일 반복되니 아이들은 습관이 된 듯 묵묵히 잘 들었다. 하지만 과연 책이 아이들 마음에도 잘 닿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혹시나 형식적인 책읽기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들 책상 여기저기에 보라색 표지의 책이 놓여 있었다. 오로르 책이었다. 심지어 유난히 신체활동을 좋아하는 한 남자아이 책상 위에도 오르르 책이 있었다. 또한 아이들 중에는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의 후속편인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오로르> 책을 보는 아이도 있었다. '듣는 독서'가 '자발적 독서'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함께 읽고 나누기 시간 외에도 오로르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창체(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차별'에 대한 수업을 할 때였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아시아 증오 범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은 오로르 책의 내용을 언급하며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오로르가 잔혹이들한테 말했잖아요. 잔인하게 행동하면 유치한 게 더 드러나는 거라고요."
"왜 아시아인을 싫어하죠? 우리는 조금 다를 뿐이잖아요."


우리 반 학생이 된 소설 속 주인공 오로르
 
아이들이 만든 오로르 명패입니다.
 아이들이 만든 오로르 명패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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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다른 수업 시간에도 책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했다. 어느샌가 아이들 생각과 마음에 책이 스며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어느 날 우리반 비어 있는 책상 위에 무언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아이들이 오로르 명패를 만들어 붙여놓은 것이었다.

"선생님, 여기 오로르 자리예요."

아이들은 오로르가 우리 반인 것 같다고 했다. 매일 만나니 오로르와 친해진 기분이 든다고 했다.

하루는 줌수업 시간에 출석을 부르고 나자 아이들이 말했다.

"선생님, 이제부터 출석 부를 때 오로르도 같이 불러주세요."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에게 친구 한 명이 생겼다. 우리반에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로 인해 우리는 좀 더 따뜻하고 유연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선하고 용기있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도서관에 가면 얇은 책만 쏙쏙 빼 오던 아이들이 이제는 두꺼운 책 앞에서 서성인다. 그리고 두꺼운 책 한 권을 쓱 꺼내 온다. 이게 다 우리 반의 새 친구 오로르 덕분이다.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더글라스 케네디 (지은이), 조안 스파르 (그림), 조동섭 (옮긴이), 밝은세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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